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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11일 야곱의 우물-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1 조회수370 추천수2 반대(0) 신고
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그때에 예수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 그분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 하고 물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너는 계명들을 알고 있지 않느냐 ? ‘살인해서는 안 된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거짓 증언을 해서는 안 된다. 횡령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 그가 예수님께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를 사랑스럽게 바라보시며 이르셨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울상이 되어 슬퍼하며 떠나갔다. 그가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 주위를 둘러보시며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
 
제자들은 그분의 말씀에 놀랐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거듭 말씀하셨다. “얘들아,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서,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 하고 서로 말하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바라보며 이르셨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그때에 베드로가 나서서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나 때문에, 또 복음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어머니나 아버지,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다시 예루살렘을 향해 길을 가고 계신 예수님 앞에 어떤 사람이 달려와 무릎을 꿇고 가르침을 청합니다. 사회에 영향력을 지닌 젊은 권력가인 그 사람이 (루카 18, 18 참조) 급히 ‘달려와’ ‘무릎을 꿇은 모습’ 과 존경을 담은 호칭 ‘선한 스승님’ 으로 예수님을 부르는 것은 그의 진지한 태도와 함께 그가 예수님을 자신에게 훌륭한 가르침을 주실 스승으로 생각하고 있음을 드러냅니다. 그 젊은이가 묻습니다.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 (마르 10, 17) 여기에서 ‘영원한 생명’ 은 무엇인가요 ? 영원히 죽지 않고 사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가 말하는 영원한 생명은 뒤에서 다른 말로 표현되어 나옵니다. 곧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 (23절) 이며 ‘구원받는 것’ (26절) 이지요. 그런데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합니까 ?” 라고 하는 마태오복음의 병행 구절 (19, 16) 에서 보면 그 젊은이는 자신이 어떤 ‘선한 일’ 을 함으로써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선’ 을 인간의 성취에 의해 평가되는 어떤 것으로 보려는 그 사람의 잘못된 생각을 먼저 지적하십니다. “하느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선하지 않다.” (마르 10, 18) 그리고 그 사람의 질문에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에 속하는 다섯 계명 (탈출 20, 12 – 16; 신명 5, 16 - 20) 을 다른 순서로 제시하십니다. 십계명의 두 번째 부분은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지켜야 할 계명인데, 예수님이 여기에서 말씀하신 계명 가운데 하나, 곧 ‘횡령해서는 안 된다.’ 는 십계명 가운데 하나가 아닙니다.
 
이 명령은 이 이야기의 병행 구절인 마태 19, 18 – 19과 루카 18, 20에는 나오지 않고 마르코복음에만 있습니다. 아마도 권력을 지닌 부유한 젊은이에게 적용시킨 보충 계명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마태오와 루카는 이 계명이 본디 십계명에 속하지 않으므로 포함시키지 않았던 것이고요. 예수님의 말씀에 젊은이는 망설이지 않고 대답합니다. “스승님, 그런 것들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왔습니다.” (마르 10, 20) 그럼에도 그는 자신에게 부족한 것이 있는지, 그렇다면 그것을 보상할 어떤 행위를 예수님이 알려주실 거라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그 젊은이가 지닌 진지한 종교적 열심을 대견해하시며 사랑이 담긴 눈으로 그를 바라보십니다.(21절) 그러나 그에게 부족한 것이 ‘한 가지’ 있었으니, 그것은 많은 재산을 지니고 그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에게 두 가지를 명령하십니다. 첫째, “가서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이는 ‘영원한 생명’ 을 방해하는 장애물인 재물에 대한 애착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둘째, “와서 나를 따라라.” 이는 ‘영원한 생명’ 을 자신의 행위로 인해 얻을 수 있다는 생각과 재물에 대한 애착에서 돌아서서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결국 그를 묶어놓고 있는 재물에서 자유롭게 벗어날 때 그가 구하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알려주신 것이지요. 하지만 젊은이는 추구하는 것을 얻으려면 자신에게 소중한 것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는 말을 듣고는 그럴 수 없는 자신의 한계를 ‘슬퍼하며’ 자리를 뜹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모든 사람에게 자신의 모든 재물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는 특별한 자기 부인이 요구되는 것은 아니지만, 자유롭게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방해하는 걸림돌이 되는 이 부자 젊은이한테는 필요한 조건이었습니다.

그 사람이 떠나고 난 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십니다. “재물을 많이 가진 자들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3절) 그 말씀에 제자들이 ‘놀랍니다’. 유다인들에게 ‘부유함’ 은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되었는데, 재물이 구원에 장애물이 된다고 말씀하시기 때문이지요. 당신 말씀에 놀라는 제자들을 예수님은 ‘얘들아.’ 하고 부르시며 불가능한 것을 묘사하는 유명한 유다 경구를 사용하여, 재물에 대한 기본 자세를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자기의 재물을 믿고 의지하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우리 눈앞에 가장 큰 동물인 낙타가 가장 작은 구멍인 바늘귀로 빠져나가는 것이 더 쉽다.’ 그러자 제자들이 ‘더욱 놀라며’ 서로에게 다음과 같이 반문합니다. “그러면 누가 구원받을 수 있는가 ?” (26절) 구원이 그렇게 어렵다면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생각에서 나온 탄식이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 길이 있음을 알려주십니다.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는 그렇지 않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27절). 하느님께서 원하시기만 하면 재물에 묶여 있는 부자의 마음이 언젠가 열리고 하느님 나라로 들어올 수 있을 터이니 말입니다.
누구한테나 자신에게 ‘소중한 것’ 을 버리고 구원으로 향하는 참 자유를 얻을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이 있고, 믿음으로 그것을 실천할 용기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말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통하여 은총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이는 여러분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선물입니다.” (에페 2, 8)

이에 제자들의 대변인 자격으로 베드로가 우쭐거리며 말합니다.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스승님을 따랐습니다.” (마르 10, 28).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슬퍼하며 떠나간 부자와 달리 자기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것이지요. 베드로의 이 말에는 ‘그러니 우리가 받을 보상이 무엇입니까 ?’ 가 함축되어 있습니다(마태 19, 27). 예수님의 대답은 분명합니다. “너희가 나를 따름으로써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가족과 토지를 백 배나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을 받을 것이다.”

예수님, 많은 재물 때문에 자신이 추구하는 ‘영원한 생명’ 을 받을 수 없었던 부자는 그 뒤에 어떻게 되었지요 ? 언젠가 그가 믿음으로 자신의 한계를 극복하고 애착의 속박에서 자유로워져서 마침내 ‘영원한 생명’ 인 ‘하느님 나라’ 를 얻지 않았을까요 ?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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