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지혜를 얻는다." - 10.11,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2 조회수359 추천수4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0.11 연중 제28주일                                          
지혜7,7-11 히브4,12-13 마르10,17-30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고 지혜를 얻는다."
 
 
 


며칠 전 어느 분이 저에게 전화로 물었습니다.

“하루 종일 어떻게 지냈습니까?”

저절로 나온 장난기 어린 다음과 같은 저의 대답입니다.
 
“하늘을 보며 지냈습니다.”

서로 웃고 말았습니다만 진심이 담긴 저의 대답이었습니다.
 
때로 눈 들어 바라보는 높고 푸른 가을 하늘 흰 구름,
아무리 봐도 좋습니다.
 
그대로 눈으로 하는 화살기도입니다.
 
하여 얼마 전에는 ‘하느님 그리울 때마다’ 라는
다음과 같은 글도 써 보았습니다.
 

그대
하느님이 노시는 것을
보았는지요?
푸른 하늘
흰 구름 되어 노시는 하느님

그대
하느님이 그림 그리시는 것을
보았는지요?
아침노을 저녁노을 장엄한
하느님의 그림

그대
하느님이 꿈꾸시는 것을
보았는지요?
밤하늘 가득 반짝이는 별들
하느님의 꿈.

하느님
그리울 때 마다
바라보는 하늘
하느님의 얼굴.
 


너나할 것 없이 마음 깊이에서 하느님을 찾습니다.
 
특히 여기 수도자들은 하느님 하나만 보고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매일 새벽마다 하느님 찬미로 하루를 시작하는 수도자들입니다.
 
하늘의 하느님을 잊고 땅의 현실에만 몰두하는 세상이라
날로 영혼 없는 사람들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참 사람이 되어 살기위해
돈에 앞서 하느님을,
소유에 앞서 존재를,
삶의 양에 앞서 삶의 질을 우선 생각해야 합니다.

하느님은 우리 삶의 중심입니다.
하느님의 중심을 잃어 혼돈이요 방황입니다.
무질서하고 복잡한 삶입니다.
 
하느님 중심 안에 머물러 정주할 때
제자리에서 제정신으로 제대로 분수에 맞는 행복한 삶입니다.
 
배는 밥으로 채울 수 있어도
무한한 가슴은 하느님으로만 채워질 수 있습니다.
 
보이는 세상 것들로 우리 존재를 채우려하니
채우고 채워도 영혼은 여전히 목마르고 배고플 뿐입니다.
 
행복은 삶의 양이 아닌 삶의 질에 달려 있습니다.
 
국민소득이 높아질수록 비례하는 행복이 아니라
오히려 국민소득이 2만 불 이상 될수록
행복지수도 떨어진다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일본이 그렇고 미국이 그렇고 예외 없는 현상입니다.
 
하여 선진국들은 더 이상 국민소득 향상을 목표로 하지 않고
교육, 문화, 복지, 환경 지표를 통합해 ‘삶의 질’ 향상을 추진합니다.
 
다만 1인당 국민소득을 국정 목표로 삼는 나라는
개발주의 시대의 달콤한 유혹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몇몇 토건국가뿐입니다.
하느님을 잊을 때 탐욕에 포로 되기 마련입니다.
 
하느님이 삶의 중심이 되어야 삶의 질도 저절로 향상입니다.
 
하느님을 맛본 이들 더 이상 세상맛에 빠지지 않습니다.
 
제가 자주 피정 지도 때 마다 자주 묻는 질문이 있습니다.
 
‘무슨 맛으로, 무슨 재미로, 무슨 기쁨으로 살아가느냐’는 질문인데
대부분은 웃고 맙니다.
 
물론 답은
하느님 맛으로, 하느님 믿는 재미로, 하느님 찾는 기쁨으로
살아가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어떤 부자의 물음은
그대로 하느님에 목말라하는 모든 구도자들의 보편적 물음입니다.
“선하신 스승님, 제가 영원한 생명을 받으려면 무엇을 해야 합니까?”

이 부자의 내면을 간파하신 주님은
계명 준수를 확인하신 후 모든 것을 버리고 당신을 따를 것을 요구하십니다.
“너에게 부족한 것이 하나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모두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

그러나 이 부자는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슬퍼하며 떠나갔다 합니다.
 
하느님을 맛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외적으로야 훌륭한 신자였을지 몰라도
내적으로는 주님을 깊이 체험하지 못한 액세서리 신자였음이 분명합니다.
 
진정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 분인지 맛보았더라면
지체 없이 주님을 따라나섰을 것입니다.
오늘 복음을 통해 환히 드러나는 가난의 정체입니다.
 
억지로 가난이 아니라 주님을 체험했을 때
저절로 자발적 포기의 가난입니다.
 
하느님 앞에 쓰레기로 드러나는 소유물들입니다.
 
보이는 것들을 버리는 대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차지합니다.
 
부자가 하늘나라 들어가기가 어렵다 하지만
하느님 맛을 본다면 저절로 무욕의 초연한 마음에
그대로 지금 여기서 펼쳐지는 하늘나라입니다.
 
바로 이런 체험을 가능하게 하시는 분이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제가 특히 좋아하는 시편 두 구절이 생각납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노라.’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맛보고 깨달아라.
  복되다. 주님께 몸을 숨기는 사람이여.’
 
비단 이 두 시편뿐 아니라
대부분의 시편들이 하느님을 체험한 이들의 믿음, 사랑, 희망의 고백입니다.

누구나 원하는 지혜로운 삶입니다.

하느님을 체험한 자연스런 열매가 지혜입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오는 지혜입니다.
 
눈  멀게 하는 탐욕이요 눈 밝게 하는 하느님의 지혜입니다.
 
탐욕의 구름이 사라질 때 빛나는 태양의 지혜입니다.
 
머리 좋아도
탐욕의 어리석음으로 인해 눈멀어 패가망신한 이들 참 많습니다.
 
돈 중심의 무한경쟁의 자본주의 시대,
탐욕으로 인해 ‘영혼 없는 사람들’,
‘눈 없는 사람들’ 날로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지식인은 많아도 지혜로운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지혜로 전환되지 않는 지식들 쓰레기 더미에 불과할 뿐입니다.
 
하느님 없이는 지혜도 없습니다.
 
1독서 솔로몬의 입을 통해 지혜가 얼마나 좋은지 잘 들어납니다.
“내가 기도하자 나에게 예지가 주어지고,
  간청을 올리자 지혜의 영이 나에게 나왔다.
  나는 지혜를 왕홀과 왕좌보다 더 좋아하고,
  지혜에 비기면 많은 재산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하였으며,
  값을 헤아릴 수 없는 보석도 지혜와 견주지 않았다.
  온 세상의 금도 지혜와 마주하면 한 줌의 모래이고,
  은도 지혜 앞에서는 진훍처럼 여겨졌다.
  나는 지혜를 건강이나 미모보다 더 사랑하고,
  빛보다 지혜를 갖기를 선호하였다.
  지혜에서 끊임없이 광채가 나오기 때문이다.”

얼마나 아름답고 신나는 지혜에 대한 찬가입니까?
 
바로 하느님의 참 좋은 선물이 이런 지혜입니다.
 
이런 지혜를 소유한 이들, 맛본 이들
더 이상 세상 보이는 것들에 대한 맛을 잃습니다.
 
세상맛으로 살아가지 않고 하느님 맛으로 살아갑니다.
 
진정 초연과 무욕의 자유로운 삶입니다.
 
이보다 행복한 부자는 없습니다.
 
지혜 대신 하느님을 넣어도 그대로 통합니다.
 
지혜자체이신 주님이시오, 지혜는 바로 주님의 현존이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이들을 통해 나오는 하느님의 광채가 주변을 밝힙니다.

가장 구체적인 하느님 체험의 장이, 지혜를 습득할 수 있는 장이
교회의 성체성사와 성경독서입니다.
 
진정 하느님을 맛보고 지혜로운 삶을 원하십니까?
 
미사와 성무일도, 성경독서에 올인 하십시오,
살기위해 밥 먹고 일하고 운동도 하듯이
말 그대로 영혼이 살기위한 필수적 영성수련이
미사와 성무일도에 성경독서입니다.
 
비단 수도자뿐 아니라 정말 하느님 맛을 보기 위해서
찬미와 감사의 성무일도는 필수입니다.
 
이 모두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는 ‘살아계신 주님과의 만남’입니다.
 
타성적으로 미사 드릴 것이 아니라
깨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난다는 의식을 가지고 참여해야
풍성한 은총입니다.
 
미사와 성무일도, 성경독서 중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주님을 만나는 우리들입니다.
 
이 길이 제일 안전하고 확실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그대로 하느님의 현존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이 참 고무적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
  하느님 앞에서는 어떠한 피조물도 감추어져 있을 수 없습니다.
  그분 눈에는 모든 것이 벌거숭이로 들어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바로 하느님의 지혜요 하느님의 현존이심이 분명히 들어납니다.
 
지혜를 찾는 마음은 바로 하느님을, 말씀을 찾는 마음입니다.
 
어제 저녁기도 때 시편 두 구절이 생각납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오며,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나이다.
  
파수꾼이 새벽을 기다리기보다 내 영혼이 주님을 더 기다리나이다.”

새삼 하느님의 말씀이 얼마나 중요한 지 깨닫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통해
살아계신 주님을 만나고 지혜를 선사 받기 때문입니다.
 
하여 저는 고백성사 보속 처방전으로 10년 이상,
꼭 영적 사정에 맞는 성경 말씀을 써주며
일정기간 영약(靈藥)으로 삼아 복용하라 합니다.
 
오늘도 주님은 이 거룩한 미사를 통해
우리 모두 당신의 말씀과 성체로
당신이 얼마나 좋으신지 맛보게 하시고 참 좋은 지혜를 선사하십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5,3).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