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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니, 미워하지 않았어> - 송성영
작성자김수복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3 조회수420 추천수2 반대(0) 신고
 
"아니 미워하지 않았어"
늘 인상이를 괴롭히던 친구가 찾아 오던 날
 
2009년 10월 07일 (수) 22:32:12 송성영 sosuyong@hanmail.net
 

   
 

가끔씩 내 자식들을 보면서 나와는 전혀 다른 존재라는 것을 실감할 때가 많습니다. 부모 자식이라는 관계를 접어놓고 생각해 보면 녀석들은 분명 나와 전혀 다른 존재입니다. 나와 똑같은 인격체로서 평등한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나와 녀석들의 관계는 참으로 불평등합니다. 녀석들에게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고‘이것이 좋다’ ‘저것은 나쁘다’ 가르치려 들지만 녀석들은 내게 이래라 저래라 강요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래 전 일이었습니다. 대전에서 밥벌이하고 돌아왔더니 우리집 작은 아이 인상이 친구인 최00이 다녀갔다고 합니다. 최00은 인상이를 엄청 괴롭혔던 아이입니다. 초등학교 1, 2학년 때 거의 매일 같이 인상이의 머리와 뺨을 때리다시피 했습니다. 결국 그 일로 인상이 엄마하고 최00 엄마하고 한바탕 심각한 사태가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나 역시 화가 나서 인상이에게 호신술을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인상이는 여전히 맞고 들어오면서 최00 녀석에게 전혀 그 호신술을 써 먹지 않았습니다. 녀석은 최00가 울까봐, 불쌍해서 맞받아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때 만약 녀석이 아빠에게서 배운 호신술로 복수극을 펼쳤다면 어떻게 됐을까요? 더 이상 얻어맞지 않겠다고 어른들의 해결 방식으로 주먹질로 맞대응을 했다면 과연 최00이 인상이를 찾아 왔을까요?

그토록 인상이를 괴롭혔던 녀석이 전학 가고 나서 열흘도 채 안 돼 인상이가 보고 싶어 찾아왔으니 아내는 두 녀석의 '기묘한 우정'에 감동 받았던 모양입니다. 아내는 인상이를 잊지 않고 찾아온 최00에게 전학 간 이유를 물었더니 같은 반 아이들이 자신을 싫어해서 그랬다는 것입니다. 모든 아이들에게 따돌림 당한 것은 아니었고 몇몇 아이들이 자신을 싫어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에게 그토록 얻어맞았던 인상이 녀석만큼은 언제나 함께 놀아줬다고 합니다.

아이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전학 간 최00 녀석이 안타까웠지만 인상이를 찾아 온 것은 반갑고 고마웠습니다. 인상이 녀석에게 기분 좋게 꼬치꼬치 캐물었습니다. '몰라'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인상이 녀석의 대답은 빤했습니다.

“최00이 와서 뭐하고 놀았냐?”
“몰라.”
“아까 있었던 일인 디 그것도 몰라?”
“그냥 놀았어.”
“마당에서 곰순이 하고 놀았구나?”
“응.”

늘 그랬듯이 녀석은 내가 물으면 그날 있었던 일들을 낱낱이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내가 상황을 설정해 줘야 합니다. 녀석은 주특기인 그림 그리기에 코를 박고 별 관심 없다는 듯 싱겁게 짧은 답만 내놓았습니다.

“너 저번에 일학년 때 최00가 널 매일같이 때린 거 기억나지?”
“응.”
“그때 걔 싫었지?” 
“몰라, 기억 안 나.”
“미워했냐?”
“아니 미워하지는 않았어.”
“너 찾아오니까 좋지.”
“좋아.”
“그거 봐라, 화가 나도 참고 나면 이번처럼 좋은 일이 생기는 겨. 친구가 찾아오잖아.”


그 말을 해놓고 생각해 보니 참으로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인상이 녀석에게는 참겠다는 개념도 없어 보입니다. 그저 싸우기가 싫어서 싸우지 않았던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녀석에게 ‘인내는 쓰다 그러나 그 열매는 달다’ 식으로 ‘삶의 지식’을 가르치려 들었던 것입니다. 실천도 못하면서 입만 열었다면 ‘사랑’이 어쩌니 저쩌니 떠들어대는 거짓 성직자들처럼 말입니다. 내 안에 강 같은 평화도 없으면서 바다 같은 평화를 노래했던 것입니다.

어른인 나는 과연 아이들에게 지혜로운 삶이 무엇인지를 가르칠 자격이 있는 것일까? 그렇게 나는 컴퓨터 통계처럼 정확한 대답을 원하는 세상살이를 하면서 그저 ‘몰라’ ‘그냥’ ‘응’ 이라는 단순한 대답만 내놓고 있는 인상이 녀석에게 배웁니다.

그날 저녁 인상이 녀석의 일기장을 보았습니다. 대충 내용을 요약해 보면 이렇습니다.

‘오늘은 개와 놀았다. 학교 갔다 와서 가방을 내려놓고 친구들 대신 밖에서 개와 함께 놀았다. 방 안에 들어와 있다가 다시 밖으로 나가 개와 놀았다. 개와 노니 친구들하고 노는 것처럼 재미있었다. 개가 짖을 때 보면 사람처럼 말하는 것 같다.’

나는 녀석에게 개하고 어디서 어떻게 놀았는지 구체적으로 쓰라고 말하려다 그만두었습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송성영 /1960년 대전에서 태어난 송성영은 대학 졸업 후 한동안 도(道)를 공부하기 위해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며 산 생활을 하기도 하고 잡지사 일을 하기도 했다. 돈 버느라 행복할 시간이 없던 그는 덜 벌고 행복하게 살자는 생각에 고단한 서울 생활을 청산하고, 시골 생활을 전혀 모르는 아내와 갓난쟁이 아이 둘과 함께 계룡산 갑사 부근의 시골 마을로 내려간다. 뒤에는 대나무 숲이 있고, 옆으로는 작은 개울이 흐르고 널찍한 마당이 있는 빈 농가를 200만 원에 구입해서..  시골에서 생활한 지 10년 넘었고, 두 아들 인효와 인상이는 대나무 숲에서 아빠에게 경당도 배우고, 개울에서 가재를 잡고, 마당에 그림을 그리며 몸도 마음도 건강하게 자라고 있다. 미술을 전공한 아내는 외양간을 개조한 화실에서 그림도 그리고 시골 아이들에게 그림을 가르치고 있다. 송성영은 텃밭을 일구며 틈틈이 다큐멘터리 방송원고를 쓰며 생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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