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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올바른 스승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4 조회수1,421 추천수20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28 주간 수요일 - 올바른 스승

 

 

 

제가 사제가 되어 처음으로 간 성당은 신자가 만 삼천 명이 넘는 성당이었습니다. 게다가 사제는 저와 본당신부님 단 둘이었습니다. 신학생 때 외국에서 공부하여 전례나 본당 실무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것도 없는 상태에서 너무 큰 본당으로 왔던 것입니다.

본당에 처음 간 날 어떤 의사 신자분이 당신 병원으로 링거를 맞으러 오라는 것입니다. 건강한 제가 왜 링거를 맞느냐고 했지만 조만간 오시게 될 것이라고 하셨고 저는 코웃음을 쳤습니다.

그러나 몇 달 지나고 너무 힘들어 그 병원으로 링거를 맞으러 갔습니다. 링거 맞으면서 쉬는 한 시간이 정말 꿀맛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다음에도 몇 번 링거 맞는 겸 쉬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한 예로 성지 주일날 하루 동안 주임신부님과 둘이 고해성사를 준 숫자가 구백 명이 넘었습니다. 어떤 때는 밥은 고사하고 화장실 갈 시간도 없이 바쁜 날도 있었습니다.

 

이렇게 바쁘다보니 어떤 때는 좀 일찍 쉬고 싶은 생각이 있어서 교사들이 늦게까지 회합을 하는데 먼저 들어와 잔 때도 있었고 몸이 피곤하여 그렇게 살짝살짝 요령을 폈습니다.

그러다가 멜 깁슨이 나오는 한 전쟁영화를 보았습니다. 제목이 ‘We were soldiers’라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미국과 베트남과의 전쟁 이야기였습니다.

때는 1965년, 미국은 하버드 석사 출신의 할 무어 중령을 비롯해 젊은 군인 395명을 베트남 아이드랑 계곡 X레이 지역에 투입합니다. 이들이 맞서 싸워야 할 적군은 무려 2000여명의 정규군. 험준한 정글 지형에서 벌어진 미국과 베트콩의 최초 전투에서 미국은 처참한 병력을 상실하며 가까스로 승전을 거둡니다. 이 전투를 진두지휘했던 할 무어 중령과 죠 갤러웨이 종군기자는 미국 전쟁사에서 잊혀진 72시간을 <우리는 한때 군인이었다>는 논픽션으로 집필했고 93년 베스트셀러가 된 이 책을 읽은 렌달 월레스 감독이 영화화한 것입니다.

다른 것보다도 무어 중령의 역할을 맡은 멜 깁슨이 전쟁에 투입되기 전 젊은 군인들에게 설교한 내용이 저에게 큰 감명을 주었습니다.

“여러분 모두를 살아서 집에 돌아오게 해주겠다는 약속은 할 수 없다. 우리가 전투에 나감에 있어서 내가 땅에 발을 가장 먼저 내딛고 철수함에 있어 내가 맨 마지막으로 발을 뗄 것이며 어느 누구도 적진에 남겨놓지 않을 것이다 죽은 자건, 살아남은 자건.... 모두 함께 집에 온다. 신이시여 도와주소서!”

저는 이 말을 그냥 한 줄 알았는데 정말로 무어 중령은 적지에 가장 먼저 뛰어 내렸고 마지막에 헬기로 탈출 할 때도 자신의 남은 모든 부하들이 타는 것을 보고 마지막으로 헬기에 오릅니다.

적지에 처음으로 내리던 그 발과 마지막으로 헬기에 오를 때의 그 발이 저에겐 큰 무게로 다가왔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봉사자들이 다 모였을 때에야 마지막으로 나타났고 봉사자들에게 일만 시켜놓고 먼저 살짝 빠지던 사제였기 때문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을 이렇게 꾸짖습니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

저도 어는 정도는 짐만 지워놓고 저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않으려 했던 율법학자와 다를 바가 없었음을 깨달았습니다.

 

전에 어떤 신학생이 기도나 해야 할 일도 하지 않고 오락이나 영화만 보며 시간을 때우며 서품을 기다리고 있기에 “네가 그렇게 살면 나중에 서품을 받고서 어떻게 신자들에게 잘 살라고 할 수 있겠어?”하며 충고를 했습니다.

그 신학생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내가 못 살아도 강론만 잘 하면 되지 않나요?”

이것이 아마도 당시 율법 교사들의 생각이었을 것입니다. 자신들이 모범을 보이는 것보다는 가르치는 것에 더 큰 비중을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훌륭한 스승은 자신이 하는 말을 행동으로 증거 하는 사람입니다. 즉, 우리의 유일한 스승이신 그리스도는 ‘사랑’을 가르치셨고 그 사랑 때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셨습니다. 우리가 보는 십자가는 당신이 3년 동안 가르치신 사랑을 행동으로 실천하신 모습이고 그래서 참다운 스승이 되시는 것입니다.

우리도 누군가에게는 가르치는 입장에 있을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아이들에게 형제간에 우애 있게 지내라고 하면서 부모인 자신들은 아이들이 보는 앞에서 서로 말다툼을 한 적은 없습니까? 아이들에게 공부하라고 하면서 텔레비전만 보고 있지는 않았습니까? 아이들은 주일학교에 보내면서도 정작 나는 바쁘다는 핑계로 미사에 빠지고 있지는 않습니까? 혹은 아이들에게 거짓말이 가장 나쁜 것이라고 하면서 나는 가끔은 거짓말을 하며 살지는 않습니까?

언행일치를 이루지 못하면 참다운 스승이 될 수 없고 존경도 받을 수 없습니다.

제가 저의 교수님을 존경하는 이유는 다른 신학자들과는 달리 그 분은 가르치시는 대로 사시기 때문입니다. 옷을 주워 입을 정도로 검소하시고 남은 것을 가난한 사람과 나누시며 사제관에 집 없는 이들을 들여놓고 함께 사십니다.

예수님은,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마태 28,19)라고 명령하십니다. 이는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가르치기만 하라는 것이 아니라 당신이 모범을 보이신 것처럼 모든 민족 앞에서 당신이 가르치신 사랑을 몸소 삶으로 보여주는 참다운 그리스도인의 모습을 보이라는 뜻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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