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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66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4 조회수459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 28주간 수요일]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2-46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2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한 십일조도 소홀히 해서는 안 되지만, 바로 이러한 것들을 실천해야 한다.

43 불행하여라, 너희 바리사이들아! 너희가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44 너희는 불행하여라! 너희가 드러나지 않는 무덤과 같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그 위를 밟고 다니면서도 무덤인 줄을 알지 못한다.”45 율법 교사 가운데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그렇게 말씀하시면 저희까지 모욕하시는 것입니다.” 하고 말하였다. 46 그러자 예수님께서 이르셨다.

“너희 율법 교사들도 불행하여라! 너희가 힘겨운 짐을 사람들에게 지워 놓고, 너희 자신들은 그 짐에 손가락 하나 대려고 하지 않기 때문이다.”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 집에서 예수님은 바리사이에게, 동석한 율법학자에게 불행을 선언하고 계십니다. 초대한 바리사이가 무슨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니고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고 식사하시는 모습을 보고 놀란 것이 빌미가 되어 이처럼 불행선언까지 당하고 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으로부터 호된 질책을 받을 일은 없을까? 먼저 이를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모시려다가 혼쭐이 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을 모시기 위해서 호화스러운 교회를 짓고 온갖 치장을 한 모습들은 예수님께 호된 질책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나는 너희들을 모른다고 하시지 않으실까?

요즘은 청와대에서 종교지도자분들을 만찬에 가끔 초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식사초대에는 거절하지 않았으므로 초대에 응하는 것은 합당할 것 같습니다. 예수님은 초대한 바리사이를 식탁에서 호되게 질책하였으므로 다른 종교지도자분들은 몰라도 우리 교회 지도자분들은 쓴 소리를 하는 것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길이라는 것은 오늘 복음을 읶히 알고 계시므로 그리하리라 믿습니다. 

예수님은 초대받은 식탁에서 바리사이에게 여섯 번이나 불행을 선언하셨으며 오늘 복음은 네 번의 불행선언을, 나머지 불행선언은 내일 복음으로 선정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마태복음서 23장에서는 일곱 번의 불행선언을 하신 것으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불행선언을 하신 첫 번째 이유는 "십일조를 내면서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은 아랑곳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아무리 십일조를 납부한다고 하여도 의로운 행동과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하느님의 자녀가 아니므로 불행할 수밖에 없다는 뜻입니다. '십일조를 내면서'라고 하신 말씀은 요즘 의미로는 '교회에 잘 다닌다고 하여도' 또는 이마에 십자가 인호가 찍혀 있어도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하지 않으면 구원받을 수 없다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흔히들 우리 교회를 통해서만 구원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이 명제가 성립하기 위해서는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는 전제 조건이 있음을 오늘 복음은 알려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 교회의 사명은 의로움과 하느님의 사랑을 실천할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데 있으며 이런 가르침을 계승하는 것이 참 그리스도교회의 정통성을 계승하는 것이며 이를 소홀히 하는 것은 스스로의 정통성을 포기하는 것이며, 정통성을 주장하기 위해서는 그에 걸맞은 책임도 다해야 하는 것은 다른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습니다.

불행 선언의 두 번째 이유는 "회당에서는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섬기는 자가 되라고 하셨으나 섬기는 자가 되기는커녕 윗자리에 앉아서 대접이나 받으면서 인사받기를 좋아하므로 아마 하느님은 높은 자리에 앉아 있는 순서에 의해 죄의 경중을 판단하실 것 같습니다. 이 말씀은 수평적 사회를 말씀하고 계시며 이런 수평적 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수평이 되었을 때에 물의 흐름이 멈추는 것처럼 모두가 낮아지고 낮아져서 더 이상 낮아질 수 없을 때에 비로소 수평적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우리 사회가 수평적 사회가 되도록 최선을 다해야하지만 우리 교회 조직부터가 수직적 조직이고 예수님도 미처 생각하지 못한 순종을 서약 받고 있습니다. 복음을 묵상할 때마다 자주 느끼고 있는 점이지만 우리 교회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교회인지 아니면 사라지고 없어진 로마제국의 정신을 계승하는 교회인지 분간을 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이하 말씀은 우리의 현실을 그대로 말씀하시고 계시므로 이미 이천년 전에 오늘의 실상을 예언하신 말씀입니다. 불행한 예언은 적중하지 않도록 미리미리 대비하는 것이 우리 교회의 사명임에도 이를 소홀히 한 책임은 우리 모두의 책임이고, 율법학자는 우리 사회의 불의한 지도층이고 바리사이는 그들을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자들이며 우리 교회에는 이런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없기를 바라며 오늘 묵상을 마무리하겠습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불행선언을 통하여
불행하게 될 행위들은 하지 마라는 교훈을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작금의 우리 모습은 불행선언을 하신 바로 그 모습이며
이를 알려야 할 우리 교회역시 불행선언의 그 모습이므로
오직 깨우침의 성령님만이 저희를 불행에서 구원할 수 있사옵니다.
이런 저희를 불쌍히 여기시어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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