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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삶" - 10.14,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4 조회수1,324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0.14 연중 제28주간 수요일
                                                  
로마2,1-11 루카11,42-46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삶"
 
 


하느님을 추구하는 비전을 지녀야 합니다.

비전 없이, 꿈 없이 살 수 없습니다.
하느님 비전을 지녀야
세속의 유혹이나 허무주의에 빠져 타락하지 않고
독야청청 푸른 솔 인생으로 살 수 있습니다.
 
하느님을 추구한다는 이야기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대로
꾸준히 선행을 하면서 영광과 명예와 불멸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하느님은 영원한 생명을 주십니다.

바야흐로 21세기 세계의 목표는
생명, 환경, 여성주의에 바탕을 둔 상생과 조화의 지속가능한 발전인데,
이와는 반대의 획일화로 역행하는 오늘의 현실입니다.
 
복제사회, 복제인간이란 말이 회자 될 정도로
똑 같은 한 방향으로 질주하는
무한 경쟁의 살벌한,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은 참 살아남기 힘든 시대입니다.
 
이런 저런 크고 작은 다양한 색깔과 모양의 꽃들이
조화와 균형을 이룬 화단이 참 평화롭고 넉넉해 보이듯
사회나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상호 보완과 협력 안에서 두루 행복한
공존공생, 공존공락의 세상이 좋고도 아름다운 세상이요
민주주의가 궁극으로 목표하는 바도 이런 세상일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이런 획일화의 복제사회에서
복제인간이 되지 않고 살 수 있을까요?

깨어
고독을 감수하며
용기 있게 부단히 하느님 비전을 추구하며
고유의 참 나를 사는 것입니다.
 
산처럼, 나무처럼 사는 것입니다.
 
비교하거나 부러워하지 않고
제 모습 당당히 하늘에 닿아있는 산이요 나무들 아닙니까?
 
큰 산은 작은 산을 무시하지 않고
작은 산은 큰 산을 부러워하지도 질투하지도 않습니다.
 
큰 나무들 역시
작은 나무들 앞에서 으스대지 않고
겸손히 사이좋게 공생합니다.
 
작든 크든 이상은 하늘에 닿아 있고
산자락 땅의 현실에 자리 잡은 산들이요, 뿌리내린 나무들입니다.
 
산과 나무보다 더 좋은 스승은 없습니다.
 
늘 하늘 향해 푸른 산, 푸른 솔이듯
늘 하느님 비전을 추구할 때
푸른 믿음, 푸른 희망, 푸른 사랑입니다.
 
이래야 비로소 복제사회로부터 자유로운 참 내가 되어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나 바오로 사도는 큰 산, 큰 나무 같은 분이십니다.
 
반면 복음의 바리사이들은 자기가 없는 복제인간 같은 사람들입니다.
 
하느님을 믿는다 하면서 하느님 비전을 잊어버려
이기심에 사로잡혀 진리를 거스르고 불의를 따르는 자들입니다.
 
이런 이들에게
하느님의 진노와 격분이 쏟아지듯,
주님의 불행선언이 뒤따릅니다.
 
바리사이들의 복제인간 누구나의 가능성입니다.
 
복제인간 되라고 주어진 율법이 아니기에
십일조의 법뿐 아니라
의로움과 하느님 사랑도 실천해야 하는데
바리사이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회당에서 윗자리를 좋아하고
장터에서는 인사받기를 좋아하다보니
허영에 빠져
자기도 모르는 사이
자기를 잃은 복제인간이 된 바리사이들입니다.
 
복제인간의 특징은 생각이, 영혼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냥
세상 따라,
유행 따라,
남 따라,
본능 따라 똑같이 살면 편하기에 책읽기도 생각하기도 싫어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의 특징같기도 합니다.
 
어디선가 본 글도 생각납니다.
 
최근 100년간 세계미술사에서 인간과 자연이 사라졌다합니다.
 
20세기 그림에서 인간과 자연이 다루어지지 않았다는 충격적 사실입니다.
 
이게 바로 복제사회의 특징입니다.
 
복제인간을 양산하는 교육이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물론이고 인간과 자연에서 단절된
공부자체가 목적이 된 공부기계를 만들어 내는
오늘날의 교육제도가 아닌가 싶습니다.
 
바로 독재하기 제일 좋은 게 이런 복제사회, 복제인간이요,
은연중 이런 사회, 인간을 조장하는 독재자들입니다.

복제사회에서 참 나의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은 참 고독한 투쟁이요,
구원의 길은 끊임없이 깨어 하느님 비전을 추구하는 삶뿐입니다.
 
이렇게 살지 않으면
복제인간이 되거나 적응하지 못해 정신질환을 겪든지
또는 될 대로 되라는 막가파 악의 인생으로 치달을 수 있습니다.
 
참 살기 어려운 시대입니다.
 
복제사회에서
내 고유의 존엄과 품위를 지키며
자유인으로 산다는 것,
말 그대로 옛 사막의 수도승들처럼
하느님 안에서 자기와의 고독한 싸움입니다.
 
누구도 부러워할 것도 모방할 것도 없이
하느님만을 바라보며 꾸준히 선을 행하며 사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선을 행하는 모든 이에게는
영광과 명예와 평화를 내려 주십니다.
 
늘 깨어 하느님 앞에서 산처럼, 나무처럼 사는 것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우리 모두 하느님 비전을 새로이 하면서
우리 자신을 주님 안에서 새롭게 정립하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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