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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신학 공부의 위험성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5 조회수1,308 추천수19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28 주간 목요일 - 신학 공부의 위험성

 

 

 

신학 공부를 하면 신앙이 깊어질 것 같지만 그와 반대로 신앙을 잃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저도 처음에 신학교에 입학하면서 그동안 믿어왔던 것과는 다른 가르침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어떤 신부님은 예수님의 육체적 부활을 비롯하여 예수님께서 하신 기적들, 또 연옥이나 지옥, 원죄 등의 교회 정통 가르침들을 부정하는 내용을 가르치셨습니다. 우리 신학생들은 적지 않은 혼란에 빠졌었습니다. 왜냐하면 그 신부님은 외국에서 신학을 10년 이상 공부한 신학 박사였기 때문입니다.

그 신부님은 성경해석을 비롯해, 여러 신학자들의 근거를 들며 논리적으로 가르쳤기 때문에 많은 신학생들이 혼란에 빠졌었습니다.

신학생 때 외국에 유학을 나오니 그렇게 가르쳤던 신부님이 이해가 갈 정도로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의 사고가 참 다양하였습니다.

저와 한참을 논쟁한 한 신학생은 예수님께서 피를 흘려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목적으로 세상에 온 것이 아니라 단순히 인간과 가까워지기 위해 하느님께서 육체를 취하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아마 그 신학생도 그렇게 배웠기 때문에 그렇게 말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 논리라면 예수님께서 돌아가신 것은 인류 구원의 소명 때문이 아니라 시대적 상황 때문에 운이 없어서 그렇게 고통을 당하신 것에 불과합니다.

저도 성경을 전공 하였지만 그 때 유명한 성경 신학자께서 시대적으로 예수님께서 더 조심하셨더라면 십자가에 돌아가시지 않으실 수도 있었다고 가르치셨습니다. 구약에서부터 예언된 그리스도의 수난을 믿지 않으시는 가르침인 것입니다. 단순히 말하면 예수님께서 운이 없어서 당할 필요가 없는 고통을 당하시고 돌아가셨다고 나름대로는 유명하다는 성경신학자께서 가르치시고 계셨던 것입니다.

저는 그러면서 신학을 공부하는 것이 득이 될 수도 있지만 독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느꼈고 정말 주의하지 않으면 공부를 하면서 나 자신도 그렇게 되어버릴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교구청에서 하루 종일 성경 강의를 한 적이 있었습니다. 천오백 명이 넘는 신자들의 초롱초롱한 눈빛을 보니 신자들이 얼마나 말씀에 목말라하는지 다시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성경 강의를 시작하면서 처음부터 ‘성경공부 할 필요 없다.’라는 말로 시작하였습니다. 대부분이 여정 성경공부 봉사자들이었는데 그들에게 성경공부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니 처음에는 많은 분들이 의아해 했습니다. 강의가 끝나고 그 강의를 준비하신 수녀님도 저에게 처음에는 강사를 잘못 초빙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성경공부를 해야 한다.’였습니다. 제가 처음부터 그렇게 시작한 이유는 공부에 대한 위험성을 조금은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신학을 공부하고도 실천하지 못하느니 그저 단순히 주님의 말씀을 믿고 실천하는 것이 훨씬 훌륭한 일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습니다.

 

분명 하느님을 아는 지식은 하느님나라에 들어가는데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그러나 삶으로 실천되지 않는 지식은 오히려 독이 될 수 있습니다. 같은 이슬이라도 소가 먹으면 우유가 되고 뱀이 먹으면 독이 되지 않습니까? 들어가는 것 자체는 같을 지라도 나오는 것은 그 사람의 본질에 따라 다른 것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같은 그리스도의 말씀이라도 11명의 사도들에게는 유익했지만 유다에게는 독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느님의 진리를 있는 그대로 믿고 가르치지 않고 세상과 자신의 생각대로 변형시키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사람들을 가만히 보면 그들의 삶 자체가 비가톨릭적일 때가 많습니다. 믿지 못해 믿지 않는 것이 아니라 믿기 싫어 믿지 않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진리보다도 세상적인 것을 더 따르고 싶기 때문에 하느님의 진리를 왜곡하고 또 그렇게 가르치는 것입니다.

 

율법 학자들은 진리를 듣고 그것을 더 복잡한 세속적인 규율로 변형시켰지만 예수님은 그 사랑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셨습니다.

율법 학자들과 예수님의 차이가 그것이었습니다. 율법 학자들은 많은 것을 알고는 있지만 그것을 실천하지 않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삶이 아닌 지식만 가르치기 때문에 그들까지도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들에게 없었던 가장 큰 것이 ‘선의지’입니다. ‘좋은 뜻’을 지니고 있지 않기 때문에 모든 진리들을 자신들의 주관에 따라 받아들이고 받아들이기 싫은 것은 왜곡해서라도 자신의 삶을 정당화 시키려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새 번역에서는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라고 번역을 했지만 그들이 다른 곳으로 치웠다기 보다는 원문 그대로 그들이 ‘가져가버린’ 것입니다. 다시 말해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하느님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지식을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도 그 지식을 이용하지 않고 다른 이들에게도 그 지식을 나누어주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신학자들은 지식의 열쇠를 받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신학교에서 배우는 것들을 일반 신자들은 배울 기회가 거의 없습니다. 정말 많은 것들을 배울 기회를 하느님께서 주셨지만 그것들을 자신들이 먼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천하지 못하면 신자들에게도 올바른 진리를 전달해 줄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알아감에 있어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는데, 내가 공부하는 것이 나의 믿음을 증가시키는지, 나의 사랑을 증가시키는지, 그리고 나를 더 겸손하게 만드는 지 반드시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즉, 내가 하는 공부가 믿음과 사랑, 겸손을 키우지 못하는 것이라면 우선 공부하던 것을 접고 아는 것부터 실천하려는 의지를 다지는 편이 더 나을 것입니다. 남들 앞에서 자랑할 만한 지식을 찾으려는 것이 아니라, 바로 나의 삶을 주님의 뜻대로 변화시키려는 의도로 공부를 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나를 변화시켜 더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게 만들지 않는다면 어떤 것이든 해가 되는 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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