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67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5 조회수466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 기념일]

 <아벨의 피부터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예언자들의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47-54

그때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47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48 이렇게 너희 조상들은 예언자들을 죽이고, 너희는 그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으니,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 49 그래서 하느님의 지혜도, ‘내가 예언자들과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낼 터인데, 그들은 이들 가운데에서 더러는 죽이고, 더러는 박해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50 그러니, 세상 창조 이래 쏟아진 모든 예언자의 피에 대한 책임을 이 세대가 져야 할 것이다. 51 아벨의 피부터, 제단과 성소 사이에서 죽어 간 즈카르야의 피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해야 할 것이다.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그 책임을 져야 할 것이다. 52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53 예수님께서 그 집을 나오시자,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독한 앙심을 품고 많은 질문으로 그분을 몰아대기 시작하였다. 54 예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그분을 옭아매려고 노렸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예수의 성녀 데레사 동정 학자]의 기념일입니다. 데레사영명을 가진 자매님들이 많이 계시지만 어느 데레사 영명인지를 알지 못하여 영명축일을 축하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앞으로는 데레사영명을 가진 자매님들은 어느 데레사인지를 확인하는 습관을 가지려고 합니다. 데레사 성녀는 네 분이 계시며 그 중에서 오늘 축일을 맞이하신 아빌라 데레사와 소화 데레사의 성녀의 영명을 가지신 자매님들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묵상에 앞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소품집'(분도출판사) 마지막 글을 다시 읽으며 오늘 축일을 기념하겠습니다. '나는 언젠가는 없어져 버리고 말 모든 피조물, 온갖 재보를 가지기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고 바라면서 살고 또 죽고 싶다. 저를 버리지 마십시오. 주님, 제 희망이 당신 안에서 좌절되기를(주: 시편 30,1) 바라지 않으니까요. 제가 늘 당신을 섬기게 해주십시오. 그리고 당신께서 원하시는 대로 저에게 행하십시오!'

어제에 이어 오늘은 나머지 두 번의 불행선언을 하고 계십니다. 바리사이의 초대에 응하여 식탁에서 하신 말씀을 오늘 복음까지 세 번에 나눠서 매일미사의 복음으로 선정하였으므로 오늘로서 바리사이 집의 식탁에서 선포하신 복음은 끝이 나고 있습니다. 초대한 집주인에게 우리는 실제 이렇게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그 이유는 평소에는 다소 감정이 있다하더라도 초대에 예를 갖추는 것은 사람 된 도리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어떻게 이렇게 하실 수 있을까? 

그 답은 어떤 상에도 머물지 않는 '무주상'이 아닐까 하는 묵상을 해봅니다. 어느 때나 어느 장소에서나 바람은 걸림이 없이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또는 '예할 것은 예하고, 아니요할 것은 아니요만 하여라. 그 이상은 악에서 나온 것이다'하신 말씀을 보여주시는 것으로 묵상하지 않고는 답을 찾기가 어려울 것 같습니다.

“너희는 불행하여라! 바로 너희 조상들이 죽인 예언자들의 무덤을 너희가 만들기 때문이다." 하신 이 말씀은 예언자의 진실한 소리는 기득권 세력들에 의해서, 그들을 맹목적으로 따르는 개념 없는 인간들에 의해서 사장되어 버린 그런 역사는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며, 예언자는 언제나 박해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예수님 자신도 이런 역사의 반복에 의해 희생될 수밖에 없음을 이미 알고 계셨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기득권세력들이 진실을 감추기 위해서는 예언자를 핍박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은 여러 매체를 통하여 진실이 알려지고 있으므로 모든 매체를 통제하려는 참으로 어리석은 발상들을 하고 있으며 사람들의 입을 아예 막아버리려는 치졸한 짓들을 하고 있습니다. 진보논객으로 통하는 진중권 교수를 강단에 내쫒고 심지어는 인기 MC인 김제동을 방송에서 축출하는 이런 짓들을 자행하고 있으니 통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고 노무현대통령의 영결식 때에 서울광장에서 김제동이 사회를 봤습니다. 저는 그때에 저 친구도 곧 방송에서 하차할 것이라는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습니다. 그런 불길한 예감이 떠올랐던 것은 "조상들이 저지른 소행을 너희가 증언하고 또 동조하는 것이다."하신 오늘 말씀이 제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통하여 어떤 느낌을 받고, 이런 느낌을 일부에서는 계시로 생각하지만 계시를 운운하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고, 우리 교회에서도 사적계시는 인정하지 않고 있으므로 느낌으로 정리하고, 왜 이런 느낌이 적중할까를 생각하면 이는 우리의 경험칙입니다.

우리의 경험에는 내가 직접 겪었던 직접경험도 있으며, 책을 통하여 또는 다른 사람의 얘기를 통하여 얻은 간접 경험도 있습니다. 우리 인식에 저장된 이런 직,간접의 경험들은 역사는 반복하듯이 자주 반복하고 있으므로 경험에 의한 확신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하여 간접경험을 무수히 습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가 충분히 소화하면 거룩한 말씀이고 우리의 예언서이지만 제대로 소화하지 못하면 특히 구약에서 수없이 등장하는 응징과 보복 등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제 집사람은 창세기부터 시작하여 성경 필사를 하고 있습니다. 왜 필사를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레지오 숙제라고 합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필사를 하면서 그 내용을 제대로 숙지하며 필사를 하고 있느냐 물었더니 필사하기도 바쁜데 뜻까지 생각해 볼 여유가 없다고 합니다. 마음 같아서 성경필사 때려치우라고 하고 싶지만 레지오 단원 숙제라 하므로 유구무언입니다. 연속극이나 시청하며 무료하게 시간 보내는 것에 비하면 권장할 일이지만 수시로 인공눈물을 넣어가며 돋보기에 의존하여 필사하는 것을 보면 안쓰럽기도 합니다.

 "불행하여라, 너희 율법 교사들아!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하신 이 말씀을 저는 절대적으로 신뢰하고 있습니다. 제가 고집스럽게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 묵상을 계속하는 것은, 성경해석에 관한 그 어떤 책도 보지 않고, 모든 선입관을 배제하고 묵상을 하는 이유는 바로 위 말씀을 절대적으로 신뢰하기 때문입니다.

 사실 저는 식자들에 대한 기피증이 있습니다. 이런 기피증은 바로 오늘 말씀에서 비롯되고 있으며 이런 습성이 쌓인 것은 제 경험을 통해서 입니다. 제 전문 분야에 관하여, 정부 입장을 옹호하기 위하여 언론에 기고된 글들을 보면 어떻게 저렇게 곡학아세할 수 있을까하며 그 자의 양심을 의심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율법 교사들은 바로 이런 자들이기에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서,,,,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다." 하셨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너희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는 아닌 것 같습니다. 자신들은 진실을 알기 때문에 다 알고 있으면서도 선량한 사람들만 구덩이에 빠뜨리고 있습니다. 누굴 타하겠습니까? 이런 자에게 속은 무지한 자기 자신을 탓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을 묵상하면 묵상할수록 지혜의 말씀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런 지혜는 하나라도 더 배워서 제 자신의 양분으로 삼고, 남은 삶은 늘 주님의 말씀만을 등불삼아 언제 어느 때라도 아빠 하느님을 떳떳하게 뵈올 수 있기를 다짐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예언자는 박해를 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신앙 선조들께서도 박해로 많은 분들이 순교하셨습니다.
하오나 성자께서는 예언자이기에 박해를 받을 것으로 알려주셨으나
우리 선조들께서는 다른 이유로 박해를 받고 순교하셨습니다.
다른 이유로 박해받은 이런 모습은
지식의 열쇠를 치워 버리고, 또 들어가려는 이들도 막아 버렸기 때문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오늘도 저를 괴롭히고 있나이다.
이런 의구심이 저희 후손들도 반복하지 않도록
우리 교회와 저희 모두를 지혜의 성령님께서 인도하여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