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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6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6 조회수411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28주일 금요일]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1-7

그때에 1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제자들에게 말씀하기 시작하셨다.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2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3 그러므로 너희가 어두운 데에서 한 말을 사람들이 모두 밝은 데에서 들을 것이다. 너희가 골방에서 귀에 대고 속삭인 말은 지붕 위에서 선포될 것이다.

4 나의 벗인 너희에게 말한다.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5 누구를 두려워해야 할지 너희에게 알려 주겠다. 육신을 죽인 다음 지옥에 던지는 권한을 가지신 분을 두려워하여라. 그렇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바로 그분을 두려워하여라. 6 참새 다섯 마리가 두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신다. 7 더구나 하느님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첫 구절은 야단법석입니다. 우리는 야단법석을 부정적인 관점에서 생각하지만 원 뜻은 불교용어인 ‘野壇法席’에서 유래된 것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야외에 단을 펴고 설법을 듣는다'는 뜻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때에 수많은 군중이 모여들어 서로 밟힐 지경이 되었다.'는 오늘 이 모습이 야단법석입니다. 우리는 무엇 때문에 야단법석을 하고 있는지, 이를 생각하면 안타까운 마음 뿐입니다.  

요한 복음서를 몇 번 읽고 난 후에 요한 복음서를 영화로 제작한 것을 다운받아 본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느낀 점은 복음서를 글로 이해하는 것과 영화를 보며 이해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영화는 말씀을 하시게 된 당시 상황이 화면을 통하여 실감 있게 전달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로 공부할 때에는 글자에만 연연하여 현장상황을 놓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또, 영화는 章節구분을 하지 않고 연속적으로 이어지고 있으므로 앞 말씀과 지금 하시는 말씀과의 연관성을 바로 알 수 있었지만 복음서로 공부할 때에는 앞 뒤 말씀의 관계를 놓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특히 章이 바뀔 때는 이를 놓치는 경우가 더 많았던 같습니다. 성경은 원래 章節구분이 없었으나 章구분은 13세기에, 節구분은 16세기 정도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장절로 구분 때문에 말씀하신 의도가 다르게 전달되는 경우도 있었으나 영화는 이런 장절구분이 없으므로 말씀하신 의도를 더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매일 선정된 복음은 대부분 첫 시작이 '그때에' 접두어가 있습니다. 이는 앞 복음과 연결시켜서 현장의 모습을 머릿속으로 연상하라는 뜻이지만 이를 소홀히 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그때에'가 뜻하는 것은 '바리사이의 집에서 밖으로 나오자' 이런 뜻이므로 바리사이들에 대한 공분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에서 제자들에게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을 조심하여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 고  재차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조심할 것은 바리사이들의 누룩 곧 위선이라는 말씀입니다. 누룩은 반죽을 부풀려서 빵을 만들 수 있으므로 아주 유익한 재료입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이 가지고 있는 누룩은 겉모습만 누룩이고 실제는 누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은 겉과 속이 다르다는 뜻에서 "정녕 너희 바리사이들은 잔과 접시의 겉은 깨끗이 하지만, 너희의 속은 탐욕과 사악으로 가득하다." 고 하신 말씀을 제자들에게 다시 상기시켜주는 말씀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요즘 바리사이들의 모습에 대하여 극히 일부의 예를 생각하면, 미사에 열심히 참석하고, 성경과 교리지식도 풍부하고, 기도는 남이 부러워할 정도로 청산유수처럼 유창하여 겉모습은 아주 모범적인 신자처럼 보이지만 자비심은 전혀 없는 그들이 바로 바리사이라는 묵상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사이들은 왜 그렇게 보수적인가를 이해를 못하였으나 이제야 답이 나오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 세울 수 있는 것은 이런 겉모습들뿐인데 이를 버려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므로 예수님께 앙심을 품을 수밖에 없으며 순순히 버릴 사람도 없을 것 같습니다. 겉모습을 치장하기 위해서 그동안 열심히 노력하여 익힌 것들이므로 지금까지 들인 공이 아까워서도 버릴 수 없으며, 지금까지 자신이 알고 있던 것들이 잘못된 것이 되면 그 허탈감도 이루 말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바리사이들은 개념이 없는 자들로 생각하였으나 그것이 아니라 철저하게 자기중심적인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롭게 묵상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이해도 됩니다. 지금까지 자신의 겉모습을 치장하고 있는 것들을 버리라고 하면 누가 좋아하겠습니까? 이런 바리사이들 때문에 진실을 알리는 하느님의 뜻이 박해를 받고 있지만 언젠가는 드러날 것이라는 뜻에서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바리사이들의 위선이 드러난다는 말씀으로도 이해할 수 있지만 그보다는 하느님의 뜻이 모두에게 알려질 것이라는 그런 뜻으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복음 선포는 하느님의 뜻을 알리는 것이 목적이며 바리사이들의 위선을 고발하기 위함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려면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시간이 너무 긴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진의가 숨겨지고 감추어진 채 보낸 세월이 벌써 이천년이 되었습니다. 이제야 그 새싹이 나오지만 그 새싹마저도 자라지 못하도록 무자비하게 밟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각 방면에서 무엇이 옳고 그른 것인가는 거의 드러나 있지만 인간들의 탐욕에 의하여 아직 실현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교회는 옳고 그름조차도 아직 드러나지 않고 있으므로 세상에서 가장 깊숙이 숨길 수 있고 감출 수 있는 곳을 가리켜 성역으로 부르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모두가 유언입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것을 알고 계셨기 때문에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은 사후를 대비하여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이 당신의 뒤를 따르게 되면 제자들도 당신과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을 알고 계셨으므로 그때를 대비하여 박해를 두려워하지 마라는 뜻에서 "육신은 죽여도 그 이상 아무것도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두려워할 분은, 아니 너무나 사랑하기에 헤어질 수 없는 분은 오직 아버지 하느님 한 분 뿐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각자가 인식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인식할 수밖에 없으므로 다르게 인식할 수 있습니다. 에수님이 알려주신 하느님은 저 먼 하늘처럼, 진선미 궁극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입니다. 제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에 우리 아버지 하느님이 계시므로 저는 그분과 결코 헤어질 수 없습니다.

그분께로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길이라도, 그분께로 가는 길을 그 어떤 자들이 방해하고, 제 육신을 죽인다고 하더라도 제 영혼만은 사랑하는 임을 결코 포기할 수 없습니다. 제가 두려워 할 것은 제 육신을 잃는 것이 아니라 제가 꿈꾸는 아름다운 세상에 계실 우리 아빠 하느님과 영영 헤어지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세상에 계실 아빠 하느님만을 그리워하며 이 땅 전체가 아름다운 꽃들로 만발한 그런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있습니다. 이 땅이 갖은 악취를 풍기는 곳이라면 어떻게 아빠 하느님을 만날 수 있겠습니까? 아름다운 세상에 계실 아빠 하느님만을 그리워하며 오늘도 그 길로 한발 짝 나아가는 새날 새아침을 새 마음으로 맞이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아빠 하느님을 만나지 못하게 바리사이들이
방해하고 있다고 알려주셨습니다.
그 바리사이들이 아빠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을 숨기고 감추어 버렸다 하였습니다.
이런 저희를 위해 아빠 하느님을 찾아가는 길을 새롭게 알려주셨습니다.
오직 주님이 알려주신 길만을 따라 매일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겠습니다.
언제나 바른 길을 찾아 주님께 나아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보살펴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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