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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모두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야 할 이유>
작성자김수복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7 조회수540 추천수0 반대(0) 신고
 

<모두 한 형제자매로 살아가야 할 이유>

 

* 그리스도께서 땅 위에 세우려고 오신 형제자매들의 나라를

건설하도록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그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 안으로 들어갈 수 있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사실상 어디에서나 예수를 따랐던 사람들은 가난한 사람들이었고 허기진 사람들이었습니다(마태 15,32).

예수께서는 자주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루가 6,20)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3-12)

이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예수께서는 왜 가난한 사람들더러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께서는 수많은 가난한 사람들의 참혹한 모습을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셨을까요? 왜 하필 예수께서는 형제자매들로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를 건설하는 아주 중요한 사명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맡기셨습니까?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알아듣고 실천하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진 모든 것과 자기 능력과 자기 생명까지 바쳐야 예수의 가르침을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가르침은 영리하고 유식하다고 뽐내는 사람들에게는 그 뜻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만이 예수의 가르침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루가 10,21).

 

* 우리가 행복선언을 묵상해 보면 과연 어떤 사람들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을 이루도록 부르심을 받았는지 알 수 있습니다.

 

성서의 정신에 따라서 우리는 행복선언의 첫 마디를 우리 세대의 언어로 이렇게 옮길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들이 무엇 때문에 가난해졌는지를 의식하고 있는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형제자매들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그러나 가난하다는 사실 자체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도 자기가 무엇 때문에 가난하게 살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하고 희망도 없이 살아갈 뿐 사회 속에서 가난을 없애기 위해서 싸우고 있지 않으면 결코 행복하지 못할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기쁜 소식을 전달받아 하느님께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은 하느님을 믿고 하느님께 희망을 걸고서 하느님을 아버지로 모시고 모든 사람을 형제자매로 사랑하는 사회와 세계를 건설하는 데 몸바칠 수 있게 되는 일입니다.

가난한 사람들 가운데 참다운 형제자매 사랑의 씨앗이 발견됩니다. 좋은 땅에 떨어진 그 씨앗은 많은 열매를 맺습니다. 그 씨앗은 가난한 사람들을 깨어나게 하고 뭉치게 하고 형제자매들의 나라를 건설하는 일꾼이 되게 합니다.

 

*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마태 5,6)


성서에서 정의(正義)란 모든 것을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질서지움을 뜻합니다. 우리가 거듭 강조한 것처럼 인간과 인류를 위하시는 하느님의 크신 계획은 모든 인간이 당신을 아버지로 모시고 형제자매로 살아가도록 하는 데 있습니다.

그런데 사회에서 형제자매의 사랑이 없는 결과, 밤낮없이 고통을 당하고 있는 사람들 이상으로 형제자매의 사랑을 주리고 목말라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실의에 빠져 좌절한 사람들, 비참한 생활에서 벗어나는 일을 포기한 사람들은 형제자매들의 사회를 건설하는 사명을 떠맡을 수 없습니다. 굶주림과 목마름은 사라져 없어질 때까지 우리를 그냥 평안하게 놓아 주지 않습니다. 정의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은 우리가 착취가 판치는 세계 속에 살고 있는 한 결코 우리를 그냥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사랑과 정의를 굶주리고 목말라 하는 가난한 사람들만이 형제자매들의 사회를 건설할 수 있습니다.

정의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으면 예수께서 하신 말씀의 의미를 잘못 알 수밖에 없습니다. 정의에 등돌리는 사람들은 예수의 말씀을 오로지 영신적 차원으로만 해석하려 듭니다. 이런 짓은 예수의 가르침을 배신하는 짓입니다.

 

*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7)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가 되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동정과 연민을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형제자매 사랑과 정의에 따른 폭넓은 자비심을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악의 원인을 바로 보아야만 악이 우러나오는 원인을 없앨 수 있습니다. 불의와 증오를 깨부수는 사람들만이 형제자매들의 나라에 들 수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4)

온유하고 양순한 사람이란 줏대 없이 다른 사람에게 끌려 다니는 사람을 뜻하지 않습니다. 온순하고 양순한 사람이란 잘못된 폭력에 맞서면서도, 다른 모든 수단이 물거품이 되기까지는, 비폭력저항을 포기하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평화롭게 정의를 좇는다고 해서 결코 불의와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평등한 형제자매의 사랑을 다치지 않게 하기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습니다. 예수추종자들에게는 양순함과 굳셈이 하나이고 똑같은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마태 5,8)

개인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사로잡히지 않는 사람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이중 성격을 쓰지 않고 모리배처럼 거짓과 술수를 부리지 않는 사람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이해관계에 따른 선입견에 눈이 멀지 않고 사물을 그대로 바라볼 줄 아는 사람이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노동자 농민 등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네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면서도 기회만 닿으면 돈벌고 출세하겠다는 욕심을 버릴 때, 그들은 마음이 깨끗한 사람입니다. 가난한 사람들도 그처럼 마음이 깨끗해야 자기들 안에 자기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뵈올 수 있을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해야만 그들도 억압당하고 짓밟히는 자기네 자신이 바로 육화하신(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자신임을 뚜렷하게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마태 5,9)

“정의는 평화를 가져오고 법은 영원한 태평성대를 이루리라.”(이사 32,17)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우리가 모두 똑같은 아버지의 자녀들임을 의식하는 사람들입니다. 속임수와 거짓으로 분열과 증오를 부추기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아닙니다.

사회의 공동선을 위해 몸바치는 정직하고 깨끗한 정치가들은 행복합니다. 그들은 평화의 일꾼들이며 하느님은 그들을 당신 자녀로 삼으십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10)

박해를 받고 있는 상태는 우리의 행동과 투신이 올바르다는 표시입니다. 형제자매 사랑을 참되게 실천하는 사람은 반드시 이기심과 욕심과 공명심의 노예들로부터 박해를 받게 되어 있습니다(마태 10,16-26).

예수께서는 조직화된 이기주의자들의 속임수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마태 5,11)

이 세상에서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와 모욕과 모함과 비난을 받는 사람들만이 형제자매들의 세계 곧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할 자격이 있습니다.

 

* 예수께서 이 모든 말씀을 하실 적에 거기에 있던 사도 야고보는 여러 해가 지난 다음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행복선언을 요약해 주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을 부요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신 그 나라를 차지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야고 2,5)

바울로도 초기 그리스도신자공동체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의 일을 생각해 보십시오. 세속적인 견지에서 볼 때에 여러분 중에 지혜로운 사람, 유력한 사람, 또는 가문이 좋은 사람이 과연 몇이나 있었습니까?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지혜 있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어리석은 사람들을 택하셨으며, 강하다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이 세상의 약한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또 유력한 자를 무력하게 하시려고 세상에서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멸시받는 사람들, 곧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1고린 1,26-29)

 

* 요약해서 말하자면, 가난한 사람들만이 사랑과 정의에 넘치는

세계를 건설할 수 있는 능력과 희망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랑과 정의가 넘치는 세계 곧 하느님의 나라는 오직 깨달음을 얻은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습니다. 정의에 굶주리고 목말라 할 줄 아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습니다. 자기 이웃 및 자기보다 더 못한 사람과 한마음이 되어 있는 가난한 사람들, 가난을 빚어 내는 사회불의를 뿌리뽑으려고 노력하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습니다.

모진 투쟁과정 속에서도 굳세게 흔들림이 없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습니다. 이중성격을 쓰는 기회주의자가 되지 않고 두려움을 이겨 내면서 박해와 죽음을 무릅쓰는 가난한 사람들에게만 열려 있습니다.

“형제자매 사랑과 정의를 실현하기 위하여 몸바치는 가난한 사람들은 행복하다. 그들이야말로 참된 그리스도신자이다!”

 

묵상과 대화


1. 무엇 때문에 예수께서는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까?

2. 성서에서 ‘정의’란 무슨 뜻입니까? 정의에 대한 굶주림과 목마름이 없이는 나머지 행복선언이 의미가 없어지는 까닭은 무엇입니까?

3. ‘온유하다는 것’은 무슨 뜻입니까? 온유함과 타협은 어떻게 틀립니까?

4.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누구입니까?

5. 무슨 이유로 예수께서는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을 행복하다고 말씀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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