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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성령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17 조회수541 추천수3 반대(0) 신고
 
 

위기 속에서 드러나는 성령 - 윤경재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사람의 아들도 하느님의 천사들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너희는 회당이나 관청이나 관아에 끌려갈 때,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 (루카 12,8-12)

 

 

오래전 독일의 어느 마을에 자기 아버지에 대해 긍지와 자부심을 품은 유대인 소년이 살았습니다. 유대교 신앙을 가진 그의 부모는 투철한 신자였기에 안식일마다 열심히 회당에 참석하여 십일조와 예물을 드리며 경건한 신앙생활을 하였고 자녀들에게도 그렇게 하도록 가르쳤습니다. 

그러다가 이 소년이 열 살 때 가족은 다른 마을로 이사하게 되었는데 새로 이사한 마을에는 개신교인 루터파 교회뿐이었습니다. 짐을 정리하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 부친은 가족에게 말하기를 ‘다음 주부터 우리는 유대교의 전통적인 신앙을 포기하고 루터파 교회에 출석하자.’라고 말했습니다. 

갑작스럽게 뒤바뀐 부친의 태도에 놀란 소년은 교회를 옮겨야 하는 이유를 물었습니다. 그 아버지는 ‘우리 사업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이 같은 아버지의 말에 소년은 크게 당황하고 실망하였습니다. 그 실망은 점차 신앙에 대한 의심으로 변하게 되었으며 그 의심은 일생토록 그를 괴롭혔던 것입니다. 나중에 그의 아버지는 공직에 진출하고자 가톨릭으로 개종하였습니다.

그 후 그는 독일을 떠나 영국 망명생활 중에 날마다 영국의 대영 박물관에 앉아 헤겔의 철학을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1867년 자본론이란 책을 저술하였고 1875년에는 자기의 사상을 총정리 하여 ‘범철학비판’이란 책을 저술하였습니다. 그 책에서 그는 첫째, 하느님의 존재를 부인하였습니다. 둘째, 인간의 양심도 부정하였습니다. 셋째, 종교는 아편에 불과하다고 단정하고 공산주의를 제창하였습니다. 

부모의 위선적인 종교 생활이 무서운 결과를 가져왔던 것입니다. 그가 바로 20세기 세계를 혼란에 빠트린 엄청난 공산주의 사상가 카를 마르크스였습니다.

 

성령에 충실한 사람은 신앙을 자신의 이익을 위한 도구로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거룩한 척하거나, 잘나가고 말발을 세우기 위해 교회에 나가거나 종교생활을 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습니다. 어느 교회의 목사는 노골적으로 자기 교인 상점들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또 상인들에게는 자기 교회 교인이 되면 장사에 도움이 될 거라고 꼬입니다. 그렇다면 그들이 믿는 종교는 성공과 출세를 위한 수단에 지나지 않으며, 우상숭배에 지나지 않습니다. 

참 신앙은 세상에 하느님의 나라를 건설하는 데에 작은 밑거름이 되는 일입니다. 단지 죽어서 영생을 얻거나 개인의 안녕과 만족을 위해 신앙생활을 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에는 여전히 부족합니다. 그런데 자신의 현세적 이익을 위하여 종교를 이용한다면 예수님의 진심을 몰라도 한참 모르는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혹시 사람의 아들을 거스르는 말, 즉 예수님의 가르침과 조금 어긋나는 말을 하더라도 신앙의 본질인 성령의 가르침에 충실하다면 된다고 가르치십니다. 

가리옷 유다는 예수님을 배반하였습니다. 어쩌면 그는 자신의 방법으로 머뭇거리는 듯한 스승 예수님의 계획을 앞당기고 현세적 승리를 쟁취할 수 있을 것이라 상상했을 것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뜻을 자기 멋대로 농단하였으며 자신의 계획을 꾀한 것입니다. 그랬더라도 회개하고 예수님께 돌아왔다면 그는 주님께 용서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렇지 못하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용서의 영인 성령을 거슬렀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인간의 의지로 생명의 영을 훼손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는 용서받을 기회가 두 번 다시없었습니다. 

동물의 세계에서 야생동물들은 홍수나 지진 같은 자연재해를 미리 아는 능력이 있다고 합니다. 2004년 동남아 지진 해일 때 수십만의 인명 피해를 냈지만, 야생동물은 피해 사례가 보고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중국 지진 때도 동굴에 살던 박쥐들이 며칠 전에 모두 다른 지역으로 피하였다고 합니다. 들쥐와 개미들이 홍수를 피해 이사 가는 광경도 자주 목격됩니다. 

그러나 인간은 어리석게도 그런 위험성을 감지하지 못하고 넋 놓고 있다가 엄청난 피해를 봅니다. 스스로 만물의 영장이라고 부르짖지만, 미래를 예지하고 겸손하게 대처하는 능력은 미물만 못합니다. 무엇이든 자신들이 제어할 수 있다는 교만과 무슨 일이 벌어지겠어! 하는 안이함 때문입니다. 그리고 환란에 닥쳐서는 어쩔 줄 몰라 우왕좌왕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에게 진리를 아는 성령을 부어주셨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황공하게도 그 성령을 거슬러 제멋대로 행동하였습니다. 이것이냐 저것이냐 비교하며 생각하였습니다. 멋대로 재단하고 선택하되 사라져 없어질 헛것에 눈을 돌렸습니다. 탐욕과 어리석음 탓입니다. 

“모든 피조물이 지금까지 다 함께 탄식하며 진통을 겪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로마 8,22)

인간만이 성령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살아 뭇 피조물이 아우성치고 있다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입니다. 이제 인간도 성령의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한다는 절박함의 외침입니다. 위기 때에 놀라운 예지력을 발휘하는 동물처럼 우리도 악령의 유혹과 환란을 당할 때 성령을 더욱 예민하게 느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 겸손함과 충실함과 굳셈이 우리를 성령께로 이끌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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