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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7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0 조회수398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29주간 화요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35-38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35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36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37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38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예수님의 주요 말씀중 하나는 깨어있어라! 하신 말씀입니다. 깨어있어라! 이 말씀은 잠에서 깨어나듯, 미몽에서 깨어나듯 잘못된 상황에서 벗어나라는 말씀입니다. 같은 어원인지는 알 수 없으나 비슷한 말은 깨뜨림(깨침)이 있습니다. 부화된 병아리는 그동안 자신의 보호막을 깨뜨림으로서 광명의 새 세상으로 나올 수 있고, 우리도 우리를 감싸고 있는 온갖 갇힘에서 벗어나야 자유로운 세상과 만날 수 있습니다. 우리를 우리 스스로가 속박하고 있는 온갖 탈에서 벗어나는 것을 불교에서 말하는 해탈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들은 잠자고 있으므로 우선 잠에서 깨어나는 것이 급선무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눈을 뜨고 있으므로 깨어있다고 할 수 있지만 상황을 즉시하지 못하면 잠자고 있는 것과 하등 다를 바 없을 것입니다. 눈뜨고 도둑맞는 거나 잠자면서 도둑맞는 거나 매 일반이지만 아마 더 원통한 것은 눈뜨고 도둑맞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보다도 더 원통한 것은 도둑맞고 있는 줄 알면서도 도둑을 맞는 경우입니다. 이 경우는 오늘 복음과 주제가 다르므로 다음 기회가 있으면 묵상하겠지만 위정자들에게 속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어쩔 수 없는 경우가 아닌가 합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오늘 복음에서는 준비된 상태를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유비무환의 자세로 매사를 준비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참으로 준비할 것은 하느님을 영접할 준비를 빈틈없이 하라는 말씀이 오늘 복음입니다. 우리 신앙은 개인적인 관점에서는 하느님을 영접할 준비를 철저히 하는데 있으며 그러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예수님의 가르침을 통해 배우고 있습니다.

우리 신앙은 하느님을 영접할 준비를 철저히 하는데 있음에도 아직은 실감하지 못하는 분들이 많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초등학생에게 이런 사실을 얘기한들 실감하는 학생들이 과연 몇이나 될까요? 졸업 후 취업이 걱정인 학생들에게, 다니는 회사가 구조조정을 하여 내일을 알 수 없는 가장에게 하느님을 영접할 준비를 철저히 하라고 한들 당장 내일의 일보다 더 절실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신앙을 내 삶에 어떻게 접목시키느냐는 각자가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습니다. 또 하느님을 인식하는 인식능력이 제 각각이므로 신앙관의 차이도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은 생각하지 않고 나와 다르면 색안경을 쓰고 바라보는 모습들이 많이 있음을, 물론 저도 예외는 아니지만 요즘 절실히 느끼고 있습니다. 생각의 차이는 있을망정 모두다 가르침을 실천하려고 노력하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그 사람 나름대로는 하느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고 있을 것입니다. 이 부분에 있어서는 우리 모두 좀 더 포용력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으로 정리하겠습니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에서 죽음을 생각하는 동물은 인간 밖에 없다는 것은 알려진 사실이지만 지구상에 존재하는 동물 중에서 하느님을 생각하며 사는 동물도 인간 밖에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을 바르게 인식하여 하느님의 뜻대로 살아가느냐가 인간 됨됨이를 평가하는 기준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이 바로 오늘 복음의 참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영성을 쌓는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아서 이를 실천하기 위해서 입니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뜻을 다 안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축복을 받은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뜻을 다 알려주셨기 때문에 축복을 받은 것입니다. 앎을 실천에 옮기지 않으면 이 또한 모르는 것과 같다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면 우월의식이 생겨나 타인을 지배하려 하므로 알지 못한 것보다 더 나쁠 수도 있어 보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았다면 자비와 사랑을 깨달을 것이므로 권위의식은 생각조차 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런 차이가 바로 영성과 지식의 차이고, 영성은 권위를 지식은 권위주의를 수반할 수밖에 없어 보입니다.

흔히들 우리 그리스도교를 통하지 않고는 구원받을 수 없다고들 합니다. 다원주의, 포용주의 입장을 떠나 어떻게 구원받을 수 있을까를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한 답은 오직 하나, 얼마나 하느님을 영접할 준비를 착실히 하였느냐가 관건일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 어느 때 아빠 하느님을 영접하려 갈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당장 오늘이라도 아빠 하느님을 뵈려 갈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항시 준비를 하고 있어야 합니다. 저는 딱 한 가지는 지금이라도 준비가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제가 오늘 당장이라도 아빠 하느님께 가더라도 따로 할 일도, 정리할 일도 없어 보입니다. 

이제 남은 일은 하느님께 점수 딸 일만 남아 있으므로 불의를 멀리하고 칭찬받는 일만 하려고 합니다. 생로병사를 피할 수 없는 우리 삶은 어차피 죽음으로써 완성되므로 십자가에서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하신 마지막 말씀을 늘 기억하여 매사에‘我’를 죽이고 또 죽이는 길만이 언제나 깨어있는 모습이라는 것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무리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언제나 깨어있어 아빠 하느님을 영접할 준비를 하라고 하였습니다.
저희는 언제 어느 때 아빠 하느님을 맞이할지 아무도 알지 못합니다.
언제나 깨어있어라 하신 말씀은
언제나 아빠 하느님께 칭찬받는 일만 하라는 말씀으로 기억하려고 합니다.
매사에 제 자신을 죽이고 또 죽여서 칭찬받는 일만 하려고 합니다.
이런 마음이 변치 않도록 언제나 성령과 함께 하도록 보살펴 주시옵소서!
영원한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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