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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깨어 준비하는 기다림은 감동을 줍니다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0 조회수698 추천수9 반대(0) 신고
 
 

깨어 준비하는 기다림은 감동을 줍니다 - 윤경재

 

“너희는 허리에 띠를 매고 등불을 켜 놓고 있어라. 혼인 잔치에서 돌아오는 주인이 도착하여 문을 두드리면 곧바로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처럼 되어라. 행복하여라, 주인이 와서 볼 때에 깨어 있는 종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 주인은 띠를 매고 그들을 식탁에 앉게 한 다음, 그들 곁으로 가서 시중을 들 것이다. 주인이 밤중에 오든 새벽에 오든 종들의 그러한 모습을 보게 되면, 그 종들은 행복하다!”(루카 12,35-38)

 

대학 시절에 공강이 되어 한적한 찻집에서 책을 읽으며 음악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때 애인을 기다리는 듯한 남자가 옆자리에 앉았습니다. 앉아서 시계를 보며 문쪽으로 눈길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동은 그리 초조해하는 눈치는 아니었습니다. 무엇인가 가방에서 찾는 동작을 하더니 색종이를 꺼냈습니다. 작은 종이학을 접고 또 장미꽃도 접더군요. 투박한 남자의 손길에서 어떻게 저런 솜씨가 나오는지 놀라울 뿐이었습니다. 금세 몇 개를 접더니 소매 춤에 감추었습니다. 그리고는 저처럼 책을 꺼내 읽더군요. 얼굴에 가벼운 미소를 짓는 모습이 무엇인가 즐거운 꿍꿍이를 떠올리는 듯했습니다. 제 호기심을 끌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제 관심은 그에게서 멀어졌습니다. 

한 30여 분이 지났습니다. 그러나 옆자리에는 여전히 침묵만이 흘렀습니다. 그 남자는 책 읽는 재미에 빠졌는지 문쪽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제 예상이 틀렸나 보다하고 생각했습니다. 보통은 제 예감이 잘 맞아떨어졌는데 말입니다.

20분 정도 지나니까 역시나 한 여인이 문을 열고 들어와 잠시 홀을 두리번대더니 금세 제 옆자리 남자에게 다가왔습니다. 그렇게 바쁜 기색은 없었습니다.

“일찍 왔네.”

“응. 시간이 남아서 책도 읽고 음악 좀 들으려고”

남자의 무덤덤한 태도에 사귄 지 오래된 보통 친구라고만 여겨졌습니다. 잠시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더군요. 여기까지는 하도 평범해서 어떤 호기심도 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다음 행동이 저를 깜짝 놀라게 하였습니다. 

남자가 테이블 위에 놓였던 냅킨을 반쯤 잘라 들고 성냥불을 그어 불을 붙이더니만 공중으로 불타는 냅킨을 던져 올렸습니다. 저는 기이한 그의 행동에 움찔 놀랐습니다. 그 남자는 재빠르게 여인의 눈앞에 장미꽃 송이와 종이학을 꺼내 보였습니다. 마치 불에 탄 냅킨이 재에서 장미꽃 송이로 변한듯했습니다. 여자는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하고 장미꽃을 받아 쥐었습니다. 잠시 후 눈가에는 살짝 이슬이 맺히기까지 하더군요.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 남자가 사랑하는 여인을 기쁘게 해주려고 마술을 피우기 위해 어떤 준비를 하고 있었다는 것을. 소매 춤에서 장미꽃을 꺼내는 동작이 제 눈에는 확 띄었기에 아마 전문 마술꾼은 아닐 겁니다. 하지만 어설퍼 보이는 그의 태도에서 한 젊은 남자의 진정한 사랑을 느꼈습니다. 

한 시간 가까이 사랑하는 여인을 기다리며 그렇게도 침착한 모습을 보일 수 있다는 것이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나 같으면 초조해서 연방 문을 쳐다보고 시계를 보며 안절부절못했을 것입니다. 엽차도 몇 잔은 마셨겠죠. 그러나 그 남자는 너무나 침착해서 보는 사람의 예상을 빗나가게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그의 행동은 주위 사람들을 감동으로 몰아갔습니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저렇게 해야지 하는 마음이 들도록 하였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준비한다는 뜻의 동사로 hetoimazo 와 katartizo 가 사용됩니다. hetoimazo 동사는 시간적으로 미리 준비한다는 뜻이 강조되며, katartizo 동사는 무엇인가 가다듬고 정리하면서 준비한다는 뜻이 담겼습니다. 

예수께서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네 제자를 부르실 때 야고보와 요한이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는 동사에 사용되었고, 히브리서 10,5절에 예수께서 “당신께서는 제물과 예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저에게 몸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라고 마련한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그물은 한 번 쓰고 나면 호수 바닥에서 걸린 수초와 잡동사니로 어지럽혀집니다. 또 그물코가 뜯어지기도 합니다. 다음에 잘 사용하려면 쓰레기를 떼어 내고 수선도 하며, 그물을 한번에 던지기 쉽게 잘 말아 놓기도 해야 합니다. 수리하고 온전하게 만드는 그런 일련의 동작을 katartizo 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께서 다른 제물을 원하지 않으시고 당신의 몸을 받으시려고 ‘나에게 몸을 마련하셨다.’라고 고백하십니다. 이때 쓰인 동사가 katartizo입니다. 무엇인가 계획하고 실제로 준비한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고보와 요한이 찬찬히 그물을 손질하며 준비하는 태도를 눈여겨보시고 첫 제자로 부르셨다고 여겨집니다. 뜯어진 그물을 수리하듯 상처받은 사람들을 어루만져 줄 것이라고 보셨을 것입니다.

앞서 말했던 연인의 태도를 보며 깨어 기다린다는 것이 상대방을 감동시키려고 구체적으로 준비하며 기다린다는 것이라고 배웠습니다. 그때 자신은 기쁨에 싸여 초조하고 지루함이 전혀 없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의 깨어 기다리시는 성품을 전부 물려받으셨습니다. 그리고서 우리에게도 본받으라고 요청하십니다. 그때 기쁨과 행복이 그 안에서 저절로 솟아나리라고 말씀하시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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