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7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2 조회수390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연중 제29주간 목요일]

<나는 평화를 주러 온 것이 아니라,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49-53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49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 50 내가 받아야 하는 세례가 있다. 이 일이 다 이루어질 때까지 내가 얼마나 짓눌릴 것인가? 51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오히려 분열을 일으키러 왔다.

52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세 사람이 두 사람에게 맞서고, 두 사람이 세 사람에게 맞설 것이다. 53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딸에게, 딸이 어머니에게, 시어머니가 며느리에게,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언젠가 주일미사에 오늘 복음이 선정되었습니다. 정확히 오늘 복음인지 아니면 마태오 복음서의 말씀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미사를 마치고 집사람과 함께 귀가하며 '오늘 복음 말씀이 무슨 뜻인지 이해할 수 있었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납니다.

저는 복음을 미리 묵상한 탓에 어느 정도는 말씀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었지만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오해할 소지가 많은 복음이어서 강론 중에 오늘 복음의 의미를 알려주실 것으로 기대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강론 중에 오늘 복음의 의미를 알려주는 말씀이 없었습니다. 하여 집사람이 오늘 복음을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지를 귀가 길에 유일하게 확인하였던 말씀이기에 오늘 복음이 잊혀지지 않고 있습니다.

집사람의 생각은 집안 식구들 사이에도 종교가 달라서 서로 갈라진 경우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시어머니와 며느리가 종교가 다른 경우에는 종교 때문에 고부간의 갈등이 있는 경우를 주위에서 많이 목격한 탓에 이런 관점에서 생각하고 있지는 않을까하여 확인해보니 그렇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숭고한 뜻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상황에서 단순히 오늘 복음만을 알려주고 해석하라고 하면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또 개신교 일부에서는 실제로 그렇게 설교하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요즘은 뜸하지만 한동안 국내에서도 묻지마 방화사건이 심심찮게 일어났습니다. 미국 LA 등 해외에서도 큰 산불이 발생하여 주민들이 대피하는 일이 자주 발생하고 있으며 방화범의 소행으로 추측하는 보도를 접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방화범의 소행이라면 예상할 수 있는 점은 사회에 대한 증오심에서 방화를 하였을 것입니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하셨습니다. 당시 사회가 얼마나 불의한 사회였으면, 얼마나 썩은 사회였으면 예수님도 세상에 불을 지르고 싶다고 하였겠습니까? 세상에 불을 지를 수 없으므로 청년 전태일은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렀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몸을 태운 그 불로 이 사회에 노동운동의 불꽃이 훨훨 타오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어디 그뿐이겠습니까? 유신과 80년대 군부독재시절을 거쳐 오면서 자유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우리 청년학생들이 얼마나 많이 자신의 몸에 불을 질렸습니까?

우리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자신의 생명보다 더 소중한 가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그토록 소중하게 생각하였던 가치들이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가 되기를 그들은 그토록 소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이 소망했던 가치들이 이미 우리 사회의 보편적인 가치로 활활 불타오르기를 그토록 바랐던 것입니다. 그들의 그런 바람처럼 예수님은 하느님의 참 뜻이 우리 사회에 활활 불타오르기를 바라시며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 불을 지피우기위해서 그들은 자신의 몸으로 불씨가 되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흔히 세례를 우리 가톨릭에 입교하기 위하여 거쳐야하는 통과의례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세례의 참 의미는 그간의 잘못들을 깨끗이 청산하고 앞으로는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며 새로운 각오로 살아가겠다는 하느님과 나와의 약속입니다. 하느님과의 약속은 파기할 수 없는 약속이기에 그 약속이 완료되기 까지는 우리를 끝없이 짓눌릴 수밖에 없습니다.

예수님은 광야에서 하느님으로 부터 부여받은 소명, 그 소명을 완수하는 것이 이 땅에 오신 이유이며 하느님과의 약속이므로 이를 세례로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 땅에 하느님의 뜻인 사랑과 자비의 불꽃이 훨훨 타 오를 수 있도록 자신의 몸을 사랑의 불을 지피우기 위한 불씨가 되기로 하였음을 오늘 복음을 통하여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불의한 세상에 사랑의 불을 지피우기 위해서, 우리를 불의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사랑의 불씨로 십자가에 높이 들어 올려 졌던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습니다. 불의한 세상에서 고통 받고 있는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가르침대로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기 위해서 돌아가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죄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의 죄는 우리가 깨어나지 못하여 불의한 자들에게 속고 사는 것이 죄라면 죄이고, 깨어나지 못하여 불의한 자들에게 핍박받고 사는 것이 우리의 죄라면 죄이고 이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처럼 우리의 죄는, 우리의 고통은 무지에서 오는 것이므로 무지에서 깨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미몽에서 깨어나 기껏해야 한줌밖에 안 되는 그렇지만 이 땅 전체를 오염시키는 불의한 자들에게 사랑과 자비의 신종플루를 감염시켜야 합니다. 사랑의 바이러스에 감염되기를 싫어하는 불의한 세력들에게, 그들에게 빌붙어서 이익을 취하고 있는 바리사이들에게, 이들에게 속고 있는 불쌍한 민중들에게, 그들의 어떤 방해공작에도 굴하지 않고 사랑의 바이러스를 확산시켜 나가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한 집안의 다섯 식구가 서로 갈라져, .... 아버지가 아들에게,,,,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맞서 갈라지게 될 것이다.”하신 말씀은, 사랑의 바이러스를 확산시키기 위해서는 내 아버지가. 내 어머니가. 내 부인이, 내 자식이 깨어나지 못하여 그들에게 동조하고 있다면, 아니 내 가족도 불의한 세력이라면 내 가족과도 맞서 사랑의 바이러스를 전파시켜야 하고, 또 그리하여 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랑의 불씨가 되시어 지피우신 사랑의 불꽃으로 우리 교회는 불의한 세상에 불을 질러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우리 교회가 태어난 것입니다. 이런 사명을 우리 교회는, 우리는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는지를 오늘 복음을 통해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를 소망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온 세상에 사랑의 불꽃이 훨훨 타오르기를 바라시며
스스로 사랑의 불씨가 되셨습니다.
저희는 그 불씨로 사랑이 없는 불의한 세상에 불을 지르러 모였습니다.
하오나 저희는 이런 사명을 잊고 있사옵니다.
아니 우리 교회는 이런 사명을 알려주는데 너무 긴 세월을 허송세월하여
그 사명마저도 잊고 있는 듯하옵니다.
우리의 사명조차도 잊고 있는 자녀들 때문에
교회 한 지붕 안에서도 화합하지 못하고 갈라져 맞서고 있사옵니다.
모두가 주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그런 자녀들이 되도록
성령의 불로 저희의 그릇된 모든 것을 태워 주시고
성령의 물로 더렵혀진 몸과 마음도 깨끗이 씻어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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