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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신앙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유영봉신부님)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2 조회수732 추천수8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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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신앙보다 더 좋은 선물은 없다
(유영봉신부님)


“신앙은 자유인데, 남에게 나의 신앙을 권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인가?” 아무도“나에게 신앙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1. 종교는 인생에 도움이 되는가?

- 인간은 본능에 따라 행동하는 동물과 달리 자유를 지닌 존재이기에 매 순간 갈등과 번민을 할 수밖에 없다. 멀리 계신 부모님께 자주 연락을 하고 찾아보아야 하는데, 자녀들과 좀더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데, 씀씀이를 줄이고 좀더 검소하게 살아야 하는데, 이런 저런 버릇을 고쳐야 하는데.... 잘 알면서도 하지 못하는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아는 것만큼 살 수 있으면’ 다 성인이 될 것이다. '하고 싶어도 하지 말아야 할 것' 과, '하기 싫어도 해야 할 것'을 제대로 하는 사람이 참으로 성숙한 사람이다.

고해소에서 고해를 듣다보면, “신부님, 저는 주일도 계속 빠지고, 아침저녁 기도도 하지 않고 너무나 하느님과 멀어진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하고 고백한다. 이 다음에 반드시 따라오는 말은 “집사람과 자주 싸우고, 아이들에게 야단만 치고, 대인관계에서 자꾸 실수를 하고, 생활이 자꾸 무질서해지는 것 같습니다. 요즘 제가 왜 이런지 모르겠습니다.”하는 고백이다. 모르긴 뭘 모르는가? 당연한 결과가 아닌가? 주일 미사도, 아침저녁 기도도 하지 않고 살다보면, 자신을 하느님 앞에 비춰보며 반성하고, 잘못을 제때에 뉘우치고, 새로운 결심을 하며 살기는 불가능한 것이다. 마치 낙엽이 물에 떠내려가듯이 시간 속에 그냥 떠밀려 가는 삶이기에 생활이 엉망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나를 하느님 앞에 새롭게 바로 세울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음미되지 않은 인생은 살 가치가 없다.
자유를 지닌 인간에게 있어서 자신을 다스리는 힘을 가진 사람만이 인간다울 수 있다. 그것은 오랫동안의 자기 자신과의 싸움을 통해 신앙 안에서 길러지고 강화되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 요즘 자살이 유행병처럼 번지고 있다. 가난을 비관한 자살도 있고, 재벌 2세의 자살도 있다. 세상살이를 하다보면 때로는 정말 “모든 것이 끝장이다.”싶은 절망의 순간, 희망이라고는 바늘구멍만큼도 없어 보이는 경우를 누구나 당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느끼게 될 때, 신앙이 없는 사람은 대개는 자살을 하거나 머리가 뺑 돌아버리는 것이 보통이다. 그러나 신앙인은 그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하느님께 맡기고 최선을 다할 수 있다. 그리고 기적처럼 회생하는 것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참으로 신앙은 강한 것이다.

- 암환자는 대개 죽는 순간까지 정신이 초롱초롱하다. 자신의 죽음이 임박해옴을 다 알고 있는 것이다. 환자들을 가까이에서 돌보며 죽음을 지켜보는 호스피스들은 신앙이 있는 이들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과 비 신앙인이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 너무나 다르다고 말한다. 비 신앙인에겐 이 세상이 전부이기에 죽음은 절망 그 자체일 뿐이다. 그러나 신앙인에게 있어서 죽음은 새로운 세상에로 옮아가는 과정이며 진통인 것이다. 그래서 죽음의 고통 그 자체도 자신의 일생의 죄와 허물을 속죄하고 정화하는 마지막 세례로 받아들인다. 예수님의 십자가상의 제사와 합쳐 바칠 수 있는 향기로운 제물인 것이다.


2. 신앙보다 더 큰 유산은 없다

우리는 이상(以上)에서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 신앙이 얼마나 큰 힘을 주는 것인지를 잘 보았다. 사실 자녀들에게 돈을 몇 억 유산으로 물려주는 것보다 어디 내 놓아도 혼자서 잘 살 수 있는 신앙을 길러주는 것이 훨씬 더 큰 선물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데도 우리는 이웃에게 “당신도 신앙생활을 한번 해보시지요”하고, “함께 성당에 가보자”고 말하기를 두려워한다. 왜인가? 괜히 귀찮게 하는 것 같아서? 아니면 “남 걱정말고 당신이나 열심히 다니시오.” “성당 다니는 당신이나 안 다니는 나나 뭐가 다른데!”하며 무안을 줄까봐?

그러나 우리는 알아야 한다. 어느 누구도 “나에게 신앙 같은 것, 하느님 같은 것은 필요 없다.”고 항상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달리 말하면 신앙만큼 누구에게나 참으로 필요한 상품(?)은 없다고 할 수 있다.
설령 내가 그 사람에게 신앙을 가져보라고 말하던 그 때에는 “필요 없다”고 말하더라도 언제가 "당신도 신앙을 가져보시지요"하며 던진 그 말이 그 사람의 맘을 움직일 수 있는 때가 오게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뿌린 신앙의 씨앗이 그 때에 가서 싹을 틔울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말씀을 선포하십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계속하십시오."(2디모4,2)하신 사도 바오로의 말씀대로 복음전파에 열과 성을 다해야 하는 것이다.
“새 순이 돋아나지 않는 가지는 죽은 가지이다.” 선교를 통해 새로운 신앙의 싹을 틔우지 못하는 신자는 죽은 신자라 할 수 있다. 지금부터 미리 미리 많은 공(功)을 들여야 한다. 갑자기 예비자를 구할 수는 없는 것이다. 신앙보다 더 큰 선물은 없다.

 

[10월 23일, 금요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12,54-59>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오늘의 묵상]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내일의 날씨는 예측하면서 ‘내일의 삶’은 왜 덮어 두느냐는 말씀입니다. 재물이 앞날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곁에는 돈과 물질이 넘쳐 나고 있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현실을 풀이할 열쇠는 언제나 사랑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애정 결핍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본능의 탐닉에 쉽게 빠져듭니다. 물질로 영혼을 달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답이 아닙니다. 갈증만 심해질 뿐입니다. ‘사랑하는 삶’이 정상적인 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화해에서 시작됩니다.

싸운 적도 없는데 무슨 화해를 하란 말인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행위’가 화해입니다. 먼저 웃고,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손을 내미는 행동입니다. 늘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뜻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소송 중인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재판관이신 주님께로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보이는 것만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삶 속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깨달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사랑도 깨달음입니다. 아픔 없이 어떻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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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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