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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의 복음과 오늘의 묵상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3 조회수506 추천수4 반대(0) 신고

2009년 10월 23일 금요일[(녹) 연중 제29주간 금요일] 

카페스트라노의 성 요한 사제 기념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복음>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2,54-59
그때에 54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구름이 서쪽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면 곧 ‘비가 오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5 또 남풍이 불면 ‘더워지겠다.’ 하고 말한다. 과연 그대로 된다. 56 위선자들아,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57 너희는 왜 올바른 일을 스스로 판단하지 못하느냐?
58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그러지 않으면 그가 너를 재판관에게 끌고 가, 재판관은 너를 옥리에게 넘기고, 옥리는 너를 감옥에 가둘 것이다.
59 내가 너에게 말한다. 네가 마지막 한 닢까지 갚기 전에는 결코 거기에서 나오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복음>

 

“너희는 땅과 하늘의 징조는 풀이할 줄 알면서, 이 시대는 어찌하여 풀이할 줄 모르느냐?”
내일의 날씨는 예측하면서 ‘내일의 삶’은 왜 덮어 두느냐는 말씀입니다. 재물이 앞날을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곁에는 돈과 물질이 넘쳐 나고 있지만 ‘내일 일’은 아무도 모릅니다.
현실을 풀이할 열쇠는 언제나 사랑입니다. 너무나 많은 이들이 애정 결핍 속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본능의 탐닉에 쉽게 빠져듭니다. 물질로 영혼을 달래려는 것이지요. 하지만 답이 아닙니다. 갈증만 심해질 뿐입니다. ‘사랑하는 삶’이 정상적인 길입니다. 그리고 그 삶은 화해에서 시작됩니다.
싸운 적도 없는데 무슨 화해를 하란 말인가? 아닙니다. 마음을 열고 ‘다가서는 행위’가 화해입니다. 먼저 웃고, 먼저 말을 걸고, 먼저 손을 내미는 행동입니다. 늘 만나는 사람에게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것이 이 시대의 뜻입니다. “너를 고소한 자와 함께 재판관에게 갈 때, 도중에 그와 합의를 보도록 힘써라.” 소송 중인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 모두는 재판관이신 주님께로 걸어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현실에 안주하고 싶어 합니다. 보이는 것만 따라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삶 속에는 ‘보이지 않는’ 부분이 훨씬 더 많습니다. 깨달음을 통해서만 알 수 있는 부분들입니다. 사랑도 깨달음입니다. 아픔 없이 어떻게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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