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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만이 유일한 계명>
작성자김수복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3 조회수522 추천수1 반대(0) 신고
 

<사랑만이 유일한 계명>

 

* 우리는 예수께서 당신 공생활을 시작하실 적에 설파하신 길다란 설교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예수께서는 사람에게 요구하실 수 있는 최선의 것을 요구하십니다.

 

예수께서는 당신 죽으시기 전날 밤 우리에게 새로운 계명을 주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요한 15,12)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요한 15,17)

이 계명이 죽어 가는 예수님의 유언입니다. 마지막 소원입니다. 예수님의 생애 전체를 요약하는 계명입니다.

이 유언이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요한에게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그래서 요한은 자기 편지에서 거의 사랑에 대해서만 말합니다.

이 계명은 예수님의 새로운 계명입니다. 특별한 계명입니다.

모세는 십계명을 주었지만 예수께서는 오직 한 계명만을 주셨습니다.

 

* 예수께서는 왜 당신 계명을 새로운 계명이라고 말씀하십니까? 그것은 예수께서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 사랑의 잣대는 “네 이웃을 네 몸처럼 아껴라.”(레위 19,18)였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형제자매들의 나라를 이루고 있는 사람들에게 사랑의 잣대는 그와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들을 더 사랑하라는 말을 들을 수 있지만, 예수께서는 당신이 우리를 사랑하신 것처럼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한없는 사랑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끝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요한 13,1) 예수께서는 당신 벗들을 위하여 당신 생명을 바치셨습니다(요한 15,13). 사람을 위하시는 그리스도의 사랑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믿기지 않는 사랑입니다(에페 3,17-19).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던 것처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사랑은 그저 다른 사람에게 호의와 호감을 보이는 정도, 우리 시간을 조금 나누어 주는 정도, 자선을 베푼다거나 조언을 해 주는 정도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이른바 ‘자선사업’ 정도가 결코 아닙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예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사랑하려면, 우리는 우리 재산과 명성과 직업과 생명까지를 내놓을 각오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서서히 또는 한꺼번에 우리 생명을 형제자매인 다른 사람을 위하여 바칠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요한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1요한 3,16)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사랑은 너무 엄청나서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들은 그 사랑을 실천하는 우리를 정신나간 사람이라고 착각할 정도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무엇인지를 모르는 사람은 누구나 다른 사람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심없이 깡그리 바치는 사랑의 의미를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새로운 계명의 사랑은 끝이 없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 사랑을 다 할 수 없습니다. 그 사랑은 모든 사람적인 가능성을 뛰어넘습니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마지막 이유는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하느님 자신이 사랑이심을 믿는 사람들만이 다른 사람들에 대한 사심없고 제한없는 사랑이 그리스도신자들의 유일한 관심사임을 깨달을 수 있을 것입니다.

 

* 우리 형제자매인 다른 사람은 바로 그리스도 자신입니다.


이 명제는 예수께서 주신 사랑의 계명의 두 번째 아주 새로운 내용입니다.

앞에서 우리는 하느님께 대한 사랑과 다른 사람에 대한 사랑에 대하여 말해 왔습니다. 이 두 가지 사랑은 서로 다른 두 가지 실재입니다.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자신이 사람이 되시고 우리 각 사람 안으로 들어오셨습니다. 하느님은 사람 존재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현존해 계시고 특히 가장 가난한 사람들 안에 현존해 계십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은 곧 그리스도께 해 드린 것이 됩니다.

어린아이 하나에게 시원한 물 한 그릇을 주는 사람은 곧 그리스도께 그렇게 해 드린 셈이 됩니다(마태 10,42; 18,5).

굶주린 사람과 목마른 사람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그 사람 안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공장 노동자로, 농촌 농민으로, 달동네 빈민으로, 도시 서민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고 계십니다. 헐벗은 어린아이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고 계십니다. 차가운 겨울 밤 추워서 잠 못 이루는 사람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고 계십니다. 영양실조로 허약해져 질병에 걸린 사람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고 계십니다. 옳은 일을 하다가 또는 불의한 사회 구조 때문에 감옥에 갇힌 사람으로 그리스도께서 다시 살고 계십니다(마태 25,35-36).

그리스도께서는 고통당하는 모든 사람으로 계시고 착취당하는 모든 사람으로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박해당하는 모든 사람으로 계십니다(사도 9,4-5).

하느님을 만나고 싶으면 하느님이 계시는 곳으로 찾아가야 합니다. 즉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을 찾아가 만나면 곧 하느님을 만나는 것이요, 강도에게 당해서 상처를 입고 길바닥에 쓰러진 것과 같은 꼴을 당한 사람을 찾아가 만나면 곧 하느님을 만나는 것입니다(루가 10,29-37).

그리스도께서는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들로 살고 계십니다. 그러나 많은 경우 우리는 그리스도를 뜬구름 속에서 찾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매우 분명합니다.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형제자매인 다른 사람을 해친 죄는 곧 그리스도 자신을 해친 죄입니다(1고린 8,12). 그리고 형제자매인 다른 사람을 섬기면 곧 그리스도를 섬기는 셈입니다.

그리스도의 전언을 전달하는 사람을 환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자신을 환영하는 사람입니다(요한 13,20). 그리고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사람은 그리스도 자신을 박해하는 사람입니다(사도 9,5).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1요한 4,20) 왜 그럴까요? 하느님이 그가 미워하는 사람의 형제이시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미워하는 사람입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8)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누구나 다 살인자입니다.”(1요한 3,14-15)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스도신자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하나이심을 굳게 믿습니다. 그러나 흔히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 특히 가난한 사람들과 하나이심을 믿으려 들지 않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이 되셨고, 세상 끝날까지 가난한 사람들, 보잘것없는 사람들, 억눌리고 빼앗기는 사람들, 옳은 일을 하다가 감옥에 갇히고 고문을 당하는 사람들로 날마다 늘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마태 28,20).

 

묵상과 대화


1. 모세는 십계명을 남겨 주었고 예수께서는 오직 한 가지 계명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은 무엇입니까?

2.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라는 요한의 말은 무슨 뜻입니까?

3. 그리스도의 계명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요구합니까?

4. 다른 사람을 형제자매로 여기는 사랑을 우리는 어느 정도까지 실천해야 합니까?

5. 우리를 서로 사랑하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걸림돌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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