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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무엇을 회개하여야 하나 - 윤경재
작성자윤경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4 조회수1,046 추천수3 반대(0) 신고
 
 

무엇을 회개하여야 하나 - 윤경재

 

“너희는 그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러한 변을 당하였다고 해서 다른 모든 갈릴래아 사람보다 더 큰 죄인이라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 또 실로암에 있던 탑이 무너지면서 깔려 죽은 그 열여덟 사람, 너희는 그들이 예루살렘에 사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큰 잘못을 하였다고 생각하느냐? 아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모두 그렇게 멸망할 것이다.” (루카 13,1-5)

 

불행하게 사고로 죽은 사람을 보면 우리는 가끔 천벌을 받아서 죽었을 것이라고 안이하게 판단하곤 합니다. 왜 그런 사고가 생겼는지 무엇인가 이유를 따져 묻기가 겁나서입니다. 도저히 답을 알 수 없는 문제에 당면하면 눈을 감아버리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골치 썩여가며 살기가 싫은 겁니다. 

바리사이 같은 유대인들은 특히 이런 곤란한 문제에 관해 어떤 정답을 안다고 자만했습니다.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은 생전에 알게 모르게 하느님께 불경스러운 죄를 많이 지었기에 벌을 받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이런 사고방식은 특히 욥기에서 욥을 위로하러 찾아 왔던 세 친구에게서 잘 드러납니다. 엘리파즈, 빌닷, 초바르 세 사람은 욥에게 자신도 모르는 새에 지은 죄를 찾아보고 고백하라고 어르고 윽박질렀습니다. 욥에게는 위로하러 온 친구들이 아니라 무고한 사람을 잡으러 온 형리처럼 보였습니다. 도저히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욥을 설득시킬 방도가 없으니 결국 인간은 누구나 죄가 있는 것이니 무조건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느님께 빌라고 요청했습니다. 빌지 않는 그 자체가 죄라고 억지스러운 주장을 펼쳤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을 잘 읽어 보면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아주 새로운 진리를 말씀해 주시고 계십니다. 변을 당해서 죽은 사람들의 이유를 죄 탓으로 돌리는 이들의 좁은 생각을 정정해 주십니다. 

그들은 무엇보다 죄의 경중을 따졌습니다. 분별하는 마음을 일으킨 것입니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죽은 사람은 더 무거운 죄를 지은 것이며 다행히 살아난 사람은 가벼운 죄를 지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죽은 사람을 안타까워하기보다 자신이 살아 있다는 것에 안도하는 것입니다. 이들 마음속에는 인과응보 사상에 젖어 책망과 안도가 교차할 뿐 새로운 회개의 기회가 되지 못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기회에 전혀 다른 시각을 생각해보라고 유도하십니다. 죽음을 죄의 문제와 결부시키는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 죽음을 전혀 별개의 시각으로 바라보라는 말씀입니다. 

죽음의 실재는 하느님께 나아가는 기회라는 것입니다. 너희가 그들의 죽음을 통해서 어떤 깨달음을 얻지 못하고 죽음에 맞닥뜨린다면 너희가 악담하는 바로 그대로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너희가 그들이 무가치하게 벌을 받아 죽었다고 저주한다면 너희도 그런 대접을 받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그처럼 멸망할 것이다.’라는 말을 쓰셨습니다. 멸망이라는 단어는 무화(無化)한다는 뜻입니다. 끝장난다는 말씀입니다. 

즉, 예수께서는 인간이 죽음을 앞에 두었더라도 하느님께 나아가는 회개를 한다면 無化하거나 끝장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세계로 나아가는 문이 된다는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뜻입니다. 실제로 그 사건으로 그렇게 죽은 사람들이 무화했는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제3자인 사람들이 악담할 뿐입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회개하지 않으면 자신에게는 無化가 실제로 벌어지는 것입니다. 그는 그 無化를 체험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은 변할 수 없습니다. 

悔改는 단순히 후회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옛일을 돌이켜 본다는 뜻의 반성(反省)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전인적으로 삶의 방향을 하느님께 돌린다는 말입니다. 하느님께 방향을 두었기에 하느님께 도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방향마저 다른 데로 두면 도저히 도달할 수 없음은 자명합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회개는 우리가 생각하는 그런 회개와 다를 수 있습니다. 현대에 사는 우리는 너무 개인적인 성향이 강해 개인의 성화 개인의 회개에 지나치게 매달려 있습니다.

 

독일의 신학자인 본 훼퍼는 히틀러의 독재 정권에 일생 투쟁했습니다. 그는 “어느 미친 운전사가 차를 몰고 있습니다. 그가 차를 돌진하면서 숱한 교통사고를 내며 달리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그 자리에 있었고 만일 기독교인이라면 뛰어다니며 부상자들에게 치료만 해주고 기도만 해주겠습니까? 아니면 미친 운전사를 끌어내리겠습니까?”라고 설교했습니다. 

나중에 본 훼퍼는 히틀러를 암살할 계획을 세우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암살기도가 발각되어 히틀러의 개들에 의해 투옥되고 사형당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죽음 직전에 환상을 보고 남긴 일화가 있습니다. 그 환상에서 하느님께서 재판장이 되시고 히틀러가 심판대에 서 있었습니다. 하느님은 엄중하게 판정하셨습니다. “너 히틀러는 그동안 많은 사람을 괴롭히고 무고한 피를 무수히 흘리게 했으니 지옥으로 가서 영겁의 불에 고통을 받아야 한다.” 

이때 히틀러가 부르짖었습니다.“하느님, 저는 죽어서 이러한 세계가 있는 줄을 알지 못했습니다. 만일 알았다면 저는 그러한 죄를 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누구 하나 저에게 이런 것을 알려 주지 않았고 또 전도하는 자도 없었습니다.” 

그 환상을 본 본 훼퍼는 가슴을 치며 회개했다 합니다.

“주님, 저는 그 영혼을 불쌍히 여겨 전도할 생각은 미처 못 했습니다. 그를 끌어내리려고만 했지 회개시키는 것은 생각지도 못 했습니다.”

 

바로이어 나오는 대목이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무화과나무는 본래 생장 능력이 뛰어나 그 나무 한 그루가 있으면 주위에 다른 식물이 자라지 못한다고 합니다. 영양분을 모두 자신이 섭취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무화과나무가 열매를 맺지 못한다는 것은 은총을 충분히 받았으나 아무도 하느님께 이끌지 못하고 사는 사람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그 당시 유대인들은 어느 민족보다 우선하여 하느님을 아는 은총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오해하고 배반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다른 민족들에게 웃음거리로 되었습니다. 결국 다른 민족에게 잘못된 표양을 보여 하느님께 이끌지 못하는 잘못을 저질렀습니다. 그 무화과나무처럼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 셈입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행위를 하고 있는지 반성하며, 참된 회개를 하여야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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