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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기 정원에 심었다' - [유광수신부님의 복음묵상]
작성자정복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7 조회수565 추천수7 반대(0) 신고
<자기 정원에 심었다>(루가 13,18-21)

-유광수 신부-

 

 하느님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까?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 그랬더니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다.

 

지난 주일 젠 베르데와의 만남에서 사람들이 많은 이야기들을 주고 받았다. 사람들은 젠 베르데의 삶에  대해서 많은 궁금증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어느 한 자매가 "나는 당신들이 공항에 내릴 때부터 줄곧 당신들 가까이에서 보았는데 한결같이 모두들 밝고 웃는 모습이었다. 그 비결이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젠 베르데 단원들 중에 한 자매가 대답하기를 "우리는 우리 각자가 체험한 하느님을 늘 기억하고 그것을 잊지 않기 위해 마음에 간직하고 관리하고 있다. 이런 우리들의 노력이 우리가 체험했던 하느님에 대한 체험들이 식지 않고 우리 안에서 자라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아마도 그런 생활들이 익숙해졌기 때문에 늘 기쁘고 웃으면서 생활할 수 있는 것 같다."고 대답하였다.

 

성모님도 "이 모든 일을 마음 속에 간직하였다."(루가 2,51)라고 하였듯이 우리가 받은 하느님의 은혜 또는 하느님에 대한 체험들을 잊지 않고 늘 마음 속에 간직하며 생활한다면 늘 기쁘고 감사드리며 생활할 수 있을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얼마나 많은가? 그러면서도 감사드리지 못하는 것은 받은 은혜에 대해서 잊어버리고 살아가기 때문일 것이다.

 

"하느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다.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고 하였다. 하느님의 나라는 대단한 것이 아니다. 우리가 할 수 없는 일들을 통해서 건설되거나 체험되는 것이 아니다. 겨자씨란 가장 작은 것을 상징한다. 하느님의 나라는 가장 큰 것이 아니라 가장 작은 것으로부터 시작된다.

누구나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을 수 있는 작은 씨앗으로부터 시작된다. 중요한 것은 이 작은 것이 잘 자라게 하기 위해서 얼마나 정성껏 가꾸느냐에 달려 있다.

 

오늘 복음에서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비유로 사용한 겨자씨나 누룩그 자체로는 아무런 매력도 없고 아름답지도 않다. 가장 작고 나약하고 무기력해 보일 뿐이다. 그렇지만 그것이 아름답게 자라서 하늘의 새들이 와서 깃들일만큼 되려면 씨앗 자체가 썩어야하는 고통과 누룩이 밀가루 속에 파묻히는 수모를 겪어야 비로서 그 진가를 발휘할  수 있다.


작은 겨자씨는 말씀이요,
"어떤 사람이 그것을 가져다가 자기 정원에 심었다."는 것은 말씀을 "자기 마음 속에 받아들였다."는 것이다. 말씀을 받아들였으면 그 말씀이 잘 자라도록 끊임없이 관심을 갖고 잘 가꾸어야 한다. 말씀을 듣고 잘 가꾸지 않으면 돌밭이나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과 같은 것이다.

 

아무리 크게 자랄 수 있는 씨앗이라도 잘 가꾸지 않으면 자랄 수 없다. 내 마음 속에(자기 정원에) 심어 놓은 말씀의 씨앗은 무엇인가? 어떻게 자라고 있는가? 어떻게 가꾸고 있는가? 잘 자라고 있는지 아닌지는 나의 모습이 얼마나 말씀으로 변화되어가고 있는 가에 달려 있다. 말씀의 씨앗을 심어 놓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그 작은 말씀의 씨가 내 안에서 자라게 하려면 정성껏 가꾸는 노력이 필요하다.그런 노력을 하는 이유는 그 말씀이 내 안에서 자람으로써 말씀만 자라는 것이 아니라 말씀이 자라면서 거기에 맞게 나도 자라기 위함이다.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내 삶이 말씀으로 변화되게 하기 위함이다. 내가 말씀으로 변화되어야 내 안에 하느님의 나라가 오는 것이지 아무런 변화가 없다면 그냥 나의 나라로 머무는 것이지 어떻게 하느님의 나라가 되겠느냐? 누룩을 밀가루 속에 넣었더니 온통 부풀어 올랐듯이 그렇게 말씀이 내 안에 들어와서 나의 모습을 온통 말씀으로 부풀어 오르게 만들어야 한다.

 

즉 우리가 말씀을 묵상하면서 점차적으로 내 존재의 변화를 가져와야 한다. 즉 겨자씨와 같은 작은 말씀의 씨앗이 내 마음 안에서 자라서 나무가 되어 하늘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일만큼 크게 자라야 한다. "주여 당신의 집에 사는 이는 복되오니, 길이 길이 당신을 찬미하리이다."(시편 83,5)

 

이 세상의 모든 위대한 것, 온갖 보람있는 것, 일체의 가치 있는 것은 모두 노력의 산물이요, 피땀의 결과이다. 한 송이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도 우리는 많은 노력의 땀을 흘려야 한다. 꽃밭을 갈고 씨앗을 심고 거름을 주고 물을 주고 잡초를 뽑아 주고 벌레를 잡아 주어야 한다. 이러한 수고의 땀을 흘리지 아니 할 때, 우리의 꽃밭에는 잡초가 무성하고, 벌레가 끓어서 꽃은 피지도 못하고 버린다.

 

사람은 저마다 심는대로 거둔다.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고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둔다. 아무것도 심지 않으면 아무 것도 거둘 것이 없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날 까닭이 없다. 콩을 심으면 콩을 거두고 팥을 심으면 팥을 거둔다. 콩을 심었는데 팥을 거두는 일이 없고 팥을 심었는데 콩이 날 까닭이 없다.


우리는 적게 심고 많이 거두려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팥을 심고 콩을 거두려는 바보가 되어서는 안 된다. 나는 심지 않고 남의 심은 것을 탐내고 빼으려는 심술궂은 사람이 되어서는 안된다.


사람은 자기가 심는대로 거둔다는 인생의 대진리를 믿고 우리는 이 진리에 의지해서 살아가야 한다. 요즘 우리 국민의 사고방식과 인생관과 가치관은 병들고 허망하다.


저마다 인생을 쉽게 살려고 한다. 노력없이 성공하려고 한다. 또 노력의 땀을 흘리지 않고도 성공할 수 있고 행복할 수 있다는 허망한 논리에 사로잡혀 있다.
벼락 성공, 벼락 출세, 벼락 부자, 벼락 감투를 꿈꾼다. 그것은 모두 벼락맞을 생각이다.


인생은 결코 쉽게 살아지는 것이 아니다. 쉽게 살아지는 인생은 행복할 수도 없고 또 행복하다고 해도 결코 오래 갈 수 없다. 공(功)든 탑이라야 무너지지 않는다. 나의 땀으로 쌓은 성공이 확실하고 나의 땀으로 건실한 행복이 오래 가고 나의 땀으로 이룩한 인생이 참되고 알차다.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이 하느님의 선민이 될 수 있다."고 토마스 제퍼슨은 말했다. 일을 많이 해서 "손에 굳은살이 박힌 사람이 식탁의 제일 상좌에 앉아서 따뜻한 밥을 먼저 먹을 수 있다."고 톨스토이는 외쳤다.

 

아름다운 집은 가만히 앉아서 지어지는 것이 아니다. 한 장 한 장 벽돌을 쌓고 내부 치장을 아름답게 꾸밀 때 비로소 아름다운 집이 완성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 동안 숫한 말씀의 씨앗을 뿌리셨다. 그 말씀을 내 정원 안에 심어 놓고 잘 가꿀 때 하느님의 나라가 만들어 가는 것이지 아무 씨앗도 심지 않고 달라고 해서 건설되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너무 쉽고 안이하게 하느님의 나라를 바라는 것 같다.

 

지금 내 마음의 정원 안에 무슨 씨앗을 심었고 그것을 어떻게 가꾸고 있는지 살펴보자. 하느님의 나라는 말씀의 씨앗을 심고 그 씨앗을 잘 가꾸 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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