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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78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8 조회수335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

<제자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아 사도라고 부르셨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2-19

12 그 무렵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나가시어, 밤을 새우며 하느님께 기도하셨다. 13 그리고 날이 새자 제자들을 부르시어, 그들 가운데에서 열둘을 뽑으셨다. 그들을 사도라고도 부르셨는데, 14 그들은 베드로라고 이름을 지어 주신 시몬, 그의 동생 안드레아, 그리고 야고보, 요한, 필립보, 바르톨로메오, 15 마태오, 토마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열혈당원이라고 불리는 시몬, 16 야고보의 아들 유다, 또 배신자가 된 유다 이스카리옷이다.

17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 그분의 제자들이 많은 군중을 이루고, 온 유다와 예루살렘, 그리고 티로와 시돈의 해안 지방에서 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18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이었다. 그리하여 더러운 영들에게 시달리는 이들도 낫게 되었다. 19 군중은 모두 예수님께 손을 대려고 애를 썼다. 그분에게서 힘이 나와 모든 사람을 고쳐 주었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성 시몬과 성 유다(타대오) 사도 축일]이어서 오늘 복음이 선정된 것 같습니다. 12사도의 聖名은 요한 복음서를 제외한 세 복음서에 모두 기록되어 있으며 오늘 복음인 루카 복음서에는 12사도의 한 분인 타대오를 두 공관복음서와는 다르게 유다로 기록하고 있으며 우리 교회는 이 두 분을 같은 분으로, 또 바르톨로메오는 요한 복음서에 등장한 나타나엘과 동일한 분으로 추정하는 것 같습니다.

초기 교회를 이끌어간 12사도분들 중에 베드로 사도와 일부 사도분 들을 제외한 다른 사도 분들에 대한 행적은 거의 알려진 바 없으나 우리 교회의 전승에 의해 모두 순교한 것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교가 313년에 공인되었고 사도 분들의 순교를 60년대로 추정한다면 그로부터 대략 250년 전에 순교하였으므로 이에 대한 자료 등을 수집하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은 아닌 듯 여겨집니다. 더군다나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으므로 불가능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므로 오늘 두 분 사도의 축일을 맞이하여 사도 분들에 대한 기록이 부실한 점은 더욱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예수님은 기도를 하실 때에 대부분 산에 홀로 가셔서 기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할 장소를 회당이 아닌 산을 택한 것은 대자연의 경건함 속에서 아빠 하느님을 더욱 가깝게 느낄 수 있다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으므로 우리도 대자연과 호흡하며 호연지기를 길러야 대 우주를 창조하신 하느님을 그나마 조금 느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늘과 땅에 가득 찬 생명의 기운을 우리가 제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은 대자연이며 사방이 꽉 막힌 답답한 그런 공간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의 인식을 초월한 저 머나먼 궁극에 계신 분이므로 그 누가가 어떻게 설명한들 대자연의 신비를 주관하시는 그분을 설명할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의 온갖 치장도 들에 핀 나리꽃 하나만큼도 차려입지 못하였다 하였습니다. 우리에게 온갖 수사를 동원하여 하느님을 알려준다하여도 들에 핀 나리꽃 한 송이를 바라보며 느끼는 그 신비감에 비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런 하느님을,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느님을 어느 특정 종교가 독차지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늘에 떠있는 저 별을 그 누가 독점할 수 있을까요? 진리는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것처럼 하느님은 어느 누구도 독점할 수 없는 그분이기에 '우리 아버지'로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아버지'가 뜻하는 것은 온 인류를 더 나아가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피조물을 돌보시는 분이라는 뜻일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분이 자신들만 보호해 주신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마치 우리 일부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은 우리 그리스도인들만 보호해 주신다고 믿고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오류에서 벗어나 하느님의 뜻을 가장 많이 깨달은 사람들이 성인이고, 그분들의 가르침을 절대적으로 믿고 따르고자 하는 것이 우리가 종교생활을 하는 이유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의 뜻을 배우겠다는 사람들이 특히 우리 일부 그리스도교인 들이 하느님의 뜻을 가장 거역하며 나와 다르면 남을 배척하는 이런 모습들은 호연지기를 통해서 하느님을 느끼지 못하고 잘못알고 있는 하느님만을 상상하고 있기 때문에 그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밤새 기도하시며 제자들을 뽑으신 것은 열두 사도를 선발하기 위하여 얼마나 고뇌하셨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무런 그림도 그려있지 않는 하얀 종이에는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을 그릴 수 있지만 이미 그림이 그려진 종이에는 그 어떤 유명한 화가도 자신이 생각하는 그림을 그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가장 순수한 사람들을 제자로 뽑으셨으며 글을 알아서 많은 지식을 습득한 율법 학자들과 이미 잘못된 율법에 물이 들어 완고해질 대로 완고해진 바리사이들은 제자로 뽑지 않았습니다.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는다는 말씀 또한 제자들을 선발함에 있어서도 그대로 적용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가 평지에 서시니,....온 백성이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하였습니다. 이 말씀에서 '산'은 내 혼자만의 세계를, '평지'는 우리가 살아가는 공동체를 뜻하는 것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나 혼자 아무리 득도를 하였다 한들 우리는 어차피 俗에서 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聖俗 이런 구분조차 하고 싶지 않지만 이런 구분이 있다고 한다면 산에서 평지로 내려오셨다는 말씀은 聖은 俗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뜻으로도 묵상해 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사람도 있으며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는 사람들도 무수히 많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런 모습이기에 오늘 복음에서는 '평지로 내려오시니 말씀도 듣고 질병도 고치려고 온 사람들로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나몰라하고 聖만 고집한다면 그런 聖은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중생이 아프니 내가 아프다'는 유마거사의 이 한마디를 기억한다면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도 더 분명해 지지 않을까? 자문하며, 특히 오늘은 용산참사로 구속된 분들의 1심 선고가 있는 날이므로 그분들을 위해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밤새 고뇌하시며 열 두 제자를 뽑으셨습니다.
그리고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평지로 내려오셨습니다.
우리 교회의 지도자분들께서도 구중궁궐 높고 깊은 곳에 그만 홀로 계시고
주님께서 이 땅에 강림하셨듯이,
제자들과 함께 고통 받고 있는 민중들을 위해 평지로 내려오셨듯이
언제나 민중들과 함께 하시며 주님의 자비를 베풀어 주시옵길
또한 저희들도 자비의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성령으로 인도하여 주시옵고
특히, 용산참사로 구속된 그분들도 주님의 자비로 기뻐하는 오늘이 되기를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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