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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형제자매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작성자김수복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8 조회수408 추천수1 반대(0) 신고
 

<형제자매들로 이루어진 공동체>

 

* 예수께서 부활하신 후 신자 숫자가 아주 빠르게 늘었습니다(사도 2,41; 4,4; 9,14; 6,7).

 

이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은 그리스도와 더불어 서로 사랑하기 위하여 부활한 사람들로 이루어졌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이미 죽음을 벗어나서 생명의 나라에 들어와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 속에 그대로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1요한 3,14)

초기 그리스도신자들은 자기들이 새로운 생명 안에서 살아간다고 느꼈습니다. 그들은 자기네 자신을 ‘새로운 사람들’로 생각했습니다(2고린 5,17).

세례는 그들로 하여금 모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용기를 갖도록, 모든 것을 형제자매인 다른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사용하도록, 이기주의와 착취에 맞서 싸우는 방법을 익히도록, 진정한 형제자매들의 세계를 건설할 수 있도록 힘을 줍니다.

사도행전에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믿는 사람은 모두 함께 지내며 그들의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재산과 물건을 팔아서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만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한 마음이 되어 날마다 열심히 성전에 모였으며 집집마다 돌아가며 같이 빵을 나누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쁘게 음식을 함께 먹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이것을 보고 모든 사람이 그들을 우러러보게 되었다. 주께서는 구원받을 사람을 날마다 늘려 주셔서 신도의 모임이 커 갔다.”(사도 2,44-47)

“그 많은 신도들이 다 한 마음 한 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사용하였다. 사도들은 놀라운 기적을 나타내며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신도들은 모두 하느님의 크신 축복을 받았다.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땅이나 집을 가진 사람들이 그것을 팔아서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이다.”(사도 4,32-35)

 

* 모세는 하느님의 백성 앞에서 가난한 사람이 한 사람도 없는 이상사회를 제시했습니다(신명 15,4). 그들 각자가 자기가 필요한 대로 충분히 갖게 되었습니다(민수 26,52-55).

 

초기 그리스도신자들은 이 두 가지 이상에 완전히 충실했습니다. 그러나 거기에 더욱 깊은 요소를 덧붙였습니다. 즉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았던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이 예수님을 완전히 따른 결과였습니다.

형제자매의 사랑은 말로 되는 것이 아니라 진실과 행실로 되는 것입니다(1요한 3,18). 형제자매 사랑의 위대한 실천과 업적은 모든 것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는 일입니다.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모든 것을 다같이 소유하는 일입니다.

공동선을 추구하는 작업은 우리를 형제자매로 만들어 주고 우리를 단결하게 해 줍니다. 그러나 개인이익만을 추구하는 사업은 우리를 갈라 놓기가 쉽습니다.

2세기 중엽 유스띠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돈과 사유재산을 모으려는 유혹에 빠져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우리 재산을 공동 소유로 내어놓고 각자 필요한 대로 나누어 씁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몇 년 뒤 떼르뚤리아노는 초기 그리스도신자들이 당한 강력한 도전과 비난에 맞서 변론을 폅니다. “우리는 모두 형제자매로서 우리 재산을 한 가족처럼 사용합니다. 마음과 정신이 하나가 되어서 살아가는 우리는 주저함이 없이 우리 것을 형제자매인 타인들과 나눕니다. 우리들 사이에는 모든 것이 공동소유입니다.”

초기 그리스도신자들은 모든 것을 공동소유로 내어놓고 각자 필요에 따라 사용함으로써 형제자매의 사랑을 나타냈습니다. 그런 상태는 초기 그리스도신자들을 형제자매로서 굳게 뭉쳐 주었습니다. 공동재산은 형제자매 사랑의 열매이자 더욱 큰 형제자매 사랑의 씨앗입니다.

 

* 그들이 내어 놓은 모든 것은 성스런 것으로 여겨졌습니다.

형제자매 사랑의 결실인 그 성스런 것을 낭비하는 짓은 하느님을 거스르는 심각한 죄로 보았습니다.

 

사도행전 5장에 그런 경우가 나옵니다.

“그런데 아나니아라는 사람은 그의 아내 삽피라와 함께 자기 땅을 판 다음 의논한 끝에 그 돈의 일부는 빼돌리고 나머지만 사도들 앞에 가져다 바쳤다. 그 때에 베드로가 그를 이렇게 꾸짖었다. ‘아나니아, 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겨 성령을 속이고 땅 판 돈의 일부를 빼돌렸소? 팔기 전에도 그 땅은 당신 것이었고 판 뒤에도 그 돈은 당신 마음대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니오? 그런데 어쩌자고 그런 생각을 품었소? 당신은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인 것이오!’ 이 말이 떨어지자 아나니아는 그 자리에 거꾸러져 숨지고 말았다. 이 말을 들은 사람마다 모두 두려워하였다. 젊은이들이 들어와 그 시체를 싸 가지고 내어다 묻었다.

세 시간쯤 뒤에 그의 아내가 그 동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모르고 들어왔다. 베드로가 그 여자를 불러 놓고 ‘당신들이 땅을 판 돈이 이게 전부란 말이오?’ 하고 묻자 ‘예, 전부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어쩌자고 당신들은 서로 짜고 주의 성령을 떠보는 거요? 자, 당신의 남편을 묻고 돌아오는 사람들이 지금 막 문 밖에 왔소. 이번에는 당신을 메고 나갈 차례요.’ 하고 베드로가 말하였다. 그러자 그 여자도 당장 베드로의 발 앞에 거꾸러져 숨지고 말았다. 그 때 그 젊은이들이 들어와 보니 그 여자도 죽어 있었으므로 떠메고 나가 그 남편 곁에 묻었다. 온 교회는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도 이 말을 듣고는 모두 몹시 두려워하였다.”(사도 5,1-11).

이 경우는 초기 그리스도신자들이 얼마나 엄격하게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필요에 따라 사용했는지를 보여 주는 본보기입니다. 모든 재산을 공동으로 내어놓으라는 의무규정은 없었습니다(사도 5,4). 그러나 자발적으로 공동 재산으로 내어놓은 재산은 성스런 것으로 여겼습니다. 그리고 일단 모두의 것으로 내어놓은 것을 빼돌리는 것은 매우 심각한 죄악으로 보았습니다. 공동재산을 필요에 따라서 나누는 일에서 형제자매들을 속이는 짓은 하느님 자신을 속이는 짓으로 여겨졌습니다.

신자들의 헌금으로 이루어지는 공동재산을 가난한 사람들이 자기네 필요에 따라 나누어 쓰지 못하게 하는 자들은 아나니아와 삽피라보다 더 심한 벌을 받을 것입니다.

 

* 바울로는 자기가 쓴 편지에서 또 다른 재미있는 일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 도시 고린토에서 그리스도신자들은 형제자매의 사랑을 나누는 성찬을 나누려고 함께 모였습니다. 그들은 각자 가지고 온 음식을 성찬을 거행하기 전에 먹어 치우고 어떤 사람들은 술에 취해 있었습니다. 그런 식으로 그들은 성찬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조금씩 그리스도신자의 정신을 잃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먼저 와서 가난한 사람들을 기다리지 않고 자기들이 가져온 음식을 먼저 먹어치워 버렸습니다. 이에 바울로는 그들을 준엄하게 꾸짖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칭찬할 수 없는 일을 한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모여서 하는 일이 이익보다는 해를 자아낸다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여러분이 모이는 교회 안에 당파가 생겼다는 말을 들었는데 나는 그것이 전연 헛소문만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하기야 여러분 가운데서 진실한 사람들이 드러나려면 분파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한자리에 모여서 나누는 식사는 주님의 성찬을 나누는 것이라 할 수가 없습니다. 여러분은 모여서 음식을 먹을 때에 각각 자기가 가져온 것을 먼저 먹어치우고 따라서 굶주리는 사람이 생기는가 하면 술에 만취하는 사람도 생기니 말입니다. 각각 자기 집이 없어서 거기에서 먹고 마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의 교회를 멸시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창피를 주려고 그러는 것입니까? 이 일만은 칭찬할 수 없습니다….

그러니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그 빵을 먹거나 주님의 잔을 마시는 사람은 주님의 몸과 피를 모독하는 죄를 범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형제 여러분, 거룩한 회식을 하려고 교회가 모일 때에는 서로 남을 기다려 주십시오. 만일 배가 고프면 집에서 미리 음식을 먹고서 모임에 나오도록 하십시오. 그래야 여러분이 단죄 받는 일이 없을 것입니다.”(1고린 11,17-34) 우리가 살펴본 것처럼 성찬에 참여하는 일은 정신적인 평등만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또한 물질의 진심 어린 나눔을 요구합니다.

 

* 야고보서에도 그와 비슷한 예가 나옵니다(야고 2,1-9).

 

“나의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우리 주님이신 영광의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들을 차별해서 대우하지 마십시오. 가령 여러분의 회당에 금가락지를 끼고 화려한 옷을 입은 사람과 남루한 옷을 입은 사람이 들어왔다고 합시다. 그 때 여러분이 화려한 옷차림을 한 사람에게는 특별한 호의를 보이며 ‘여기 윗자리에 앉으십시오.’ 하고 가난한 사람에게는 ‘거기 서 있든지 밑바닥에 앉든지 하시오.’ 하고 말한다면 여러분은 불순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여 차별대우를 하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겠습니까?

내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을 부요하게 하시고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해 주신 그 나라를 차지하게 하지 않으셨습니까?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들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박하는 자들은 바로 부자가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자들도 그들이 아닙니까?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주신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자들도 바로 그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이 성경 말씀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최고의 법을 지킨다면 잘 하는 일이지만 차별을 두고 사람을 대우한다면 그것은 죄를 짓는 것이고 여러분은 계명을 어기는 사람으로 판정됩니다.”(야고 2,1-9)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형제자매로 살아가는 공동체에서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이 있을 수 없고 부유함과 가난함이라는 개념 자체도 없어져야 합니다. 그 어떠한 종류의 사람차별과 인종차별도 있을 수 없습니다.


묵상과 대화


1. 맨 처음으로 그리스도께 회개한 사람들의 생활이 바뀌었는데 그 바뀐 내용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2. 사도 2,44-47; 4,32-35와 신명 15,5; 민수 26,52-55 그리고 유스띠노와 떼르뚤리노의 증거를 비교해 보고, 인상이 깊거나 감동을 주는 대목을 지적하고 왜 그런지를 설명해 봅시다.

3. 왜 베드로는 아나니아와 삽피라가 심각한 죄를 범했다고 생각했습니까?

4. 바울로가 고린토 신자들에게 쓴 편지를 읽고(1고린 11) 성찬에 대한 생각을 나누어 봅시다.

5. 야고보가 우리에게 상기시키고자 한 것은 무엇입니까?(야고 2,1-9) 오늘날에는 어떤 식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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