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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파견 받은 자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8 조회수1,237 추천수17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성 시몬과 성 유다 타대오 사도 축일 - 파견 받은 자

 

 

 

이번에 파리에서 한국 신학생 세 분이 부제품을 받게 되어 다녀왔습니다. 부제품은 파리 가톨릭 대학 성당에서 있었습니다. 우리 교구에도 새로 서품 받은 부제님이 있어 그 첫 미사를 파리 가톨릭 대학 지하에서 했습니다. 지하로 내려가 보니 그 곳 벽 유리 안에 많은 사람의 해골들이 모셔져있었습니다. 이야기를 들어보니 프랑스 혁명 당시 이 파리 가톨릭 대학에서 순교한 사제들이라고 하였습니다. 프랑스 혁명 때 이 대학은 성직자들을 가두는 감옥으로 쓰였었는데 한 사람만 빠져나올 수 있는 작은 문을 가진 방 안에 모든 성직자들을 가둬두고 한 사람씩 나오게 한 다음에 가톨릭교회를 따르는 사제라고 하면 죽이고 나라를 따르겠다고 하면 살려 보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나 많은 사제들이 죽을 것을 뻔히 알면서 가톨릭 사제라고 자랑스럽게 증언했고 죽어갔던 것입니다. 시대를 통틀어 한 마디 거짓말만 하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지만 안 믿는다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어 순교하신 수많은 순교자들이 일시에 대단하게 느껴졌습니다.

자주 왔던 곳이었지만 선배 사제들이 믿음을 증언하다가 수없이 순교했던 바로 그 장소에 서 있다는 생각을 하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오늘도 걷기 운동을 하는 중에 한 연세 있으신 신부님께서 제가 인터넷에 올리는 글을 읽었노라며 말씀하실 때도 “말만 하며 실천하지 못하는 저의 삶을 다 아시는 분에게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부끄럽기 짝이 없었습니다.” 라고 말씀드렸더니 그 신부님은, “그것도 교만이야! 부끄러운 우리 모습을 받아들이면 돼!”라는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맞는 말씀이지만, 정말 말은 많이 하지만 삶으로 주님을 증언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많은 부족함을 느끼는 것이 사실입니다.

 

저는 ‘만약 오늘 죽는다면?’하는 마음으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글을 쓰기 시작한 것도 어쩌면 죽기 전에 뭐라도 남기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성 시몬과 유다 타대오 사도들을 묵상하며 그렇게 무언가를 남기려고 하는 생각도 철없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그 분들은 사도로서 당신들이 깨달은 것을 하나도 글로 남겨놓으시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정말 위대하신 분들은 글을 쓰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물론이고 부처님도 공자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 분들은 삶 자체가 글이고 가르침이고 법이였습니다. 어쩌면 저는 삶으로 살지 못하기 때문에 글로라도 깨달은 것을 남기려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분명 시몬 사도와 유다 타대오 사도도 그리스도로부터 직접 들은 것들로부터 깨달은 것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아니 요한과 마태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흩어져 아무런 흔적도 없이 순교하셨습니다. 저는 한 때 모든 사도들이 다 순교하셨다는 것에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물론 요한 사도만 오래 사셨지만 그 분도 끓는 기름에 던져지기도 하였으니 순교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어쩌면 그분에게는 이 세상에 오래 살아남는 것이 더 큰 순교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이 분들은 그리스도에 관해 수많은 책을 쓰려고 결심하였다면 누구보다도 생생한 글을 남기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분들은 그저 말없이 죽음을 맞이한 우리가 알지 못하는 수많은 순교자들처럼 예수님을 증언하다가 사라져갔습니다.

 

저는 교회에 도움이 되기 위해 신학을 하고 있고 또 그것으로 교회에 많은 도움이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결국 저의 이름을 남기려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시몬 사도는 열혈당원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열혈당원이라면 독립 운동가를 말합니다. 어쩌면 이런 독립 운동가를 곁에 두기를 원하셨던 예수님께서 더 대단하셨는지 모릅니다. 그렇더라도 나라의 독립을 위해 투쟁하던 사람이 세상의 권력에도 대항하지 말라고 주장하는 평화만을 원하는 한 청년의 제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커다란 자기 비움입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의 형제로 알려져 있는 유다 타대오도 예수님을 미쳤다고 생각하는 가문의 판단을 무릅쓰고 그리스도를 따랐다는 것 자체가 모든 것을 버렸음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가족 중의 한 사람이 그 분의 제자가 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어렸을 때부터도 메시아로써 받아들여지기에 전혀 문제가 없었던 분임을 증언하시는 분이 되셨습니다.

즉, 이 분들은 삶으로, 또 순교로 그리스도를 증언하신 분들이지 세상의 지혜나 글이나 말로써 사신 분들이 아닙니다. 신학이나 설교의 중요성을 의심할 수는 없지만, 진정 교회를 움직이는 것은 성령을 통한 증언이지 학문이나 글이 아닙니다. 저도 신학을 배우는 한 사람으로써 실천에 게으르지 않도록 항상 주의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예수님은 소경의 눈에 진흙을 발라주고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하십니다. 실로암은 ‘파견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도 하느님이 진흙으로 아담을 창조하셨듯이 진흙으로 새로운 창조를 하신 것입니다. 실로암에서 눈을 씻은 소경은 눈을 떠 바로 보게 됩니다. 그 때부터 그리스도인은 파견 받게 되는 것입니다. 누군가로부터 파견 받아야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가 다 파견 받은 자가 된다는 뜻입니다.

‘사도’나 ‘천사’란 말 역시, ‘파견 받은 자’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사도들을 특별히 파견하셨고 예수님조차도 아버지로부터 파견 받으신 분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하라고 파견 받은 것일까요? 바로 삶으로 하느님이 계심을 증언하라고 파견 받은 것입니다. 증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겠지만 성령 충만한 삶을 보여줌으로써 사람들이 하느님이 계심을 깨닫게 하라고 파견 받은 것입니다.

오늘 두 사도의 축일을 지내면서 진정 말이나 지혜로만이 아니라 삶으로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우리들이 될 것을 결심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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