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두려움을 넘어라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29 조회수1,806 추천수21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30 주간 목요일 - 두려움을 넘어라

 

 

 

인도 설화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마술사 한 사람이 쥐 한 마리를 관찰합니다. 그런데 이 쥐가 얼마나 두려워하는지 벌벌 떱니다. 가장 두려워하는 대상은 고양이입니다. 한참동안 쥐를 관찰하던 이 마술사에게 이 쥐가 불쌍한 마음이 생겼습니다. 그래서 마술을 부려서 이 쥐를 고양이로 변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변신한 고양이는 또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개를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더 불쌍하게 느낀 마술사는 다시 한 번 마술을 사용해서 이 고양이를 개가 되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개가 된 이 고양이는 개가 되자마자 또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호랑이를 두려워합니다. 불쌍하게 여긴 나머지 또 한 번 마술사는 마술을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이 개를 호랑이로 변신시켜 주자마자 호랑이는 또 무서워하기 시작합니다. 이번에는 사냥꾼의 엽총을 두려워하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이 마술사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선언합니다. “내가 아무리 해보았자 이 두려움이 끝나지 않으므로 너는 별 수 없는 쥐새끼다. 다시 쥐로 돌아가라.” 그래서 다시 쥐로 돌아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말하려고 하는 것은 지금 당장 눈앞에 있는 두려움을 없앤다고 두려움이 아주 사라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를 두렵게 하는 것들은 한도 끝도 없습니다. 그렇다면 항상 두려워하며 살아야겠습니까?

 

오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께 겁을 주어 당신의 예언 사명을 다 하지 못하도록 유혹합니다.

“그때에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어서 이곳을 떠나십시오. 헤로데가 선생님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예수님을 죽이려한다는 이 헤로데는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을 때 예수님을 죽이려했던 헤로데의 아들이고 바로 그가 세례자 요한을 죽인 인물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좋은 꾀를 생각해 냈으리라 믿었지만 예수님의 반응은 그들의 예상을 빗나갑니다.

“가서 그 여우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보라,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들을 쫓아내며 병을 고쳐 주고, 사흘째 되는 날에는 내 일을 마친다. 그러나 오늘도 내일도 그다음 날도 내 길을 계속 가야 한다. 예언자는 예루살렘이 아닌 다른 곳에서 죽을 수 없기 때문이다.”

예수님을 두렵게 하여 도망치게 만들려고 했던 바리사이들의 계략은 죽음도 두려워하지 않고 모든 것을 아버지의 뜻에 맡기는 예수님의 담대함에 창피를 당합니다.

이사야서 12장 2절에 이런 기도문이 있습니다.

진정 하느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내가 당신을 의지하니, 무서울 것이 없습니다. 야훼는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이십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당당해야 하는 것이 신앙인일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얼마나 작은 일에 걱정하고 두려워하며 살아가고 있습니까? 오늘 예수님의 모습은 어떤 것에도 두려움 없는 당당함을 보여주며 우리도 그렇게 살라고 초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당당하실 수 있었던 이유는 하느님께서 허락하시지 않으면 어떤 일도 일어날 수 없다는 믿음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나에게 일어날 일은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니 걱정해봐야 소용없고 담대히 수용할 자세만 있다면 아무 것도 두려워 할 필요가 없다는 뜻일 것입니다.

 

요즘 제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있는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바로 내적 평화가 깨지는 것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웬만하면 남과 부딪히려하지 않고, 적을 만들려고 하지 않고, 마음 상하는 일이 벌어질 것 같으면 미리 빠져버립니다.

마치 베드로가 타볼산에서 초막 셋을 짓고 그 곳에 머무르려고 했던 모습과 같습니다. 기도의 고요 안에 머무르고 싶고 그 내적 고요를 깨뜨리기를 원치 않는 것을 넘어서서 그 고요가 깨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느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 것들로부터 깨질 수 있는 평화는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아닙니다. 예수님은,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요한 14,27)라고 말씀하십니다. 즉, 주님이 주시는 평화는 죽음 앞에서도 담대할 수 있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모습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참 평화도 아닌 것을 깨뜨리기를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평화를 주셨으니 세상 앞에서 당당해집시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상이 나의 평화를 깬다면 그것은 주님으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기에 참 믿음으로부터 오는 평화를 더 증가시켜달라고 청해야겠습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