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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30 조회수1,168 추천수16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0월 30일 연중 제30주간 금요일
 
 
 Who among you, if your son or ox falls into a cistern,
would not immediately pull him out on the sabbath day?
(Lk.14.5)
 
 
제1독서 로마서 9,1-5
복음 루카 14,1-6
 
어제 인터넷을 검색하다가 깜짝 놀랄만한 기사를 보게 되었습니다. 즉, 어떤 유명 가수의 허리 사이즈가 공개되어 있었는데, 글쎄 18인치라는 것입니다. 순간 제 허리를 잡아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정도가 몇 인치인데, 그렇다면 18인치면 어느 정도일까를 손을 잡아보면서 계산해보니 끔찍했습니다. 인터넷의 표현처럼 ‘개미허리’가 분명하더군요. 그러면서 이렇게 적혀 있습니다.

‘18인치 허리 등 완벽한 몸매를 가진 ***. 그녀의 몸매관리 비법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몸매가 이렇게 가는 허리인가 봅니다. 그래서 ‘완벽한 몸매’라고 표현했으며, ‘그녀의 몸매관리 비법은?’이라는 제목으로 사람들도 따라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과거의 역사 안에서도 이러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과거의 사진과 기록을 보면 오히려 통통한 사람들이 아름다움의 기준이 되었고, 또 사람들도 그러한 사람들을 좋아했습니다.

또한 지금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가는 허리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좋아할까요? 그것도 아닙니다. 어떤 사람은 그렇게 가냘픈 모습을 좋아할지 모르겠지만, 튼튼한 몸매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분도 분명히 계십니다. 바로 현재의 모습 안에서도 아름다움의 기준은 사람마다 분명히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사실 중요한 것은 어쩌면 이렇게 허리가 가늘도록 다이어트를 했다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대로 제대로 살았는가가 아닐까 싶습니다. 다이어트를 했다고 구원되지 않지만, 주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살면 분명히 구원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깨닫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래서 일부러 안식일에도 수많은 치유의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물론 이 행위를 통해서 당시의 종교 지도자들과 대립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눈치를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들의 구원이었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이 점을 분명히 하십니다. 수종을 앓는 사람이 예수님 앞에 있습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집에 초대 받아 가셨지요. 당시에는 주인이 손님의 자리를 정해서 앉혔던 관행을 기억할 때, 수종을 앓는 사람이 예수님 앞에 있다는 것은 일부러 그렇게 좌석배치를 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즉,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치유를 하도록 유혹하려는 것이었지요.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아셨습니다. 자기에게 올가미를 씌우기에만 급급한 그들의 좁은 마음과 자신들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지금 병으로 고통 속에 있는 사람까지 이용하는 그들의 닫힌 마음을 보신 것이지요. 그래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러한 질문으로 대신하십니다.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으냐?”

인간의 생명이 어떤 것보다 중요하고, 심지어 안식일과 같은 가장 거룩한 제도보다도 중요함을 강조하십니다.

우리 역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모르고 잘못된 판단과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이 새벽에 스스로를 반성하며,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중요한 것을 행하겠다는 다짐을 해봅니다.




사랑받는 일은 불타오름에 지나지 않으나 사랑하는 것은 마르지 않는 기름에 의해 빛남을 말한다. 그러므로 사랑받는 것은 사라져 버리지만 사랑하는 것은 오랫동안 지속한다.(릴케)




만 원의 기쁨(‘좋은 생각’ 중에서)

어느 연구진이 마을 사람 모두에게 한 달 동안 날마다 만 원씩 나눠 준 다음 반응을 살피는 실험을 했다.

첫째 날, 한 남자가 집집마다 들러서 만 원을 놓고 갔다. 그를 본 사람들은 왜 돈을 주는지 의아해하면서도 공돈이라고 기뻐하며 돈을 집어 들었다. 둘째 날도 고마워하며 돈을 받아 들었다. 셋째 날, 사람들 사이에서는 만 원을 주고 가는 남자 이야기로 떠들썩했다.

그렇게 두 주가 흘렀다. 사람들은 현관 입구까지 나와 그 남자가 언제 올지 기다렸다. 그런데 삼 주째에는 아무도 현관에서 기다리지 않았다. 넷째 주가 되자 사람들은 더 이상 공짜로 만 원을 받는 일에 감사하거나 기뻐하지 않았다. 당연한 일로 여긴 것이다.

이윽고 마지막 실험 날이 되었다. 남자는 집집마다 들러 돈을 나눠 주기는커녕 골목을 무심히 지나가 버렸다. 그러자 그간의 일이 실험인 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둘 남자에게 불만을 내비쳤다.

“오늘은 왜 안 줘요? 우리가 뭐 잘못한 거라도 있나요?”

우리는 날마다 공짜로 만 원을 선물 받는 일처럼 수많은 것을 조건 없이 받고 있다. 시원한 바람, 어둠을 밝히는 달, 따사로운 햇살, 마음을 즐겁게 하는 시냇물 소리 등 우리 주변에는 값진 선물이 많다. 다만 늘 곁에 있어 얼마나 소중한지 모를 뿐이다. 이 모든 것이 기쁜 선물임을 깨달을 때 비로소 인생이 얼마나 풍요로운지 알 수 있다.
 
 
 Our love never dies - Ernesto Cortaz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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