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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31일 야곱의 우물- 루카 14,1.7-11 묵상/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
작성자권수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31 조회수419 추천수2 반대(0) 신고
섬기러 오신 예수님처럼

예수님께서 어느 안식일에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의 집에 가시어 음식을 잡수실 때 일이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 있는데, 예수님께서는 초대받은 이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모습을 바라보시며 그들에게 비유를 말씀하셨다. “누가 너를 혼인 잔치에 초대하거든 윗자리에 앉지 마라. 너보다 귀한 이가 초대를 받았을 경우, 너와 그 사람을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이분에게 자리를 내드리게.’ 할지도 모른다. 그러면 너는 부끄러워하며 끝자리로 물러앉게 될 것이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그러면 너를 초대한 이가 너에게 와서, ‘여보게, 더 앞자리로 올라앉게.’ 할 것이다. 그때에 너는 함께 앉아 있는 모든 사람 앞에서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손님들이 참석하는 행사 때 주최 측은 항상 의전에 신경을 써야 한다. ‘귀빈’ 들이 많을 때는 더욱 그렇다. 흔히 귀빈석이 따로 마련되어 있다. 누가 누구를 맞이해 안내하고 어떤 좌석에 앉게 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 두지 않으면 간혹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초대받은 사람은 생각보다 뒷자리에 배치되면 대접이 소홀하다고 섭섭해한다. 자신의 사회적 위치를 강조하면서 다른 좌석을 요구하는 사람도 있고 어떤 경우에는 일찍 행사장을 떠나기도 한다. 큰 규모의 교회 행사도 예외가 아니다. 오늘 우리도 2천 년 전 예수님 시대와 크게 바뀌지 않은 것 같다. 대접받고 싶은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동서양을 막론하고 비슷한 모양이다. 그래서 겸손하게 처신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여전히 공명을 울린다.

‘교회의 맏딸’ 로 불려온 프랑스 사회가 세속화된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왕정과 구체제를 종식시킨 프랑스 대혁명이 교회에 엄청난 타격을 가져왔지만 자유 · 평등 · 박애의 그 이상은 복음 정신과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2백 년이 흐른 오늘날 평등사상은 법뿐 아니라 호칭에도 배어 있는 듯하다. 불어로는 대통령 부인이나 건물 청소하는 아주머니나 똑같은 호칭 (마담 !) 으로 불린다. 남성이라면 누구에게나 통용되는 호칭 (무슈 !) 이 있기에 공손하면서도 복잡하지 않다. 수도 파리의 시장이나 인구 몇십 명의 시골 마을 이장이나 직함이 똑같은 것도 우리의 눈길을 끈다.

처음 만나면 명함부터 내미는 한국에서는 그냥 이름보다는 직함을 붙여 부르거나 직함만 부르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종사하는 일과 관계없는 곳에서까지 직함을 사용하는 사람을 보면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단체나 직장의 자리에 따른 여러 호칭은 사람들을 은연중에 차별하고 줄 세운다.
이렇다 할 직함이나 직업이 없는 사람의 처지에서 생각해 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같은 장소에서 각각 ‘김 교수’ 와 ‘김씨’ 로 불리는 두 사람이 평등하게 보일 수는 없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 밑에 사람 없다.’ 는 속담이 참말이 되기 위해서는 무언가 바뀌어야 한다. 사회가 그럴수록 적어도 교회 안에서는 달랐으면 좋겠다. 회장 · 총무 · 구역장 같은 자리를 없애라는 말이 아니라 교회에서 봉사하는 임무가 무슨 감투처럼 여겨지고 ‘임원’ 들이 앞자리를 차지하는 일이 줄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또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고 하신 예수님의 모습을 성직자나 수도자들의 삶과 태도에서 더 많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하느님 나라에 무슨 서열이 있고 감투가 있겠는가 ?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은 재임 14년 동안 해마다 성령강림대축일에 측근들과 함께 떼제를 찾았다. 현직 대통령의 방문이라고 해도 사복 차림의 경호원 몇 사람이 전날과 당일 몇 시간 전에 와서 조용히 동선을 체크하는 것 이외에는 특별한 것이 없었다. 성령강림대축일을 맞아 떼제에 와서 머물던 1,2천 명씩 되는 사람들도 누가 다녀갔는지 눈치 채지 못했다.
미테랑 대통령은 공동체 형제들과 인사하고 로제 원장 수사 방에서 대화를 나누고 돌아가곤 했는데 간혹 우리 형제들과 함께 교회에 들러 잠시 기도를 드린 적도 있었다. 그가 재임 마지막 해에 떼제를 방문했을 때는 조금 달랐다. 우리는 정규기도 시간이 아니었지만 종을 쳐서 사람들을 모았고 ‘화해의 교회’ 에서 공동 기도를 드렸다. 그때 우리 원장 수사 바로 옆자리에 미테랑 대통령이 앉았다. 그동안 떼제를 찾아오는 수많은 교회 장상 가운데도 극히 일부 성직자들만 앉던 바로 그 자리에 대통령이 앉은 것은 좀 뜻밖이었다. 나는 사람들에게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하나 하고 내심 걱정이 되었다.

그런데 그날 저녁 기도 때, 바로 몇 시간 전에 미테랑 대통령이 앉았던 자리에는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 앉아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마음이 놓인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을 것이다. (참고로 말하자면 우리 공동체의 기도 시간에 원장 수사 주위에는 흔히 어린이들이 앉는다.)
신한열 수사(프랑스 떼제 공동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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