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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작성자노병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0-31 조회수802 추천수16 반대(0) 신고
 

10월 31일 연중 제30주간 토요일 - 루카 14,7-11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바닥에서 느끼는 행복>


   몇 년 전 저희 수도회 국제회의 참석차 로마 외곽에 위치한 살레시오회 본부에 갔을 때의 일입니다. 저 혼자 찾아가다보니 길을 많이 헤매게 되었고, 저녁기도 시간 직전에야 겨우 도착했습니다.


   어마어마한 대성전 안으로 들어서니 수많은 본부 회원들과 회의 참석차 세계 각지에서 온 살레시오 회원들로 빼곡했습니다. 사진에서만 보던 까마득히 높은 양반들인 총평의원님들, 몇몇 주교님들, 수도회 내에서 한 직책 하시는 분들이 다 계셨습니다.


   높은 분들 앞에 기를 못 펴는 저이기에 잔뜩 주눅이 들었습니다. 위축된 얼굴로 어디 마땅히 앉을 곳이 없나 아무리 찾아봐도 앉을 자리가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성당 뒤쪽으로 나오려다가 아주 좋은 자리를 발견했습니다. 적당히 뒤쪽인데다 통로 옆이었습니다.


   ‘이 좋은 자리를 두고 왜들 안 앉지?’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그곳에 자리를 잡았습니다. 제가 그 명당자리에 앉자마자 주변에 앉아계시던 신부님들이 의아한 눈초리로 잠시 절 쳐다보았는데, 그 중 한분(이분도 꽤 높은 양반이었는데)이 저한테 그러더군요.


   “어이, 젊은이, 여기는 총장신부님 자리야, 빨리 일어나 뒤로 가라구!”


   명당자리에 앉아 있다가 뒷자리로 쫓겨 가는 그 심정, 잠깐이었지만 꽤 난감하더군요.


   우리가 이 세상 살아가면서 자주 체험하는 바입니다. 밑에 있다가 올라가는 것, 참으로 기분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높은 곳에 앉아 있다가 아래로 미끄러지는 기분은 정말 참담합니다. 자존심 팍 상합니다. 사람들 앞에서 얼굴도 들 수 없습니다. 쥐구멍에라도 들어가고 싶습니다. 사람 무시당하는 것 같아 도무지 견딜 수 없습니다.


   교회나 수도회도 복음 선포의 일환으로 다양한 사업체를 운영합니다. 성직자나 수도자들은 경험이나 연륜이 그리 많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즉시 CEO나 중간관리자의 자리에 앉게 됩니다.


   아무리 성직자, 수도자라고 하지만 그에 앞서 한 인간이기에 ‘자리’에 대한 매력은 똑 같이 느낍니다. 수많은 예산이 책정되어 있는 한 기관의 책임자로 지내기에 때로 어깨가 우쭐해지기도 합니다. 많은 직원들, 아랫사람들, 종사자들 통솔하다보니 스스로를 대단한 존재가 된 것처럼 착각하기도 합니다. 이상은 순전히 제 개인적인 느낌임을 밝힙니다.


   그러나 자리에 맛을 들이기 시작할 때, 자리에 연연하기 시작할 때, 문제는 심각해져만 갑니다.


   그러기에 자리에 앉는 순간부터 떠날 순간을 기억하면 참 좋겠습니다. 윗자리에 우리를 불러주신 하느님의 의도는 겸손한 봉사자로서 살아가라는 뜻임을 언제나 잊지 말았으면 좋겠습니다.


   지속적인 자기 낮춤과 자기 비움의 노력을 게을리 하게 될 때 어느새 우리는 쥐뿔도 없으면서 윗자리만 선호하는 또 다른 바리사이가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어느 바리사이 지도자 집에 식사를 초대받아가셨는데, 자리 잡은 순간 참으로 애매하고도 난감한 상황이 펼쳐집니다. 잔치에 초대받아온 사람들이 서로 윗자리를 차지하려고 신경전을 벌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내가 이 중에서 서열이 몇 번 쯤 되나? 어디 쯤 앉으면 좋을까? 저 인간은 분명 나보다 아래인데, 왜 저 자리에 앉지?’


   이런 그들을 향해 예수님께서 정곡을 찌르는 한 말씀을 던지십니다.


   “초대를 받거든 끝자리에 가서 앉아라.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


   낮추어야 할 순간, 내려설 순간이 분명한데도 불구하고 끝까지 버티기 작전으로 나가는 사람들을 봅니다.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포기하고 내려오면 순식간에 모든 것이 해결되는데, 그렇게 마음이 홀가분할 수 없는데, 그 쉬운 일을 못합니다. 정말 불행한 일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지 않는다는 것, 관리자로 살지 않는다는 것, 책임자로 살지 않는다는 것, 어떤 사람에게 있어 살짝 자존심 상하는 일이기도 하겠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면 행복한 것입니다.


   밑에 있으면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닙니다. 일단 직책에 따른 스트레스나 부담이 훨씬 덜합니다. 자리에 대한 과도한 집착도 없어집니다. 밤에 잘 때 두 다리 쭉 뻗고 숙면을 취할 수 있습니다. 언젠가 추락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나 상처도 없습니다. 그래서 행복합니다.

 

                           †살레시오회 수도원 수련원장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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