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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충만한 존재의 삶" - 11.2,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2 조회수521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1.2 월요일 위령의 날                                          
지혜3,1-9 로마5,17-21 마태11,25-30

                                                        
 
 
 
 
"충만한 존재의 삶"
 


11월 위령성월 축일의 배치가 참 절묘합니다.
어제 11월 첫날은 모든 성인들의(all saints) 대축일에 이어
둘째 날 오늘은 모든 연옥영혼들(all souls)의 기념일입니다.
 
11월 위령성월은 참 좋은 우리 삶의 교사입니다.
 
죽음을 묵상함으로 삶의 넓이에서 삶의 깊이로 전환하라는 가르침을 줍니다.
 
죽음을 통해 환상이 걷혀
인간 본질인 가난을 깨닫게 되고 겸허를 배우게 되니
죽음은 지혜의 어머니와도 같습니다.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깊어가는 삶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11월 위령성월은 믿지 않는 이들에는 ‘텅 빈 허무’이겠지만
하느님을 믿는 우리에게는 ‘텅 빈 충만’이 됩니다.

“내 주여,
  내 기쁨은 당신 뜻을 따름이오니,
  내 맘 속에 당신 법이 새겨져 있나이다.”(시편39,9).

하느님께, 내 존재의 뿌리에 충실할 때 참 기쁨입니다.
 
11월 위령성월은 내 존재의 뿌리인 하느님께 돌아가는 달입니다.
 
죽음을 통해 우리 삶을 정비하고 존재에 충실할 것을 다짐하는 때입니다.
 
“배나무가 참 위대해 보입니다.”
 
수확이 끝난 배나무들을 보며
어느 분이 무심코 던진 말에 즉시 공감했습니다.
 
묵묵히 존재에 충실한 삶을 상징하는 배나무들,
정말 위대한 삶의 교사입니다.
죽음은 귀환(歸還)입니다.
아버지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가을은 기도의 계절이자
우리 존재의 뿌리인 아버지께 돌아가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하여 가을 날씨가 쌀쌀해지면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들이 그리도 빠른가봅니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11,28).
 
오늘 복음 역시 우리 존재의 뿌리를 생각하게 됩니다.
 
존재의 뿌리인 하느님께 충실할 때 참 기쁨에 안식입니다.
 
허영과 교만의 거품은 걷혀 단순하고 본질적인 삶을 살게 됩니다.
‘죽음을 날마다 눈앞에 환히 두고 살라.’ 분도 성인의 말씀,
역시 지금 여기서 존재에 충실한 본질적 삶을 살라는 말씀입니다.
 
죽음 앞에 온갖 환상은 걷히고
하느님 현존만이 투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나무들처럼 존재에 충실한 본질적 삶을 살았던 이들이 의인들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서 은총과 평화를 누리는 의인들입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
 
은총과 자비가 거룩한 이들에게 주어지니
그분께서는 선택하신 이들을 돌보시기 때문이다.’(지혜3,9).
 
바로 지혜서의 말씀처럼
하느님의 축복 속에 살아가는 의인들입니다.
 
이런 의인들은
사람들 눈에는 초라하고 실패한 듯 보일지 몰라도
평화를 누리며 불사의 희망으로 가득 차 있는,
하느님 눈에는 속이 꽉 찬 사람들입니다.

‘존재냐 소유냐’ 여전히 유효한 물음입니다.
 
존재에의 충실을,
충만한 존재를 선호했고 또 살았던 의인들입니다.
 
복음의 철부지들 역시 하느님의 의인들을 상징합니다.
 
어수룩해 보이나 실상 지혜롭고 순수한 철부지 의인들입니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이런 철부지 의인들에 당신 신비와 지혜를 계시해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역설적으로
대우(大愚)가 바로 대지(大智)임을 일깨워주는 철부지 의인들입니다.
 
이런 존재에 충실한
대지(大智)의 삶을 살 수 있는 길을 가르쳐 주시는 주님이십니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11,29-30).

평생 주님께 온유와 겸손을 배워갈 때
충만한 존재의 삶이요 안식과 평화입니다.
 
아마 이 공부보다 더 좋은 죽음 준비도 없을 것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성체성사시간,
주님께 온유와 겸손을 배워감으로
충만한 존재의 삶을 살게 된 우리들입니다.

“주님, 그들에게 영원한 안식을 주소서.
  영원한 빛을 그들에게 비추소서.”(4에즈34,35참조).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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