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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8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3 조회수851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20주간 화요일]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4,15-24

 그때에 15 예수님과 함께 식탁에 앉아 있던 이들 가운데 어떤 사람이 그분께,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였다. 16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셨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하였다. 17 그리고 잔치 시간이 되자 종을 보내어 초대받은 이들에게, ‘이제 준비가 되었으니 오십시오.’ 하고 전하게 하였다.

18 그런데 그들은 모두 하나같이 양해를 구하기 시작하였다. 첫째 사람은 ‘내가 밭을 샀는데 나가서 그것을 보아야 하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고 그에게 말하였다. 19 다른 사람은 ‘내가 겨릿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 보려고 가는 길이오. 부디 양해해 주시오.’ 하였다. 20 또 다른 사람은 ‘나는 방금 장가를 들었소. 그러니 갈 수가 없다오.’ 하였다.

 21 종이 돌아와 주인에게 그대로 알렸다. 그러자 집주인이 노하여 종에게 일렀다. ‘어서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을 이리로 데려오너라.’ 22 얼마 뒤에 종이 ‘주인님, 분부하신 대로 하였습니다만, 아직도 자리가 남았습니다.’ 하자, 23 주인이 다시 종에게 일렀다.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어떻게 해서라도 사람들을 들어오게 하여, 내 집이 가득 차게 하여라.’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어제 서울 시청광장에서 저녁 7시에 시국미사가 있다하여 퇴근 길에 시청광장으로 향했습니다. 서울광장은 2-3천명으로 추산되는 병력이 겹겹이 포위하여 광장출입을 원천 봉쇄하였고 광장에 설치된 주 무대에서는 급조(?)된 공연을 하고 있었습니다. 살벌한 공포분위기와 무대의 소란한 음향 때문에 미사를 드릴 수 있는 그런 분위기가 아니었습니다. 첫 추위에 미처 준비를 하지 못한 탓에 1시간 정도 광장에서 덜덜 떨다가 7시반경 귀가하였므로 그 후의 사정은 모르겠습니다. 이제는 평화적인 종교행사마저도 공권력에 의해서 방해를 받고 있으므로 지금 시국은 유신때보다 더 한 것 같습니다.

오늘은 학생독립 운동 기념일입니다. 60년대에 중, 고등학교를 다닌 기억에 의하면 오늘 11. 3일은 '학생의 날'로 정하여 학생들에게 많은 자부심을 심어주는 날이었습니다. 이러한 학생들의 자부심에 부담을 느낀 유신정권은 73년에 '학생의 날'을 폐지하였고, 유신정권이 종말을 고하고 나서야 82년에 다시 부활되었으나 예전처럼 학생들에게 올바른 기상을 심어주려는 목적보다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기에 '학생의 날'을 기념하며 자부심을 가졌던 바른 가치관과 기상도 작금의 학생들에게서는 찾아 볼 수 없으므로 많은 아쉬움으로 남아 있습니다.

오늘 복음은 '주님의 초대'로 정리하여 묵상하려고 합니다.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을 거역하지 않는 것이라 할 수 있으며 유대민족처럼 하느님을 철저히 섬겼던 민족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섬기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하느님을 제대로 섬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하느님의 뜻도 모르는 자들이 하느님의 뜻이라며 하느님의 이름으로 민중들을 속이고 민중들은 이를 그대로 믿고 있었다면 이는 가짜 하느님을 믿고 있었다고 할 것입니다. 잘못된 지도자들이 민중들에게 하느님의 뜻을 잘못 알려주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주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으며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준 말씀이 바로 복음입니다.

거짓 하느님의 뜻인 율법과 참 하느님의 뜻인 복음 중에서 어느 것이 참 하느님의 뜻인가를 판단하는 주체는 하느님을 섬기는 민중들이 판단할 수밖에 없으므로 예수님은 민중들이 올바른 판단을 하기 위해서는 깨어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으며 이에 반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율법을 믿어야 한다고 고집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실을 통해서도 뭍지마 믿나이다보다는 우리의 각성만이, 우리가 깨어나는 길만이 참 하느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대하여 어떤 사람이 잔치를 베푸는 것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초대할 때에는 내가 그 사람을 알아야하고 또 그 사람이 나를 알아야 합니다. 오늘 먼저 초대를 받은 사람들은 초대를 모두 거절을 하였습니다. 초대를 한 사람은 그 사람들을 잘 알고 있었을 것이며 초대 받은 사람들도 초대한 사람을 잘 아는 사람들 일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처럼 우리 모두를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하느님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에게 초대장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하느님을 잘 알고 있다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초대를 거절하였습니다. 혹시나 자기에게 손해가 올 것 같아서 이런 저런 핑계로 그 초대를 거절하였습니다. 지금 이 비유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하느님을 잘 알고 있다고 하고 있지만 막상 하느님께서 초대를 하면 온갖 핑계로 초대에 응하지 않는 그런 모습이라는 것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으려면 평소에 하느님을 모른다고 하였으면 하느님도 초대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은 사람들이, 자신들이 필요할 때는 하느님을 찾고 있으므로 하느님은 나는 너희를 모른다고 하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이제 그들을 초대하지 않을 것이라는 뜻에서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 하셨습니다. 하느님을 잘 안다는 사람들이 하느님의 뜻을 가장 거역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말씀인 듯합니다.  

오늘 처음 초대 받은 사람들이 초대를 거절한 이유를 보면 '내가 밭을 샀기에, 내가 겨릿소를 샀기에, 내가 방금 장가를 들었기에' 이런 이유를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이유들을 묵상하면 내가 무엇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공통점이 있으며 이는 '나'라는 상에, 자신의 뜻에 집착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나'라는 상에, 나의 뜻에 집착하면 우리는 하느님의 초대에 결코 응할 수 없으며 '나'라는 상을 버려야만, 나의 뜻을 버려야만 하느님의 초대에 기꺼이 응할 수 있다는 것을 묵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나를 버리기 위해서 하느님을 찾는 것이 아니라 '나'라는 아상을 더 확고히 하기 위해서 하느님을 찾고 있으므로 하느님의 초대에 응할 수도 없고 하느님을 뵈올 길이 없습니다. 우리가 누구를 섬긴다는 것은 나를 죽여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에서 가장 높은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마태 23,11)하신 이 말씀도 자기 자신을 죽이고 버리는 사람이 가장 훌륭한 사람이라는 말씀일 것입니다. 자기 자신을 드러내 보이려는 자들이 하느님이 보시기에는 가장 소인배라는 뜻으로 이 부분에 대하여는 마무리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하느님을 섬기지 않아서 죄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였던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저는 이들'이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이 하느님을 잘 섬겨서 하느님의 잔치에 초대받은 것이 아닙니다. 그럼에도 이들이 하느님의 잔치에 갈 수 있었던 것은 '나는 죄인이다'는 사실을 스스로 인정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위선은 언제나 높고 거룩한 척 하는 곳에 있는 것이며 낮고 비천한 곳에는 위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 교회는 교회 비판을 용납하지 않는 중세의 사고에서 벗어나서 비판받지 않는 교회로 다시 태어나야하고, 우리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한 사람도 빠짐없이 참석할 수 있도록 저희를 바르게 인도해 주실 것을 기도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느님을 안다는 사람들은 하느님의 초대에 응하지 않고
오히려 죄인으로 낙인찍힌 자들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한 사실을 통해서
우리 모두가 내 자신의 이익을 버리고 하느님의 뜻에 따라야만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려주셨습니다.
우리 모두가 언제나 이런 삶을 살 수 있도록 성령으로 깨우쳐 주시옵고
한 사람도 빠짐 없이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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