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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깨달아야 행복할 수 있다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03 조회수2,092 추천수22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31 주간 화요일 - 깨달아야 행복할 수 있다

 

 

 

미얀마에 이런 우화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코브라에 물려 죽어가는 아이를 부모가 늙은 고승에게 데리고 가서 살려달라고 간청했습니다. 모자가 너무나 불쌍해서 스님은 가슴을 치며 말했습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이 아이를 구할 힘이 없소이다. 그렇지만 내가 숨겨두었던 정직한 말을 하면 천지신명께서 자비를 베풀지도 모르오. 사실 나는 지금까지 50년 동안 이 노릇을 하고 모두가 나를 존경한다고 하지만 정직하게 말하면 나는 중이 되었을 당시 7년 동안만 행복했고 그 나머지 세월은 줄곧 불행했소이다.” 이런 말이 스님의 입에서 떨어지자 아이의 머리에 있던 코브라의 독이 가슴으로 떨어졌습니다.

그러자 아이의 아버지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저도 평생 불교신자로서 스님이 오실 때마다 시주를 드리고 절간에도 계속 헌금을 바쳤지만 사실은 마음이 기뻐서 바친 일은 별로 없었습니다.” 이런 말이 아버지의 입에서 떨어지자 아이의 가슴에 있던 독기가 허리로 떨어져 내렸습니다.

이번에는 어머니가 말했습니다. “저는 남편과의 결혼 생활이 15년이 되는데 모두들 저더러 행복한 여자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서 결혼의 행복을 느낀 것은 1년에 이틀 정도뿐이었습니다.” 이런 말이 아이 어머니의 입에서 떨어지자 아이의 허리에 머물고 있던 독기가 발바닥을 거쳐 완전히 몸에서 나가버렸습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들이 추구하는 행복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합니다. 특별히 고승의 말이 저에게는 더 깊이 다가오네요.

누가 안 좋은 일이 있거나 몸이 안 좋아 안수를 달라고 할 때 제가 속으로 하는 소리입니다.

‘나는 솔직히 나의 삶으로 볼 때 이런 병을 고칠 능력이 없습니다. 오직 하느님만이 아니라 실컷 다른 곳에서 행복을 찾으려다가 막상 주님께 은총을 구하려니 부끄럽네요.’

진정 자신에게 솔직하게 물어보십시오. ‘정말 내가 신앙 안에서 완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고 있는가?’

사제들은 그리스도와의 일치가 참 행복임을 증거해야 하는 사람들이지만 처음 서품 받을 때는 오직 주님만을 위해 살 것을 다짐하며 그 행복에 눈물도 흘리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 행복감이 줄어들어 세상 것들에서 행복을 찾아보려 노력하기도 합니다.

신앙인들도 받은 것에 만족하며 진정 행복하다면 주님께 감사의 예물을 기쁜 마음으로 바치겠지만 예수님께서 바치라고 하는 십일조도 기쁜 마음으로 바치는 신자는 많지 않습니다. 이것이 위의 아이 아버지가 고백한 것과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연애시절 때는 결혼해서 함께 살 수 있다면 행복할 것이라고 믿었지만 살아가면서 서로의 사랑이 줄어듦을 경험하게 되고 어떤 때는 참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저 살아야 돼서 어쩔 수 없이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눈물을 흘리기도 합니다. 이것은 아이 어머니의 고백과 같겠지요.

 

인간은 너나 할 것 없이 행복을 찾습니다. 그러나 그 참 행복에 도달하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정말 자신에게 솔직해진다면 “지금 나는 주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행복을 경험하며 살고 있지 못하다.”라고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만약 주님만으로 완전히 행복하다면 그 사람은 성인이겠지요.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듯이 행복을 얻는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님께 자신이 느끼는 행복에 대해 이렇게 질문합니다.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여기선 음식이라고 번역했지만 원래는 ‘빵’입니다. 즉, 성체를 의미합니다. 성체는 우리가 잘 알듯이 그리스도의 몸이고 그렇다면 그 사람은 이렇게 질문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식탁에서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는 혼인잔치에 참석하는 이들은 참으로 행복합니다.”

이 세상에서 천상 혼인잔치를 우리는 이미 미사 때 경험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 잔치에 초대받은 이들은 땅을 사서, 소를 사서, 결혼을 해서 등의 핑계로 잔치에 참석하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길거리의 가난한 사람들을 잔치에 불러오라고 하십니다. 결국 잔치에 참석하여 참 행복을 누리게 되는 이들은 ‘하느님 이외에는 아무 즐거움도 누리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누리는 즐거움들도 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즐거움을 더 누리기 위해서 얼마나 본질적인 행복, 즉 그리스도와의 사랑의 일치에서 오는 행복을 잃고 있습니까?

날씨가 좋은 주일날, 특별히 휴가철은 미사 나오는 신자들이 크게 줄어듭니다. 다들 하느님나라의 음식이 아니라 세상의 음식을 먹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그러나 휴가도, 주일에도 제대로 놀러갈 곳이 없는 어르신들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영락없이 자리를 지킵니다. 오늘 복음에서 길거리의 가난한 이들만이 주님의 잔치에 참석할 수 있었던 것과 같습니다.

 

아일랜드는 오랜 영국 성공회의 박해에도 불구하고 굳게 가톨릭 신앙을 지켜왔지만 잘 살게 된 십 몇 년 동안 다른 나라에 별반 다름없게 미사 참례율이 낮아졌습니다. 예수님은 오늘 복음에서 이미 참 행복을 잃게 만드는 것들은 박해나 어려움이 아니라 이 세상에 존재하는 작은 행복들 때문임을 내다보셨던 것입니다.

지금 유럽을 비롯한 잘 사는 나라들의 사람들이 주님보다는 세상의 즐거움을 선택한다고 해서 정말 행복할까요? 그건 그렇지 않습니다. 주님을 떠나서는 불안과 초조, 두려움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진정한 행복은 주님으로부터만 오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믿음으로만 깨달을 수 있는 진리입니다.

 

이 세상 살아가면서 성인들이 누렸던 그리스도와의 일치의 천상행복을 조금이라도 누리고 싶다면 세상 즐거움을 모두 뒤로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기 위해 온 몸을 던질 수 있는 굳은 믿음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세상의 행복들이 당장 피부로 더 다가오기 때문에 우리는 세상 것을 먼저 선택하게 됩니다. 하지만 세상의 행복을 선택하는 것은 그것들이 더 큰 공허함만 남기게 되고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을 갉아먹는다는 것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누가 아침 일찍 일어나고 싶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그것이 더 유익하다는 것을 알게 될 때는 육체를 이기는 ‘아침형 인간’이 됩니다. 누가 맛있는 음식을 많이 먹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결국 살이 쪄서 건강까지 안 좋아진다는 것을 알면 절제하게 됩니다.

행복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의 작은 행복들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완전한 행복을 깨고 있음을 깨닫는다면 절제하는 삶으로 주님께서 주시는 행복만을 찾게 될 것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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