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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296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19 조회수420 추천수3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연중 제33주간 목요일]

<네가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9,41-44

그때에 41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시어 그 도성을 보고 우시며 42 말씀하셨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그러나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 43 그때가 너에게 닥쳐올 것이다. 그러면 너의 원수들이 네 둘레에 공격 축대를 쌓은 다음, 너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조여들 것이다. 44 그리하여 너와 네 안에 있는 자녀들을 땅바닥에 내동댕이치고, 네 안에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 있지 않게 만들어 버릴 것이다. 하느님께서 너를 찾아오신 때를 네가 알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 말씀을 오늘 복음에 이어 21장(20-24)에도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님이 우시는 장면은 제 기억에는 복음서에 두 번 있는 것 같습니다. 한 번은 요한 복음서에서 마르타의 오빠 라자로가 죽었을 때이며 그리고 오늘 모습입니다. 예수님이 우시는 모습을 알려주기 위해서 루카 복음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중복하여 기록한 것으로 추측해 봅니다.

우리는 인정사정도 없는 자를 흔히 피도 눈물도 없는 자라고 얘기합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남을 위해 피를 흘릴 줄도 알아야하고 남을 위해 눈물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입니다. 남이야 죽든 말든 나 몰라라 하는 자들을 어떻게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해박한 교리 지식을 가지고 있고, 성경을 달달 외우고, 매일 미사에 참례하고, 기도생활을 제 아무리 열심히 한다 하여도 남을 위해 울어주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참 그리스도 교인이라 할 수 없으며, 그 이유는 바로 오늘 예수님이 흘리신 눈물이 그들에게는 없기 때문입니다.

라자로의 죽음을 애통해 하시며 눈물을 흘리시는 모습은 남의 아픔을 내 아픔처럼 느끼고 계셨기 때문이며, 오늘 우시는 모습은 유대 민중이 참 하느님을 섬기지 못하고 그릇된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그리스도교인들 일부에서도 우상이 무엇인지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기지 마라 하였다하여 단군 상을 훼손하고, 성당에 침입하여 성모상을 훼손하고, 불상을 훼손하고, 부모 제사도 모시지 않고, 부모 산소에서 절도 하지 않고, 광화문에 설치된 해태상은 우상이라며 철거를 요구하는 등 우상에 대하여 이런 잘못된 생각들을 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섬긴다는 유대 민족은, 유대 민족으로 상징되는 예루살렘은 하느님이 아닌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화려한 성전의 모습은 물신을 섬긴 것이며, 율법을 문자 그대로 따른 것은 율법이라는 우상을 섬긴 것이며, 가난한 이웃에게는 인색하며 하느님께 제물을 바치는 모습은 진리의 하느님이 아닌 내 소원을 들어주는 우상을 섬기는 모습입니다. 이처럼 유대 민족의 상징인 예루살렘은 참 하느님을 섬기지 않고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멸망할 수밖에 없는 서글픈 현실에 대하여 예수님은 오늘 울고 계십니다.

이 세대는 곡을 하여도 울지 않는 세대(루카 7,32)라 하였습니다. 우리는 남의 아픔을 보면 함께 울어야 하고, 우리 사회의 불의를 보면 이를 한탄하며 눈물을 흘릴 줄 아는 그런 사람이 하느님의 뜻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예수님께서 우시는 오늘 모습을 통해 묵상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그리스도교는 세상을 향해 언제나 곡을 해야 하고, 우리는 그 곡소리를 듣고 깨어나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가 파국을 향해 가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나마 우리 교회는 용산참사 현장에서 매일 곡을 하고 있으므로 우리의 사제들에게 고마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일부에서는 이제 됐으니 그만하라고 합니다. 우리 사회가 슬퍼할 때까지, 피도 눈물도 없는 자들이 반성하여 눈물을 흘릴 때까지 곡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를 왜 모르는지 모르겠습니다. 우리 사회는 그동안 개발과 성장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있었기 때문에 우리 사제 분들께서 곡을 하고 계십니다.

“오늘 너도 평화를 가져다주는 것이 무엇인지 알았더라면 …… !" 이처럼 말씀을 이어가지 못하시는 것은 지금 우리도 갖가지 우상을 섬기며 하느님을 섬기고 있지 않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우상을 섬기며 파국을 향해 가고 있지만 그것을 모르고 있다는 뜻에서 "지금 네 눈에는 그것이 감추어져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눈에는 파국이 보이지만 우리 눈에는 보이질 않고 있으므로 바로 우리들이 치유 받아야 할 눈 먼 사람이 아닐 수 없습니다.

예루살렘이 멸망하는 모습을 사실적으로 묘사한 이하 말씀은 우리 자신은 물론 우리 사회도 하느님의 뜻을 저버리면 이런 참담한 모습이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피도 눈물도 없는 전쟁터와 다름없습니다. 사방이 경쟁자인 적들에게 포위되어 있으므로 그들과 싸워 이기지 못하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우리 현실이 전쟁터가 아니면 무엇이겠습니까? 이런 살벌한 전쟁터와 같은 사회에서 다시 태어나서 살라고 하면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눈만 뜨면 전쟁을 하고 있으므로 출산율이 꼴지가 된 영광스러운 나라가 되었습니다.

이러함에도 우리 교회는 이 땅의 어두운 현실은 외면하고 하느님만 찬미하고 있으므로 전쟁에서 승리하여 하느님을 찬미하는 사람들만의 교회가 되지 않는다고 그 누가 보장하겠습니까? 지금도 일부 교회는 전쟁에서 승리한 사람들을 위한 사교모임으로 까지 변해버린 듯합니다. 그나마 유대사회는 울어줄 예수님이 계셨지만 지금 우리 사회는 우리 교회의 일부 사제님들이 아니면 울어줄 사람도 없습니다. 그분들의 곡소리에 우리 모두가 슬퍼하는 그런 세상을 꿈꾸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하느님의 뜻을 잘못 섬기는 유대 사회를 보시며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우리 교회도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리고 실천하는 교회가 되어
우리 사회를 향하여 곡을 하는 그런 교회가 되게 하여 주시옵고
저희도 이웃의 슬픔을 우리 모두의 슬픔으로 알고 함께 슬퍼하는 자들이 되도록
성령으로 이끌어 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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