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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적 전쟁 - 영의 건강과 신앙 생활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0 조회수521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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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영적 전쟁 - 영의 건강과 신앙 생활


우리의 영혼이 건강해야 우리의 몸도 마음도 삶도 건강합니다.
그러나 영의 건강함을 잃은 육체는 겉으로는 건강한 것처럼 보이지만 절제력을 잃어 정욕을 추구하고 세상의 헛된 것들을 좋아하게 됩니다
. 그리하여 몸과 마음과 삶은 세상 가운데 속하게 되어 분별력을 잃고 세상 것에 만족하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세상의 것으로는 영이 다시금 회복되거나 처음부터 건강해질 수 없습니다. 오히려 병들게하고 악화시킬 뿐입니다.

우리의 영이 건강하기 위해서는 하느님을 의지하며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 하느님과 교제를 나누며 하느님이 베푸시는 영의 양식을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  하느님의 영의 양식을 공급받은 영혼은 생기를 되찾게 되며, 영의 양식을 통하여 건강해진 영혼은 세상 것으로 더러워지고 병들게 만든 것들을 깨끗이 청소하고 말끔히 치워 하느님이 베푸신 영의 양식들로 가득하게 됩니다.

하느님의 영의 양식으로 건강해진 영혼은 하느님을 바라고, 하느님을 의뢰하며, 하느님을 구하는 사람의 모습
을 보이지만, 세상의 것으로 가득찬 영혼은 세상을 바라보고, 정욕을 구하며, 세상의 것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합니다. 다시말해, 하느님을 찾지 않고 세상 속에 안주한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의 영이 하느님의 은총으로 건강해지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 그러하기에 우리의 마음을 속이고 꾀어 하느님과 가깝게 지내지 못하게 하며 대신에 세상과 가까이 지내며 영혼이 세상의 것들로만 가득하고 물들이어 하느님을 구하는 삶을 살아가지 못하도록 합니다.

영이 건강한 사람일수록 하느님을 생각하고,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에 관심을 갖습니다
. 그러나, 영이 건강치 못한 사람은 자신이 원하고 즐기고자 하는 일에만 몰두합니다. 특히, 세상 것에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집착을 보이기도 합니다. 교회 생활 역시 믿음이 없이 다니기 일쑤입니다.

우리의 영혼과 몸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지어졌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정욕을 추구하고 만족을 시키고자 하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아닌 사탄의 무서운 책략입니다. 사탄은 세상적인 재미에 빠져 있는 사람들과 세상의 정욕을 찾아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들려고 합니다. 또한 사탄은 재산과 권력과 욕정과 명예 같은 세상의 것들을 추구하도록 유혹하여 하느님께로 돌아오라는 하느님의 음성을 무시하게 혹은 무관심하게 만들어 버립니다. 사탄은 한 사람만을 흔들어 넘어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주위에 있는 가족과 이웃마저도 넘어지게 한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하느님은 우리의 영혼을 주님의 자녀 삼으셔서 은총과 사랑으로 돌보지만 사탄은 철저하게 이용하다가 이용 가치가 없어지게 되면 무자비하다 싶을 정도로 무참히 지배합니다. 그러하기에 사탄의 유혹은 순간적으로는 달콤하고 맛갈스럽게 보일지라도 결국에는 그것이 우리의 영혼에 독이 되어 우리의 영혼을 사망과 멸망의 길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명심 또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는
사랑의 하느님이신 예수님과 함께 하겠습니까?
달콤하게 유혹하지만 결국에는 무자비한 사탄의 종이 되겠습니까?

(최문식님 참조)



[11월 21일, 토요일] 생명의 말씀 '복음'  
<루카 20,27-40>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그래서 둘째가,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오늘의 묵상]
‘사두가이파’는 유다교의 사제를 배출하는 제사장 그룹입니다. 그들은 늘 현실을 중시했고, 사후 세계나 영혼 불멸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경도 모세 오경만 인정했고, 율법을 통한 ‘엄격한 제재’를 강조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질문을 던집니다.
일곱 형제가 한 여인과 살다가 죽었다면 저세상에서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부활의 모순점을 지적하려고 ‘이상한 예’를 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정확한 답변을 하십니다. 저세상의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설명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엉뚱한 논리로 ‘부활’을 폄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이론이 아니고 ‘깨달음’입니다. ‘건전한 상식’ 위에 ‘건전한 신앙’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인연’과 ‘삶의 흔적’이 저세상에서 이어짐은 상식적인 일입니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간단한 이 사실을 어렵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겸손해야 합니다. 부활은 겸손한 마음이 되기 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가르침은 ‘하늘의 힘’이 끌어 주지 않으면 영영 모르게 됩니다. 겸손은 깨달음의 전제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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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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