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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오늘의 복음과 오늘의 묵상
작성자김광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1 조회수558 추천수3 반대(0) 신고

 

2009년 11월 21일 토요일[(백)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교회 전승에 따르면, 성모님의 부모는 어린 나이의 마리아를 성전에 봉헌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이를 기념하는 축일이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이다. 축일의 시작은 6세기 중엽, 로마 황제 유스티아누스가 예루살렘에 세운 ‘마리아 봉헌 기념 성당’의 봉헌식에서 비롯되었다. 1472년 식스토 4세 교황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자헌 기념일’로 공식 선포하였다.

 

<복음>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7-40
그때에 27 부활이 없다고 주장하는 사두가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다가와 물었다. 28 “스승님, 모세는 ‘어떤 사람의 형제가 자식 없이’ 아내를 남기고 ‘죽으면, 그 사람이 죽은 이의 아내를 맞아들여 형제의 후사를 일으켜 주어야 한다.’고 저희를 위하여 기록해 놓았습니다.
29 그런데 일곱 형제가 있었습니다. 맏이가 아내를 맞아들였는데, 자식 없이 죽었습니다. 30 그래서 둘째가, 31 그다음에는 셋째가 그 여자를 맞아들였습니다. 그렇게 일곱이 모두 자식을 남기지 못하고 죽었습니다.
32 마침내 그 부인도 죽었습니다. 33 그러면 부활 때에 그 여자는 그들 가운데 누구의 아내가 되겠습니까? 일곱이 다 그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였으니 말입니다.”
34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이 세상 사람들은 장가도 들고 시집도 간다. 35 그러나 저세상에 참여하고 또 죽은 이들의 부활에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판단받는 이들은 더 이상 장가드는 일도, 시집가는 일도 없을 것이다.
36 천사들과 같아져서 더 이상 죽는 일도 없다. 그들은 또한 부활에 동참하여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37 그리고 죽은 이들이 되살아난다는 사실은, 모세도 떨기나무 대목에서 ‘주님은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이라는 말로 이미 밝혀 주었다. 38 그분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다. 사실 하느님께는 모든 사람이 살아 있는 것이다.”
39 그러자 율법 학자 몇 사람이 “스승님, 잘 말씀하셨습니다.” 하였다. 40 사람들은 감히 그분께 더 이상 묻지 못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사두가이파’는 유다교의 사제를 배출하는 제사장 그룹입니다. 그들은 늘 현실을 중시했고, 사후 세계나 영혼 불멸은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성경도 모세 오경만 인정했고, 율법을 통한 ‘엄격한 제재’를 강조했습니다. 당연히 예수님과 충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질문을 던집니다.
일곱 형제가 한 여인과 살다가 죽었다면 저세상에서는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고 물은 것입니다. 부활의 모순점을 지적하려고 ‘이상한 예’를 든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정확한 답변을 하십니다. 저세상의 하느님은 ‘죽은 이들의 하느님’이 아니라, ‘산 이들의 하느님’이시라는 설명입니다.
예나 지금이나 엉뚱한 논리로 ‘부활’을 폄하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부활은 이론이 아니고 ‘깨달음’입니다. ‘건전한 상식’ 위에 ‘건전한 신앙’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인연’과 ‘삶의 흔적’이 저세상에서 이어짐은 상식적인 일입니다. 받아들이고 인정하면 간단한 이 사실을 어렵게 생각합니다.
그러니 겸손해야 합니다. 부활은 겸손한 마음이 되기 전에는 받아들여지지 않습니다. 죽은 사람이 살아난다는 가르침은 ‘하늘의 힘’이 끌어 주지 않으면 영영 모르게 됩니다. 겸손은 깨달음의 전제 조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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