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펌 - (79) 고행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4 조회수399 추천수1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565          작성일    2004-02-27 오후 12:31:02

 

2004년2월27일 재의 예식 다음 금요일 ㅡ이사야58,1-9ㄱ;마태오9,14-15ㅡ

 

  (79) 고행

                          이순의

  

ㅡ덜어냄ㅡ

하절기와는 달리 동절기의 골목은 일찍 어둠으로 이불을 덮는다.

그 아저씨께서 손수레를 밀고 나타나는 시간은

따뜻한 온돌을 찾아 분주했던 발걸음들이 조금은 한산해질 무렵이면

시계불알처럼 어김없이 그 자리에 서서 단골손님을 기다린다.

냉동시설을 갖추고 있는 슈퍼마켓보다 생선의 물이 좋은 것도 사실이다.

손수레 장사는 그날그날에 물건을 처분하지 않으면 신선도를 유지할 수 없기 때문이다.

새벽시장에서 물건을 받아 하루 종일 여기저기 골목을 누빈 후에

마지막으로 들르시는 아저씨의 손수레는 분명히 아침보다는 가벼워 보인다.

그러나 해 저문 저녁의 아저씨의 모습은 늘 개운하지가 않다.

피로!

하루의 피로가 엄습하여 아침에는 손수레가 무거웠을 것이나

저녁에는 육신이 천근만근이 되어 무거워 보인다.

그런데 얼마 전 어느 날 저녁에 아저씨는 몹시 흥분해 계셨다.

아저씨의 노련한 솜씨와 정성의 덕으로

늦은 초저녁시간까지 싱싱도가 유지되고 있는 갈치 두 마리를 사는데

그 도막을 땅바닥에 질질 흐르면서 고객에 대한 서비스가 엉망이 되셨다.

<워마, 인제 생선장사 고만 둬야것네. 더러워서 아저씨 생선 고만 묵어야 것네.>

떨어진 생선 도막을 주우면서 큰소리를 하고 말았다.

아저씨는 이미 잔술에 거나해져 계셨다.

오랜 골목장사로 인하여 두터워진 친절의 관계를 유지하다 보니

권하는 잔술을 거절하지 않으신 모양이다.

보기에 딱하여서 또 소리를 질렀다.

<술 먹구 물건 팔면 당골 다 떨어진께 어서 집에 가랑께요.

그만하고 어서 가서 쉬어야제, 취헌 날은 빨리 가게 문 닫어야제~에.>

아저씨께서는 잠시 생각을 하시는 것 같더니

갑자기 손수레를 뒤져 평소에는 잘 들지 않으시던 확성기를 꺼내셨다.

그리고 진군나팔을 불며 눈가에 핏발을 세우고 앞으로 전진하기시작 했다.

<더 싸게 팝니다. 더 싸게 팔아버려. 손해보고 팝니다. 오기만 해. 더 싸게 싸게........>

떨이로라도 흥정을 하고

어서 귀가를 하셔야할 취중의 아저씨께서

확성기를 들이대며 마구마구 짖어 대는 쪽은 작은 트럭이었다.

그러고 보니 깔끔하게 틀을 짜고

바람에 노출되지 않도록 유리 덮개까지 잘 갖추어

그럴싸하게 진열된 생선을 파는 트럭이었다.

아마 그 트럭과 함께 하루 종일 동네를 누비신 듯하였다.

낡고 구질구질한 손수레 입장에서는

매출도 형편없이 떨어졌을 것이고,

신경에 거슬리기도 했을 것이고,

자존심도 상하셨을 것이고,

또 무엇보다 생존의 법에 지장을 받는다는 것이 확실해져 버린 것이다.

그래서 그 날은 손수레도 무겁고,

아저씨의 피로감은 더 무겁고,

취기까지 돌았으니 위태로워 보이는 것은 당연하였을 것이다.

아저씨께서 우리 동네에 나타나시기 시작한 시기는 가늠하기 어려우나

손수레를 밀기 시작한 것은 IMF를 전후해서라고 한다.

더운 여름의 생선장수는 보는 사람조차도 힘들어진다.

그래서 그 무렵,

차로 다니면 덜 힘들 거라고 아저씨께 여쭈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아저씨께서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을 뿐만 아니라

앞으로 남고 뒤로 밑지는 장사는 이제 그만하신다고 진저리를 내셨다.

트럭으로 하는 장사는 그만큼 가지고 다니는 품목이 다양해야 하고,

갖추고 다니는 양이 많아야 수요도 따르게 되고,

마진도 보장될 것 같았는데

결론에는 남는 재고물품을 버리고 나면 오히려 손해가 크더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장사의 규모를 줄이고 생선 한 가지만 팔기로 했으며

굳이 유지비 들어가고 세금딱지 날아오는 차를

굴릴 수가 없어서 택한 방법이라고 하셨다.

오히려 손수레에 실린 생선들을 덜어내고 난 뒤의 홀가분함은

적은 만큼 포만감이 배가 되더라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우리 동네에는

야채도 딱 두 가지나 세 가지만 손수레에 싣고 다니는 아저씨가 계신다.

그 아저씨도 똑 같은 말씀을 했었다.

야채아저씨는

두세 가지의 물품만 파시니까

동네의 슈퍼마켓에서 부리는 텃새나 간섭도 피할 수 있었고,

무엇을 팔든지 트럭이 오든지 상관없이 즐거워하신다.

늘 노래를 하며 골목을 누비신다.

그 구성진 소리가 마치 그 분야의 명창 같기도 하다.

<오늘은 감자를 먹는 날,

  오늘은 비가 오시니 부추로 부침개를 부처 먹는 날,

  오늘은 깻잎으로 밑반찬을 만드는 날........>

방 안에 앉아 들려오는 노래소리만 듣고도 그 날 파시는 물품을 훤히 알 수 있었다.

자작곡의 노래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야채아저씨의 가득 찬 손수레는 항상 가벼워 보일뿐만 아니라

몸도 늘 사뿐사뿐 가벼우시다.

길에서 만나 인사라도 건네면

야채를 사지 않아도 항상 신바람 난 인사를 되돌려 주신다.

이 아저씨께서도

IMF 무렵에 차로 했던 장사가 징그러웠다는 얘기를 해 주신 적이 있다.

뿐만 아니라 그 모두가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발생된 부작용이라는 것이다.

결국 국가경제의 악순환은 차별을 심화시키고

골목의 차들은 경쟁률만 높아가고 있다.

그러니 손수레의 생선장수 아저씨께서

술을 마시지 않은 맨 정신으로는 힘들어서 못 살을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어둠의 이부자리가 깊숙이 내려와

지처 버린 생선들은 밥상에 올려 줄 주인을 기다리고 있었다.

덩그러니 외로운 손수레의 모습이 너무도 처량하고 쓸쓸하다.

취중이라지만

하루의 쌓인 감정들을 폭발하는 아저씨를 말리지 못하고

소외된 손수레만 한쪽으로 비켜 놓았다.

산다는 것이 슬픔이었다.

너도 먹고 나도 먹고 우리 같이 먹고 살 수는 없는 걸까?

트럭도 먹고 살러 왔다는 걸 충분히 알았을 아저씨께서는

차마 확성기를 꺼내지 못하다가

어둠이라는 이부자리 밑에서 나팔 불어야 하는 이유를

꼭 취기를 빌어야 가능했던 것일까?

그 날 후로 저녁시간에 외출을 하지 않아서

손수레를 끄는 생선장수 아저씨를 보지 못 했다.

그러나 오늘도 그 시간 그 자리의 골목에서

물 좋은 생선을 얼굴삼아 내어놓고 계시리라 믿는다.

고행이라도 열심히 살아내야 하는

작지만 배불렀을 소명의 손수레를 쉬지 않고 밀어야 한다.

언제나 삶의 답은 주님의 몫이지 않은가?!

구원이라는 희망이 슬픔의 위로가 아니던가?

구원이라는 희망이 승리가 아니던가?

구원이라는 희망이 우리가 다 살은 후의 최종의 목적지가 아니던가?!

ㅡ목청껏 소리 질러라. 네 소리. 나팔처럼 높여라. 이사야58,1ㅡ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