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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제 얼굴" - 11.23,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4 조회수505 추천수7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1.23 연중 제34주간 월요일
                                              
다니1,1-6.8-20 루카21,1-4

         
          
 
                                           
 
 
"제 얼굴"
 


제 얼굴을 지니고 살 때 행복입니다.

“주여, 당신의 종위에 당신 얼굴을 빛내
어 주소서.”
 
“하느님 얼굴을 언제나 가서 뵈오리까.”
시편 말씀처럼,
하느님 얼굴을 찾는 마음은
바로 하느님 얼굴을 닮고 싶은 마음의 반영입니다.
 
하느님의 모상대로 창조된 인간이기에
하느님 얼굴을 닮아갈수록 제 얼굴이 됩니다.

과연 세월이 흘러도 제 얼굴을 지니고 사는 사람들 얼마나 될까요?
 
많지 않을 것입니다.
 
세상에 똑같은 얼굴은 하나도 없고 다 각기 고유의 얼굴입니다.
 
누구나 소중히 여기는 얼굴이요
얼굴에 대한 평가에는 지극히 민감한 사람들입니다.
 
끄러운 일이나 떳떳하지 못하면
본능적으로 얼굴을 가리거나 숙이는 사람들입니다.
 
웃음으로 활짝 열린 얼굴과
분노로 굳어져 벽이 된 얼굴,
전혀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얼굴은 마음이자 영혼이요 삶이자 운명이요 삶의 이력서입니다.

얼굴에 관한 속담도 참 많습니다.
 
‘얼굴에 노랑꽃이 피다’
‘얼굴에 똥칠을 하다’
‘얼굴에 철판을 깔다’
‘얼굴에 침 뱉다’ 
‘얼굴을 깎다’
‘얼굴을 팔다’
‘얼굴이 간지럽다’
 '얼굴이 뜨겁다‘
…끝이 없습니다.
 
얼마나 삶이나 마음과 긴밀한 관계에 있는 얼굴인지 깨닫습니다.
 
얼굴은 바로 그 사람이자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가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며 깜짝 놀라는 적이 있습니다.
 
좋아진 얼굴도 있지만 많이
상하고 망가진 얼굴들 때문입니다.
 
‘아 어쩌면 얼굴이 저렇게 상할 수 있나.
오래되어 굽은 나무처럼
한 번 형성된 얼굴은 제 얼굴로 되돌리기가 참 어렵겠다.
 
어렵고 힘든 세상,
제 얼굴을 지니고 사는 것이 참 힘들겠구나.
 
수도승들이 삭발하는 까닭도
끊임없이 제 얼굴을 확인하면서
제 얼굴을 잃지 않기 위함이다.’
 
라는 생각이 퍼뜩 떠올랐습니다.

하느님을 자주 뵈오며 살 때 제 얼굴을 회복합니다.
 
똑같은 얼굴이 아니라 개성 있는 얼굴이듯,
하느님의 얼굴을 자주 뵈올 때 고유의 아름다운 제 얼굴입니다.
 
제 얼굴을 회복하는 길은
하느님 얼굴을 자주 뵈오며 말씀대로 살아가는 길 하나뿐입니다.
 
내 운명을, 삶을, 마음을, 얼굴을 바꿀 수 있는 길은 이 길 하나뿐입니다.
 
이래서 수도승들은 제 얼굴을 찾고자
끊임없이 하느님 얼굴을 바라보면서 감
사와 찬미의 미사와 성무일도를 바칩니다.
바로 오늘 독서의
네 유다인 젊은 이들과
복음의 가난한 과부가
제 얼굴을 지닌 아름다운 사람들임이 분명히 드러납니다.
 
다니엘을 위시한 유다의 세 젊은이들
끝까지 하느님께 충성을 다했고
하느님은 그들을 지켜주셨기에 제 얼굴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특히 다니엘은
궁중 음식과 술로 자신을 더럽히지 않겠다고 마음속으로 다짐하고,
내시장에게 간청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다니엘이 내시장에게 호의와 동정을 받도록 해 주셨습니다.
 
네 젊은 이들은 줄곧 채소만 먹었어도
궁중 음식과 술을 먹은 다른 어떤 젊은이들 보다 아름다운 용모였다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충성을 다했던 이들의 제 얼굴을 지켜주신 것입니다.
 
더불어 하느님께서는
이 네 젊은이에게 이해력을 주시고,
모든 문학과 지혜에 능통하게 해 주셨으며,
특히 다니엘은 모든 환시와 꿈도 꿰뚫어 볼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잘 먹어서 제 얼굴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살 때 제 얼굴입니다.
 
만약 이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잃고
궁중 음식과 술을 즐겼다면
이들은 제 얼굴을 많이 잃어 버렸을 것입니다.
 
재물, 명예, 권력, 일, 도박 등
각가지 세상 것들에 중독되어
제 얼굴을 잃어가고 있는 이들도 참 많을 것입니다.
 
제 얼굴을 지니고 곱게 늙어간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지요.

복음의 가난한 과부는
그 가난의 역경 중에도
제 얼굴을 지킨 아름다운 영혼입니다.
 
가난도
믿음이 좋은 가난한 과부의 영혼을, 마음을, 제 얼굴을
다치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저 가난한 과부가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이 넣었다.
  저들은 모두 풍족한 데에서 얼마씩을 예물로 넣었지만,
  저 과부는 궁핍한 가운데에서 가지고 있던 생활비를 다 넣었다.”
가진 생활비를 모두 하느님께 봉헌한,
재물로부터 참으로 자유로운,
제 얼굴을 지닌 가난한 과부였습니다.
 
세상의 종이, 재물이 종이 아닌 하느님의 종이 되어 살 때
제 얼굴임을 깨닫습니다.
 
끝없는 시련과 고통 중에도
하느님께 믿음과 희망을 두고 살 때 제 얼굴이요
자주 이런 제 얼굴의 사람들을 만나곤 합니다.
나이 사십이 넘으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참 엄중합니다.
 
제 운명을, 삶을, 마음을 바꾸는 길은,
제 얼굴을 지니고 살 수 있는 길은 단 하나뿐입니다.
 
더디더라도 이 길 하나뿐입니다.
 
끊임없이 하느님의 얼굴을 뵙는 것입니다.
 
공동전례기도를 통해, 성
경묵상을 통해,
선행을 통해 끊임없이
주님의 얼굴을 뵈올 때 제 얼굴의 회복이요 형성입니다.
 
매일의 이 거룩한 미사시간,
주님의 얼굴을 뵈오며 주님의 말씀과 성체를 모심으로 주님을 닮아
제 얼굴을 찾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주님은 나의 목자, 나는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시편23,1-2).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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