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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7 조회수1,263 추천수20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연중 제 34 주간 금요일 -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저는 초등학교 때부터 커서 무엇이 될 거냐고 물으면 신부님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되고 싶었던 것이 아니라 그래야 칭찬을 받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이 하나 둘 신학교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저도 고민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때마다 행복하기 위해서는 꼭 결혼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며 마음에서 들려오는 부르심의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더 이상 그 마음에서 울려오는 소리를 누를 수 없었고 그래서 두 손을 들고 항복하였습니다. 그렇게 결혼하는 것을 포기하고 신학교에 늦게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늦게 들어간 것은 주님께서 늦게 불러주셨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저 스스로 오래전부터 불러주시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더욱 성소에 대한 확신이 깊어지기는 했지만 동시에 그렇게 시간도 많이 허비하게 되었습니다.

 

진리는 단순합니다. 따라서 진리를 보는 눈도 단순해야합니다. 우리는 개인적인 많은 생각을 하면서 자신 스스로 자신의 생각을 정당화하며 진리를 올바로 보고 듣지 못하게 만들고 있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리면 바람소리도 그 사람의 발자국 소리처럼 들리지만 자신의 생각에만 갇혀 있으면 부활하신 예수님이 옆에 나타나 함께 걸어도 그 분을 알아보지 못합니다. 저는 어머니가 처음 가발을 쓰셨을 때 어머니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저의 고정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에 신학을 공부하시는 분들과 죄에 대해서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그분들은 한 목소리로 하느님 나라에 가서 죄를 지을 수 없는 이유가 천국에 가면 자유가 없어지기 때문이라고 하였습니다.

“모든 죄는 인간의 자유에서 나옵니다. 만약 자유가 사라진다면 죄를 지을 일이 없습니다. 따라서 천국에서 인간이 죄를 짓지 않는 이유는 인간에게 더 이상 죄를 지을 자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십년이 넘게 신학을 배우고도 그런 말을 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습니다. 더 놀랐던 것은 함께 있던 대부분의 신부님들이 그 신부님의 말씀에 찬성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자유가 없어서 죄를 안 짓는다...?”

 사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른다면 그런 말은 틀린 것을 넘어서서 이단에 가깝습니다.

사람이 되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자유’입니다. 만약 자유가 없다면 더 이상 온전한 인간은 아닐 것입니다. 에덴동산에 선악과가 있었다는 말은 인간에게 죄를 지을 수 있는 자유를 주었다는 뜻입니다. 에덴동산은 천국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지어 천국에서 쫓겨나기 전까지도 항상 자유를 지니고 있었다는 뜻입니다. 인간에게 자유를 빼앗으면 기계나 로봇이 되지 참 인간은 아닌 것입니다.

성모님은 자유가 없으셔서 죄를 짓지 않으셨을까요? 오히려 죄를 지으면 자유를 빼앗깁니다. 죄의 노예가 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돈에 눈이 먼 사람은 돈 앞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렇게 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성모님과 예수님은 어떤 것의 노예가 되지 않으셨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우셨던 것이고 그래서 죄의 노예도 되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그 분들은 자신들의 자유로 자신들의 뜻을 포기하고 주님의 뜻만을 따를 정도로 완전한 자유를 사셨던 모범입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왜 그런 단순한 진리들을 벗어나서 오류에 빠지고 말까요? 그것은 단순하고 기본적인 진리들보다 자신들의 생각을 더 우선시하는 우리의 고정적인 사고방식 때문일 것입니다.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봄이 가고 바로 다시 겨울이 오는 경우는 없습니다. 진리는 이렇게 아주 단순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우리 안에 이 단순한 진리가 들어있지 않다면 나무에 잎이 돋는 것을 보아도 여름이 오는 것을 알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이 시대의 징표를 읽지 못해서 멸망하고 말았고 또 지금도 멸망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는 말도 있습니다. 인과응보를 이르는 말입니다. 이 세상이 끝나고도 선하게 산 사람과 악하게 산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심판이 이루어질지는 콩 심은 데 콩 나는 것을 아는 것처럼 아주 단순한 진리입니다. 그럼에도 곧 올 죽음과 곧 받게 될 심판을 믿으려 하지 않습니다. 이는 믿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믿으려하지 않는 것입니다.

어린이들처럼 단순해지기만 한다면 이 세상에 악을 일삼으며 사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겠지만 악을 일삼기 때문에 심판이 있음을 믿기를 원치 않는 것입니다.

 

제가 결혼하고 싶었기 때문에 성소에 대한 부르심을 믿지 않았던 것처럼, 사람들은 자신들이 그렇게 살고 싶기 때문에 믿을 수도 없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겠습니까? 내 자신을 낮추어 하느님께 두 손을 들고 항복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어린이처럼 되는 것입니다. 어른처럼 복잡해지면 그만큼 단순한 진리를 받아들이기 힘들어집니다. 그래서 공부도 위험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처럼 단순하고 겸손하고 깨끗해지는 작업을 멈춘다면 많은 단순한 진리들을 믿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시대의 징표, 우리에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요구되는 것은 단순한 진리를 믿기 위해 어린이처럼 단순해지는 것입니다. 제가 논문을 쓰고 있는 발타살이란 신학자는 수많은 책을 쓰고 추기경 서품 이틀 전에 마지막 숨을 거둘 때 성탄 카드에 마지막으로 이 말을 쓰고 있었습니다.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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