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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03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9 조회수381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대림 제1주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5-28.34-36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해와 달과 별들에는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릴 것이기 때문이다. 그때에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그리고 그날이 너희를 덫처럼 갑자기 덮치지 않게 하여라. 그날은 온 땅 위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들이닥칠 것이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이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은 전례력으로 다해의 한 해를 시작하는 대림 제1주일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한 해를 시작하는 오늘 복음과 한 해를 마감하는 어제 복음이 동일한 복음으로 선정된 것은 각별한 의미가 있으며 이를 통해서도 알 수 있는 것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는 '깨어 기도하여라.' 이 말씀에 모두 담겨 있다 할 수 있으므로 이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오늘 묵상이 될 것 같습니다.    

 

'깨어있다'는 것은 잠에서 깨어난 상태이고, 잠에서 깨어나지 못한 상태는 아직 미몽에서 헤매고 있는 상태입니다. 꿈에서 헤매는 미몽의 상태는 거짓 세상에서 아직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것이며 '깨어있다'는 것은 언제나 참 세상만을 생각하는 각성의 상태입니다. 예수님은 이렇듯 악과 위선이 판치는 거짓 세상에서 사랑과 자비가 넘치는 진리의 참 세상에서 우리 인류가 행복하게 살 수 있는 길을 알려주기 위해서 복음을 선포하고 계십니다.

 

부모는 자식들이 모두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온 생명을 창조하신 아버지 하느님의 뜻도 우리 인류가 뭇 생명과 함께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그러지 못한 이유는 오늘 복음에서는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때문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이를 더 세분하여 칠죄종으로 구분하기도 하지만 오늘 알려주신 이 세 가지만 지킬 수 있으면 우리는 참 세상에서 행복을 누리고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 깨어있어야 하고 다음은 기도해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가 고통 속에서 살고 있는 것은 아버지 하느님을 섬기는 神本主義 세상에서 살지 못하고 재물이라는 우상을 섬기는 資本主義 세상에서 잘못된 삶을 살고있기 때문입니다. 재물을 최우선하는 자본주의 가치관은 자신의 탐욕을 충족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재물을 방탕하게 사용하기 위해서, 또는 잘못된 소유욕을 충족시키기 위해서, 아니면 자식들에게 재물을 물려주기 위해서 재물에 눈이 멀어서 서로 경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는 사실상 재물의 노예가 되었으므로 절제된 삶을 통하여 이런 노예 상태에서 해방되는 것이 속량일 것입니다. 우리가 속량되어 자유로운 삶을 살지 못하고 있는 또다른 이유는 방탕에 이어 만취라 하였습니다. 만취는 술에 취한 상태이므로 이성을 잃은 상태이고 이는 하느님의 뜻을 바르게 알지 못하고 만취한 사람처럼 광란의 짓을 하고 있다는 뜻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만취한 사람은 술에서 깨어나 제 정신으로 돌아와야 살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다면 만취한 상태에서 마귀 들린 사람처럼 행동하다가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비록 생체적으로는 잠에서 깨어나 있지만 정신 상태는 정상이 아니므로 깨어있는 사람이 아닙니다. 지금 우리는 하느님이 아닌 온갖 우상을 섬기느라 정상적인 상태가 아니므로 잠에서 깨어나듯, 술에서 깨어나듯 빨리 깨어나야 진리의 삶을 통하여 영원한 생명을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흔히 개념 없는 신자들을 향하여 盲目的인, 盲信的인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말합니다. 盲은 눈이 감겨있는 상태이므로 아직 깨어있지 못하고 있다는 뜻이므로 '깨어 있어라' 하신 말씀은 당시 유대민중들이 맹목적으로, 맹신적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는 뜻이 담겨있는 말씀으로도 묵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의 일부 모습과도 결코 무관한 말씀이 아닙니다. 이에 반해 깨어있는 신앙, 열린 신앙은 아버지 하느님의 뜻을 생각하며 진리를 추구하는 신앙이라 할 것입니다.

 

잘못된 하느님을 섬기고 있다면 미몽의 세상에서, 잘못된 삶을 살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의 참 뜻을 모르기 때문에 재물을 탐하고, 헛된 욕망 등 잘못된 생각 때문에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하느님께 기도하면 재물을 늘려주고, 자신의 소원을 모두 들어주어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으로 맹목적으로, 맹신적으로 믿고 있다면 이 천 년 전 유대민중들의 모습과 다름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알려주신 아버지 하느님이 아닌 자신이 생각하는 하느님께 모든 것을 의탁한다면 이는 자신의 잘못된 생각에 자신을 의탁하고 있는 것이므로 잘못된 결과를 가져 올 것입니다. 그러나 깨어있는 사람은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하라는 말씀처럼 예수님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도록 오직 예수님의 가르침만을 생각하며 진리의 길로 나아갈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그 누가 별별 소리를 다한다 하더라도 “너희는 속는 일이 없도록 조심하여라.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그들 뒤를 따라가지 마라."는 말씀을 기억하고 있으므로 다른 것에 더 이상속지 않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앙생활을 할 것입니다.

 

당시 유대민중들이 하느님의 뜻을 잘못 알고 있듯이 지금 우리도 하느님의 뜻을 잘못 알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재물이 많아야, 지위가 높아야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서로 경쟁을 하느라 온갖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상의 근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길은 오직 진리의 삶뿐이며 하느님을 뵈려 가는 길은, 예수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은 우리가 가진 것을 모두 버려야 갈 수 있음에도 오히려 하나라도 더 가지려고 몸부림을 치고 있으므로 우리가 사는 세상은 만취한 사람이 광란의 질주를 하고 있는 것처럼 위태로운 상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광란의 질주는 끝내는 파멸을 가져올 것이므로 모든 민족들은 공포에 휩싸이고 까무러칠 수밖에 없다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은 항구적인 평화가 보장된 세상이 아니라 살얼음을 걷고 있는 것처럼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위태로운 세상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삶에서 벗어나는 것이 현대적 의미의 속량이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서로 경쟁하는 삶'에서 '서로 사랑하여라' 하신 가르침을 실천하는 길 밖에는 다른 도리가 없음에도 그러지 못하기 때문에 고통 속에서 의미 없는 삶을 살다가 허망하게 죽을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깨달아 실천하는 사람은 예수님과 늘 함께하며 마음의 평화를 누리며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도 마음의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님과 함께하는 삶을 소원하며 이를 위해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함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기도를 흔히 '우리의 소원을 들어주는 비나이다.'로 착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착각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소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앙인의 소원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진리의 삶을 소원해야 하며, 그렇지 않고 재물을 더 많이 갖고, 더 높은 지위에 오르고, 온갖 헛된 망상에 집착하여 생겨난 근심 걱정 등을 하느님께서 해결해 주시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 미몽에서 깨어나지 못한 사람들이 크게 착각하는 헛된 소원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미몽에서 하루빨리 깨어나야 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삶을 살 수 있도록 자신의 의지를 확고히 하는 것이  기도일 것입니다. 지금 우리 일부에서는 당시 유대민중들처럼 잘못된 기도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예수님께서는 친히 '주님의 기도'를 알려주셨습니다. '주님의 기도' 와 다른 지향으로 기도하는 것은 우리 스스로가 우리를 더욱 미혹한 삶으로 빠지게 하고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새 전례력인 다해의 첫 날을 맞이하며 새롭게 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을 이제는 더 이상 기다리지 않고 그만 잠에서 깨어나 주님께서 알려주신 그 길을 따라가며 주님을 찾아나서는 길만이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길이라는 것을 새롭게 묵상하였습니다. 이를 잊지 않기 위해서 주님께서 친히 알려주신 '주님의 기도'로 새해 첫 날의 각오를 새롭게하며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빛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소서.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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