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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펌 - (87) 싸움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29 조회수426 추천수2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731         작성일    2004-03-26 오전 2:27:35 
 
 
 
 
<이 글은 제 글을 꼭 읽어야 한다는 분이 아니라면 읽지 않으시기를 빕니다.>
 

           (87) 싸움

                             이순의

 

시골의 어느 초가삼간에 안주인이 몸져눕게 되는 불상사가 일어나고 말았다.

너무나 많이 불편하여 두문불출 하고 있는 그 집의 안주인 솜씨가 빼어나서 된장 맛이

그만이었다.

어느 날 안주인이 두문불출인 집에 어떤 오지랖이 넓은 여편네가 그 집의 장독을 열고

 된장 맛을 보게 되었다. 그것도 모르고 있던 안주인은 어느 날부터 사람들에게 된장 담

그는 솜씨가 좋다는 칭송을 받게 된다.

아픈 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람들이 그걸 알고 칭찬하는 그 사실도 싫지만 그 말을 퍼트

린 사람을 가만두고 싶지 않은 이치였다. 그 사람의 입장에서는 살기위해 된장을 맛있

게 담가야 했지만 단순히 된장은 살기위한 수단 일뿐 중요한 것은 와병이므로 사람들이

 가만 모른체 해주길 바랄 뿐이었다.

염통에 병이 들어서 힘든 사람이 있었다.

그 사람은 병중이기는 하나 지니고 있는 소지품들이 출중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그 사람은 늘 외출을 할 때 치장하여 곱게 단장하는 버릇이 있었는데 사람들은

 그 사람이 병중인지 알면서도 그 사람이 지니고 있는 브로치나 핸드백 같은 장식들을

 보며 예쁘다고 달려들었다. 그때마다 아픈 그 사람이 얼마나 귀찮았겠는가?

나는 칩거에 들어가기 전에 엄청난 상처를 가지고 교회도 떠났고 소중했던 친구도 외면

하였다. 내가 알고 있는 모든 관계를 청산해 버린 것이다.

내가 빚쟁이여서 숨어 다니는 죄인도 아니고, 살림이 넉넉하여 이사도 갈 수 없는 처지

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결단을 선택해 버린 데는, 그렇게 외롭고 힘든 자신과의 싸움을

 선택 해 버린 그만큼의 상처가 있기 때문이다.

토혈을 하고 약과의 동반을 하느라고 내 자신을 추스르기도 힘들 때 나에게 돌파구가

 되어 준 것이 묵상 글을 쓰는 것이었다. 누가 읽어 주는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나와의

 진솔한 자아를 드러내고자 하는 마음이었다. 여러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나를 끌

어 내보고자 힘겹게 선택한 결론 이었다.

다행히 내가 소속했던 본당 공동체가 아주 친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나에 대하여 "누구

엄마"로 더 많이 기억 되고 있었기 때문에 다가 올 시선들에 대하여 그렇게 크게 우려하

거나 염려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더구나 세례명도 아닌 속명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몇 명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뿐만

 아니라 그 몇 사람 중에 묵상 글을 볼 사람은 그렇게 많아 보이지 않았으므로 우려했던

 부담감을 덜어낼 수가 있었다.

 

그리고 내가 자살해서 죽어 없어지지 않는 이상에는 이사를 가지 못하므로 난 이 동네

에서 칩거를 해야 한다. 더구나 자식 있고 살아있으니 슈퍼도 가야하고 병원도 가야한

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교우들이야 내가 멀리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별 반응

 없이 나에게 협조를 해 준다.

그런데 꼭 인간성이 고래심줄 보다 더 질기든가 머리통이 똥이든가 하는 사람이 한명씩

 있게 마련이다. 이순의가 누구엄마다. 라고 토를 달고 광고를 해서 칩거 중인 나에게까

지 그 전달사항이 건너오게 한다.

나를 비방하지 않았다고도 하고, 나를 걱정했다고도 하지만 그 사람의 말대로 나의 글

을 그렇게 열심히 보았다면 글의 요소요소에 칩거라는 말과 지역성의 불투명과 실명을

제외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 수 있다.

 

나는 용서하고 싶어도 용서가 되지 않는 독기를 품고 고통하면서, 오직 주님과의 만남

이라도 한 가닥 실을 꿰어 보고자 묵상을 쓴다. 누가 나를 아는 척 해 주거나, 내 글을 더

 많이 읽어주거나, 또 아는 사람에게 나의 실체를 알려주는 수고를 요청할 마음이 한 치

도 없다. 조용히 읽어 주는 것만으로 감사하며, 반대로 아무도 읽어주지 않는다 해도 내

가 오늘 하루 이 묵상 난에 마음을 열어 보였다는 그 사실에 위안을 삼는다. 나에게는

 지금 내 자신을 이만큼 내 보일 수 있는 의미가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자유로움을 깨고 열심히 광고를 하여 이순의가 누구라고 원하지도 않는 선전

을 해 주는 위대하신 인간이 있다. 그 한 사람으로 인하여 잡음이 생기고 불편해지고 귀

찮아지기 시작 했다.

말을 전해 오는 사람에게 제발 그러지 말고 입 좀 닫아달라고 엄포를 놓았지만 그 사람

은 그게 재미있는 것 같다.

드디어 어떤 자매를 우연히 만나게 되었는데 하시는 말씀이 "다쳐서 기브스를 하였다고

도 하고, 부러젔데나 금이 갔데나 들리는 소리가 있던데 전화번호를 알 수가 있어야지

요."라고 하는 것이다. "그 소리 누가해요?"라고 되물었다. "누가 게시판에서 봤다는데

 꼭 알고 있어야할 나만 모르고 있는 것 같아서 좀 민망했네요." 라고 하는 것이다. "알리

고 싶으면 내가 알리지 뭐 하러 남이 아는 척을 해요? 참 웃기는 아줌마네. 몇 번을 그러

지 말라고 말을 했으면 알아들어야지." 드디어 나는 화가 치밀어 오르고 말았다.

글을 쓰는 자유조차 침해를 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나의 글 어디에도 기브스라는 말이 없다. 나는 뼈를 다치지 않았으므로 기브스

를 할 필요가 없는데 자기마음대로 나와 친했던 사람들에게 마치 자기는 알고 있는 사

실을 그들은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모독이지만, 나와 친절했던 사람들만 골

라서 나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척 하는 것은 더 못 참을 일이다. 그 사람이 나의

 글을 읽는다고 해서 나에 대하여 알면 얼마나 알겠는가. 집안에 박혀있는 안주인은 잘

 모르면서 된장 맛만 보고 시부렁거리는 짓과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 사람은 자신의 무식한 행동이 나를 죽이고 있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 것 같다.

 그렇게 나의 글을 열심히 읽었다는 사람이 내가 스스로 생존의 끈을 차단하고 있다는

 것을 전혀 가늠조차 못하고 있는 것이다.

좋은 말로 안 되면 몽둥이로 두드려 패라는 게 우리네 속담이다. 솔직한 심정은 죽여 버

리고 싶어서 갔다. 그런데 못 죽이고 왔다.

나의 묵상 글을 열심히 읽는다고 하니 나는 이런 묵상 글도 쓰게 되었다.

"너의 웃음이 싫은 사람에게는 독약인 걸 좀 알아라. 계속 비열한 웃음을 웃으면 독기를

 품은 나는 너를 가만 두지 않을 것이다. 네 집 컴퓨터로 네가 무엇을 읽든 자유라지만

 칩거 중인 나에 대해 아는 척하느라고 여기에 저기에 그 주둥이 좀 나불거리지 마라."

교회 공동체생활에서 내가 가장 염증을 느끼는 게 있다면 이런 인간이다. 나는 이런 인

간이 싫다. 누군가는 나에게 용서하라고 했다. 이 인간은 나에게 죄를 짓지 않았으므로

용서할 가치도 이유도 없다. 나는 너를 모른다는데 왜 너는 나를 안다고 지랄을 떠느냐

는 말이다. 나는 너에 대해 말도 하기 싫은데 왜 너는 나에 대하여 말을 하고 다니느냐

는 말이다.

 

묵상 글로 이런 글을 쓴다고 싫어하시는 분들이 계시다는 걸 알고 있다.

영적 독서는 못 쓰더라도 복음 묵상에 잠심하는 글을 써야하는데 그러지 않고 산란한

 글을 올린다고 건의해 오신분이 계시다.

그러나 나의 생각은 주님께서는 영적 독서를 쓰시는 분이나 이런 글을 쓰는 나나 똑 같

은 몫을 주신다고 믿는다.

그분들께 죄송함도 알고 있다. 그러나 크게 우려하지 않고 있는 이유는 여러 번 묵상 글

을 읽다보면 무조건 읽지 않고 자기 스타일에 맞는 글을 골라 읽을 것이라고 믿기 때문

이다. 나는 나의 좋은 면뿐만 아니라 나쁘고 추하며 부끄럽고 외람된 면들을 계속 써 왔

으므로 이런 글도 과감히 써 올리고 있다.

어머니 앞에서 싸우고 난 뒤에 나는 이래서 싫었다고 아버지께 고하고 싶은 심정이다.

누가 나의 마음을 헤아려 주겠는가? 그 사람이 글이 좋다고 하던데 왜 그러느냐고 반문

하는 사람들까지도 침묵해 주기를 바라는 나의 발악을 이해나 하겠는가 말이다.

그냥 읽고, 그 글에 자신을 비추어 보고, 좋으면 그런 글이 있더라고 말아야지, 원하지

도 않은 나의 대변인이 되어서 이순의가 누구엄마이며, 깁스도 안한 손을 깁스했다고

말하는 오류를 범하지 말고 그냥 묵상을 쓰는 사람이라고만 알기를 바랄 뿐이다. 따뜻

한 밥 먹고, 그렇게 할 일이 없어서 내 친구에게 그 이름이 누구 엄마 맞느냐고 확인까

지 하면서, 이사람 저 사람에게 전화 하라고 시키고....... 나의 충격에 친구도 대녀도 대

부도 가족도 칩거에 제동을 걸지 못 했으므로 굳이 나에 대하여 소식을 알려하지도 않

았고 알리지도 않는다. 그게 나를 도와주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돕고 있는 사람들에게

 마치 자기는 나에 대하여 알고 있는데 가까운 사람들이 되가지고 모르고 있는 것처럼

 만들지 말아달라는 것이다.

 

알릴 때가 되면 내가 알릴 것이다.

 

묵상 글을 읽지 않았어도 침묵해 주기를 바란다는 걸 모두가 아는데 묵상 글을 읽었다

는 인간은 어찌하여 그걸 모른다는 말인가?

머리가 한글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단도직입적으로 말해서 알려 드린다. 나를 안다

고 하지마라. 내 글이 좋다고도 하지마라. 내 안부를 가까운 사람들에게 묻지도 마라.

 그들도 내 소식을 모르며 알려고 하지 않는다. 너의 그 바라지도 않는 관심이 친절인줄

 아는데 나를 아는 모든 사람이 네가 하지 말아야할 행동에 대하여 알고 있다. 너만 모

른다. 너의 말을 들어준다 해도 그게 얼마나 미친 오지랖인지 다른 사람들은 안다는 말

이다. 그러니 더 이상 주변 사람이 모두 아는데 너만 모르는 행동을 그만하라. 알아들었

나? 가르쳐 주는 거다.

 

난 너 같은 인간에게 대변인을 세운 적이 없으니 나에 대해 주둥아리 닫아 달라. 내 인

생 넘보지 말고 너나 주둥아리 책임지고 잘 살라는 말이다. 나를 만나지도 않았으면서

 한 번만 더 개인을 결부시키면 이다음은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읽었으면 나 안다

고 하지 말고 읽어. 내가 너를 모르니까.

맛난 된장 퍼다 맛 보았으면 소문 내지 말고 조용히 먹으라고.

 

어떤 이는 묵상 란의 내 이름을 바꾸라고도 한다.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그겠는가? 구더기는 잡아 죽이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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