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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영적 고공비행(靈的 高空飛行)" - 11.29,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작성자김명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1-30 조회수426 추천수6 반대(0) 신고
(이수철 프란치스코 성 요셉 수도원 원장신부님 강론 말씀)
 
 
 
 
2009.11.29 대림 제1주일                                  
예레33,14-16 1테살3,12-4,2 루카21,25-28.34-36

                                                
 
 
 
 
 
 
"영적 고공비행(靈的 高空飛行)"
 
 


우리 믿는 이들에게
시간은 연대기적 반복의 무의미한 시간이 아니라
의미 충만한 거룩한 시간입니다.
 
하여 매일이 새 하늘, 새 땅, 새날입니다.
 
오늘부터 거룩한 대림시기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벽 성무일도 시 영롱히 빛을 발하는 대림초를 보면서
예전 조선 시대, 나라의 변란 시
높은 산들로 연결되어 릴레이식으로 타올랐던 봉홧불을 생각했습니다.
 
바로 주님이 오시기 시작했다는 기쁨의 봉홧불,
대림 촛불 하나가 우리의 어둔 마음을 기쁨으로 환히 밝혀줍니다.
바야흐로 대림시기 첫날인 오늘부터 영적고공비행이 시작되었습니다.
 
영적고공비행, 오늘의 강론 제목입니다.
 
9년 전 유럽 성지 순례 여행 때
비행기를 타고 중국과 시베리아 대륙을 횡단하면서 떠오른 생각이었고
이집트에 카이로에서 순례 첫날 미사 때 강론 제목이기도 합니다.
 
마침 아침 묵상 중에 이 제목이 떠올랐습니다.
 
고공비행을 해야
낮은 무수한 산들을 지나 목적지까지 무사히 갈 수 있지
저공비행이라면 얼마 못가 산에 부딪쳐 추락으로 비행은 좌절될 것입니다.
 
우리 인생이나 공동체 생활, 첩첩산중의 여정입니다.
 
영적 고공비행해야 목적지인 하느님께 무사히 갈 수 있지,
계속 영적 저공비행이라면 장애물에 부딪혀 곧 추락하고 말 것이며
목적지인 하느님께 이르기는 요원할 것입니다.
 
추락했다고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 더 높게 떠올라
영적고공비행의 여정에 올라야 하는 우리들입니다.
 
바로 은총의 대림시기 첫날
오늘부터 새롭게 시작된 영적고공비행의 여정입니다.


첫째,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영원한 비전이신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목표의 비전인 하느님이 선명해야 합니다.
 
목표인 비전을 잃어 방황이요 혼란하고 복잡한 삶입니다.
 
무수히 낭비되는 시간이요 정력이요 자원입니다.
 
목표 상실로 인한 손실은 헤아릴 수 없이 클 것입니다.
 
도대체 목적지 없는 여행이 있을 수 없듯이
목표 없는 인생여정도 있을 수 없습니다.

제1독서의 예언자 예레미야,
하느님 비전의 목표가 선명한 진정 비전의 사람입니다.
 
그날의 비전을 내다보며
실의에 빠진 백성들에게 희망을 선포하며 격려합니다.

“그날과 그때에 내가 다윗을 위하여 정의의 싹을 돋아나게 하리니,
  그가 세상에 공정과 정의를 이룰 것이다.
  그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고 예루살렘이 안전하게 살게 될 것이다.”

바로 예레미야의 예언이 대림시기를 통해 그대로 실현되지 않습니까?
 
다윗의 싹이신 오실 주님을 기다리는 우리들이요
주님을 만나는 성탄에 우리는 구원을 체험할 것입니다.
 
영적고공비행이 상징하는바 세상 것들로부터의 이탈과 초연의 자유입니다.
 
꿈과 희망이, 목표의 비전인 하느님이 선명하면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고통과 시련이 계속되어도
영적고공비행으로 모든 난관들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습니다.
 
바로 이게 성공적 공동생활의 비결이자 세상살이의 비결입니다.
호랑이한테 물려가도 정신만 차리면 살 수 있다했습니다.
 
주변이 혼란하고 마음이 심란할 때 즉시 영적고공비행에 오르십시오.
 
세상을 떠나라는 게 아니라,
마치 높은 산 위에 올라가 세상을 바라보듯
높게 떠올라 주변을 넓게 보며 살라는 것입니다.
 
키 작은 나무가 아닌 키 큰 나무로,
낮은 산이 아닌 높은 산으로 살라는 말입니다.
 
오늘 복음을 이런 관점에서 보면 이해가 확연해 집니다.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 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이고,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움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위의 종말표징들,
그대로 오늘의 혼란한 현실을,
우리의 불안하고 두려움 가득한 마음의 현실을 상징합니다.
 
바로 이때가 구원의 때이니
결코 부화뇌동, 경거망동하지 말고
즉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주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앞이 안보이고 두려움과 불안으로 마음이 몹시 혼란하고 복잡할 때
즉시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하늘을, 빛나는 비전의 목표인 하느님을 바라보십시오.
 
그리고 즉시 하느님을 향해 영적고공비행의 여정에 오르십시오.

둘째, 절제와 극기의 자기훈련에 충실하십시오.

영적전쟁은 자기와의 싸움입니다.
 
빛나는 하느님 비전의 목표가 자기훈련의 원천입니다.
 
하느님 비전이 선명할수록 기쁘게 자발적으로 자기훈련에 임합니다.
 
진정한 자유도, 신비체험도 자기훈련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절제와 자기훈련 없는 모든 영성생활은 사상누각, 모래위에 집짓기입니다.
 
대림시기, 바로 끊임없는 회개와 내적쇄신으로
자기훈련에 충실해야 하는 시기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 참으로 자기훈련에, 영적훈련에 소홀합니다.
 
바로 빛나는 비전의 목표인 하느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비전이 생생해야 자기훈련에 항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 수도승들이 끊임없이 바치는 공동전례기도인 미사와 성무일도 시간
바로 영적훈련시간이자
동시에 하느님 비전을 또렷이 하는 은총의 시간이기도 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 물러져 서서히 무너지는 사람들입니다.
 
무너지기는 쉬워도 다시 세우기는 곱절의 힘이 듭니다.
 
막연한 추상적인 마음이 아닙니다.
 
자기훈련에 소홀할수록 서서히 무너지고 망가지는 마음입니다.
 
마음이 망가지고 무너지면 몸도 역시 망가지고 무너집니다.
 
이래서 수도자가 아니더라도
나름대로 일과표에 따른 규칙적 생활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방탕과 만취,
일상의 근심을 막아주는 참 좋은 자기훈련은
일과표에 따른 규칙적 생활입니다.


셋째, 늘 깨어 기도하십시오.

늘 깨어있을 때 저절로 기도요 기도할 때 깨어있게 됩니다.
 
영성생활이 목표하는 바도 늘 깨어 기도하는 것입니다.
 
늘 깨어 기도할 때
빛나는 하느님 비전이요, 또 항구한 자기훈련입니다.
 
늘 깨어 기도할 때 
죽음의 그날이, 종말의 그날이 덫처럼 우리를 덮치지 못합니다.

“너희는 앞으로 일어날 모든 일에서 벗어나,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의 내공, 바로 늘 깨어 기도하는 일뿐입니다.
 
언젠가가 아닌 바로 오늘 지금 여기 주님 앞에 서있는 우리들입니다.
 
주님 앞에 서있다 생각하면 결코 나태하거나 방심할 수 없습니다.
늘 깨어 기도하게 됩니다.
사실 깨어 기도할 때 바로 앞에 현존하신 주님을 감지하게 됩니다.
 
바로 이 주님께서 우리의 사랑을 더욱 자라게 하시고 충만하게 하시며,
우리의 마음에 힘을 북돋아 주십니다.
 
하여 우리 주 예수님께서 성탄절에 오실 때 까지
은총의 대림기간,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저절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는 마음,
영원한 비전인 하느님을 찾는 마음이요,
하느님을 향해 날고 싶은, 영적고공비행 본능의 표출입니다.
 
오늘부터 주님을 기다리는 거룩한 대림시기가,
영적고공비행의 삶이 시작되었습니다.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
빛나는 비전, 오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마음이 물러지지 않도록
자기훈련에 충실하십시오.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힘을 지니도록 늘 깨어 기도하십시오.
이 거룩한 대림 제1주일 미사를 통해
주님께서 여러분 모두에게 주시는 간곡한 당부 말씀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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