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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묵상 - 상차 (上車)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1 조회수503 추천수8 반대(0) 신고
 
 
 
   사진묵상 - 상차 (上車)
                                              이순의
 
 
 
 
 
 
 
 
 
이런 사진은 제 개인적으로도 차암 아까운 사진입니다.
이렇게 마음에 드는 사진은 여러 벗님들께 보여 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그런데요.
조심스러워요. 고민도 많이 하구요.
인물들의 초상권을 보호해 드려야 하는 의무가 제게 있거덩이요.
그래서 가급적이면 인물들의 얼굴이 조금이라도 정면을 피한 사진을 고르게 됩니다.
벗님들께서도 마음에 드시나요?
제가 하는 농산물의 상차 장면입니다.
큰 차는 큰 길에 세워두고
작은 차가 밭으로 들락날락 하면서 개미처럼 실어 나릅니다.
작은 차들은 봄부터 가을까지 산골에서 살구요.
큰 차는 기사님의 숨은 솜씨를 총 동원하여 예쁘게 싣고 서울에 갔다가 옵니다.
그런데요. 귀띔 하나 해 드릴까요?
제가 카메라를 들고 하늘 풍경이라도 찍을라치면 큰 차 기사님께서는 피식 웃어버립니다.
<저건 하늘도 아니라니까요.>
알고 보았더니
산골이 동쪽에 있지 뭡니까?!
하루 종일 작업하여 실은 차를 타고 서쪽으로 서쪽으로 서울을 향해 갑니다.
그 노을이 기가 막히다 네요.
또요.
아침에는 동쪽으로 동쪽으로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그 일출이 하늘이라네요.
나쁜 점도 있데요.
눈이 부셔서요. 운전이 조심스럽다 네요. 그래도 그 하늘이 하늘이지 제가 찍는 하늘은 하늘도 아니라네요.ㅎㅎ 
 
사진 멋지지요?!
작은 차도 큰 차도 한 다발 씩 쌓아 올린 솜씨가 칼로 무 토막 자른 것 같지요?!
그게 비싼 기술이에요.
아무나 못하는 솜씨예요.
장담하던 사람들도 쌓다보면 배가 나오거나 칸칸이 들쭉날쭉이거나........
그럼 안되요. 저렇게 두부 자르듯이 짜져야 안전해요.
저기서 한 단만 틀어져도요. 100km 이상 달리는 압력에 위험해져요.
그래서 항상 긴장하고, 살펴보고,
물론 최상급의 기사님들이시니까 알아서 잘하시지만 저는 또 저의 눈으로 항상 안전을 살펴야 하거덩이요.
 
 
사실은
열심히 일하는 현장에 한 줄기 햇살이 촤악 머엇지게 내려 꽂혀서요.
바쁜 중에 카메라를 가지러 갔었습니다.
저 햇살은 멀리서 지켜보는 제 눈에만 보이는 거지요.
일하시는 분들은 그냥 햇빛만 받지요.
멀리서 보는데 축복으로 다가 오드라 구요.
저 날은 큰 차가 두 대였으니까 큰 차 기사님이 두 분.
저 아기 때부터 친정집에서 함께 살았는데 결혼에 실패하고 말을 거두더니
다시 돌아와서 저랑 사시는 우리 아저씨. 
조선족 동포 두 분.
그리고 또 한 분은.......
원래 배추가 전문인데 배추 농사가 먼저 끝나고 도와주러 오신 배추 사장님.
거기에 햇살 한 줄기!
축복입니다.
 
사람들은 서로 모르는 사람끼리 만나서 저마다의 사연들을 안고 일을 합니다.
하다보면 쉬운 날도 있고, 어려운 날도 있고,
하다보면 좋은 날도 있고, 싫은 날도 있고,
하다보면 재밌는 날도 있고, 짜증나는 날도 있고,
하다보면
하다보면
하다보면
일당으로 오신 분은 일당으로 받고, 월급으로 오신 분은 월급으로 받고,
그 많았던 사연들을 지우고 떠납니다.
 
 
믿어지지 않겠지만
일을 하는 동안에는 진짜로 사람의 얼굴만큼이나 다른 성격과 다른 생각과 다른 마음들을 열기도 하고 다투기도 하고 합심하기도 하는데요. 
마지막 작업이 끝나고 뒷정리가 끝나면
지우개로 지운 것 보다 더 허심탄회하고 깨끗하게 지워진답니다.
농사일에는 뒤끝이라는 게 없습니다.
더운 여름의 지지고 볶는 고생들이 언제 끝나랴 싶어도요.
지나고 나면 가을은 빨리도 오시고요. 
헤어짐은 늘 시원섭섭하지요.
이 일이 뭐가 좋으냐면요.
하늘하고 동업이라서요. 원망이 없거덩이요.
동업자 하늘을 원망해 본들 소용도 없고요.
동업자 하늘님께 내년에 더 열심히 잘 하자는 약속만 있거덩이요.
그러니까
들판이 텅 비고 나면 농부의 마음도 텅 빈다니깐요.
농자는 뒤끝이 없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아깝디 아까운 사진 한 장 벗님들께 보여드리고 있다니깐요. 히힛!
 
축복이 별건가요?! 햇살 한 줄에 텅 빈 마음이면 만족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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