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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진 묵상 - 선덕여왕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2 조회수553 추천수2 반대(0) 신고
 
   사진 묵상 - 선덕여왕
                                            이순의
 
 
 
 

- 사진출처 네이버 -

 
 
 
산에서 내려와 텔레비전 삼매경에 빠져있다.
어느 해는 봄에 산에 갔다가 가을에 산에서 내려왔더니 개그우먼 박경림씨가 결혼을 해서 놀랐는데, 어느 해는 또 봄에 산에 갔다가 가을에 산에서 내려 왔더니 배우 최진실씨가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
다행히 지금은 넓은 현대식 집을 빌려 살고 있어서 거실에 놓인 텔레비전을 공동으로 볼 수가 있다. 그런데 그나마도 내게는 시간이 없다.
하루 일과에 대하여 적고, 결산보고, 내일 일정에 효율적인 인력 배치를 고민해야 하고.....  그러다보면 어떤 날은 노트를 펼친 채로 씻지도 못하고 이부자리도 펴지 못한 채 입은 옷 그대로 잠들기도 한다. 그러니 텔레비전 시청은 강 건너 불구경일 뿐이고 단 잠을 자고 일어나서야 작업복도 벗고, 양치질도 하고, 흥건했던 땀도 씻어 낸다. 그러다 보면 새벽이 오시고........
 
밤에 일하는 직업을 가진 짝꿍을 둔 덕에 밤 시간은 통째로 내 시간이다.
잠을 자려고 해도 산에서처럼 노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육신이 마치 전기고문을 하는 것처럼 절절절하여 앉아도 불편하고, 서 있어도 짜증나고, 누워있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그냥 정 못 견딜 것 같은 날에는 진통제 하나 입에 넣고, 내 육신을 내가 소파에 내 동댕이치고 텔레비전만 처다 본다. 그런데 요즘 드라마들 참 박진감 넘치고 볼만한 것 같다. 
현대극 드라마에서는 무슨 007영화보다 더한 액션과 스토리를 맛 볼 수 있는가 하면 사극들은 또 사극들대로 숨통이 조여 오는 스릴을 선사하고 있으니........ 여름 내내, 아니 반년도 넘게 처다 볼 수 없었던 텔레비전에 한 풀이를 하고 있다.  
 
그 중에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에서 감히........ 감히 외람되게....... 여성이라는 동질감이라고 할까? 뭐 그런 묘한 인간세상의 모습들을 공감하고 있다.
산에 가면 나도 내 농장에서 만큼은 여왕이기 때문일까? 
 
피신자 덕만이 여왕이 되는 것과 평범한 가정주부가 농장지기가 되는 것은 그 규모가 다르다지만 개인에게 주어진 시련의 길은 각각이 겪어야 하는 그 만큼의 공통된 몫이 있는 것 같다.
또한 덕만이 여왕이 되기까지는 덕만을 돕는 수 없이 많은 인연들과 한 배를 타고 가는 길목에서 알력이라든지, 공존이라든지, 여왕이 되었을 때는 그 막강한 힘의 퍼센트를 놓고 벌어지는.......
여왕은 신과 대화하지 않으면 여왕이 될 수가 없을 것 같다.
한 국가를 책임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백성인 전체를 동원하여 민중인 개인 개인을 평온케 해야 한다. 그래서 선군이든 폭군이든 나라님은 하늘이 점지해 준다고 하지를 않았던가?! 그런데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보면 여왕을 제외하고는 모두가 개인의 입장에서 움직이고 있다.
 
드라마라는 설정에서 보면 미실이 평생의 포부를 접고 죽을 수 있었던 것은 포부는 개인적이었으나 죽음은 왕의 입장에서 선택되어지는 면을 볼 수 있다. 
그 수하들은 그런 미실의 죽음이 포부와 어떻게 다른지를 분간하지 못 한다. 
오로지 한 사람!
그 죽음이 왕의 선종이다. 라고 읽은 사람은 덕만 뿐이었다.
이런 멋진 장면을 뽑아내는 제작진들에게 미묘한 감사와 감동을 받기도 한다. 
큰 그릇의 내면은 더 큰 그릇만이 볼 수 있을 것이다. 
 
 
아무튼 이야기 전개를 보면 여왕은 왕이라는 자리가 국가가 되어져 있으므로 사사로움의 벽을 넘어 운명과 소통을 하거나 하늘과 소통을 하지 않으면 국가가 되지 못한다. 등장하는 유신, 비담, 춘추, 월야........ 나름 공적이긴 하지만 높은데서 내려다보면 모두가 개인적이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틀리다는 것은 아니다. 비춰지는 주인공이 여왕이 아니고 비담이라면 비담의 뜻을 알아주지 못하는 여왕 또한 개인적 입장의 조연이고 마는 것이다. 이 말은 곧 인간은 누구나가 주인공이며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더불어 인간은 누구나가 조연이며 오류 덩어리라는 말이기도 하다.
 
산에서 일을 한지가 4년이 되었다. 내년이면 5년째에 접어든다.
처음 첫 해, 두 해는 경험부족으로 많이 힘들어 했고, 짝꿍에게 욕도 많이 먹었고, 싸움도 많이 했다. 작물이 어떻게 아픈지를 몰라서 무조건 초록이면 다 건강한 줄 알았고, 짝꿍이 처방해 주는 약들이 기침에 쓰는지 콧물에 쓰는지 알지를 못해서 기침에 콧물 약을 넣기도 하고 콧물에 기침약을 넣기도 하였다. 그러다 보니 경험 많은 종사자들이 농장지기인 내 머리 꼭대기에 앉아버리는....... 드라마에서처럼 개인은 자신들이 어떤 행동을 취하는지 알지 못한다. 그 살아 온 습관과 노련미에 묻혀서 벌어지는 영역이라고나 할까?!
 
 
덕만을 도와서 거친 황야를 살은 사람들이 결국 여러 가지 이유로 비명에 죽기도 하고, 역할이 바뀌기도 하여, 출연이라는 생명이 끝나는 것처럼 농장지기인 나도 미숙한 나를 성의껏 도와주지 않은 사람들을 다시는 부르지 말도록 짝꿍에게 극약처방을 내리기도 했었다. 반대로 상대편에서 요구하는 만큼과 절충하지 못해서 절교되는 상황도 있었다. 
이렇듯이 사람은 모두가 각기 개인의 특성 안에서는 주인공이 된다. 
 
 
그러나 왕좌에 오른 여왕은 더 이상 쫓기던 덕만의 판단으로 수하사람들을 보아서는 되지 않는다.
큰 가슴으로, 밝은 눈으로, 그리고 참고 견딤으로, 
품어야 할지, 지켜봐야 할지, 다독여 격려해야 할지, 숙이고 들어가야 할지, 냉정한 단칼에 잘라버려야 할지, 다음을 기약해야 할지, 당장에 이루어야 할지.........
수 없는 고민과 판단을 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그 고민과 판단이 잠시라도 느려져서도 안 된다. 여왕은 그것마저도 번개와 동무를 해야 하고, 그 번뜩거리는 찰라에도 지탱되어질 뚝심과 강심장이 있어야한다. 그렇지 않으면 여왕은 여왕일 수가 없다. 반란의 역적은 사람이라기보다 빈 틈이기 때문이다.
 
농장지기를 하다가 보면 무수히 많은 인연들과 함께 해야 한다.
봄에 가서 시작을 할 때는 질서정연하게 제 줄을 잘 서서 진행이 된다. 
씨만 파종을 할 때는 일의 내용이 어렵지도 않고, 그야말로 밭 갈고 씨 뿌리면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씨가 싹이 나기 시작하면 한 쪽에서는 밭 갈고 씨 뿌리면, 다른 한 쪽에서는 솎음하는 사람들이 솎음을 하러 단체로 등장을 한다. 솎음이 끝난 밭 자리는 옥이야 금이야 하루도 빠지지 말고 살펴줘야 하고 또 자라는 모습에 따라 기침하는 것 같으면 감기약도 줘야하고, 배 아픈 것 같으면 설사약도 줘야하고, 먹는 것이 부실하다 싶으면 좋다는 영양제도 줘야 하고.......  그러다가 보면 여름이 가깝고, 일손은 바쁜데 잡풀들까지 기세를 부려 풀 베러 다니랴, 풀 뽑으러 다니랴, 정신은 없는데 때 되었다고 꼭 장마는 오신다. 장마가 오면 그 많은 밭 자리들을 둘러보며 물고를 막으랴 물고를 트랴. 씨 심으랴 솎음하랴. 약 치러 다니랴, 풀은 또 어떻게 하구........ 그러다가 보면 이른 봄에 심은 작물이 다 자라서 뽑아야 하고........ 한 쪽에서는 씨 심고, 또 한 쪽에서는 솎음 하고, 또 한 쪽에서는 뽑고, 싣고, 팔러가고, 풀도 있고, 태풍도 있고, 장마도 있고, 가뭄은 또 어떻게 하구........ 
거기다가 이웃 밭주인들이라도 뭔 불편사항이 발생하면 고개 숙여 사정하러 다녀야 하고, 아니면 악다구니 써서 싸워서 이겨야 하고.......  하아~!
뽑아낸 자리는 또 비료뿌리고 갈아서 후작 씨 심어야 하고........
헤에헤에헤에~~~! 숨 쉴 틈도 없다.
 
여왕은 아니라도 농장지기도 참 고생이다.
그런데 일을 하다가 보면 사람들은 보수라는 이권과 노동이라는 피로 사이에서 제 위치를 변동하게 된다.  
농장주가 원하는 일을 하고 그 대가를 지불 받으면 된다는 원칙은 변함이 없다. 그대로 하면 된다. 직책에 따라, 하는 일에 따라, 그 보수도, 그 노동도, 아롱이다롱이의 모양을 갖추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경우라는 건....... 그 초심을 끝까지 지켜서 그대로 이루는 경우가 드문 것 같다. 분명히 봄에 출발할 때는 제 위치에서 출발을 했는데........
하하하하하하!
 
잔꾀가 많은 사람은 제 꾀대로 움직이게 살려둘 때가 많고, 진짜로 곰처럼 힘만 세고 머리 없는 사람도 있는데 그런 사람은 힘쓰는데 배치시키면 되고, 보수를 넉넉히 주는데도 하는 일 없이 슬쩍슬쩍 숨어 다니면서 농장지기를 계산도 모르고 돈만 잘 주는 멍청이 쯤으로 취급하는 사람도 묵비권으로 먼발치에서 바라봐 줘야 할 때가 있고, 반면에 뒤져라 타인의 몫까지 이리 뛰고 저리 뛰면서 두 몫이나 세 몫을 해 주시는 분도 있고, 기술자처럼 두 몫은 죽어도 못하는 사람, 그렇다고 덜어서 반 몫만 하지도 못하고 꼭 한 몫만큼만 완벽하게 하는 사람도 있고, 조잡스럽고 추한 일을 할 때는 어디로 사라졌다가 폼 잡는 일에는 꼭 나타나 자기가 하려는 사람도 있고. 자신의 보수를 어디서 받는지를 망각하고 엉뚱한데 줄을 서 있는 바람에 농장주의 말을 죽어도 듣지 않고 밀고 나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휴~!  그거 머리통 터지게 연구해서 운영해야하는 사람은 농장주다. 
 
봄에 먹은 마음을 절대로 잃지 말아야 하는 사람은 여왕이다. 여왕 혼자서 만이라도 제 길을 잃지 않으면 따라오는 민초들이야 앞서거니 뒤서거니 얽히든 섞이든 다 따라 온다. 
 
선덕여왕이라는 드라마를 보면서 인간의 두뇌가 얼마나 작전에 능한지를 알 수 있다. 
졸부는 졸부대로 두뇌를 쓰게 되고, 장수는 장수대로 그에 걸 맞는 두뇌를 동원한다. 졸부가 승격하여 장수가 되면 졸부 때 모자랐던 두뇌도 팽창되는 면을 볼 수 있다. 그러니 여왕의 두뇌는 얼마나 대폭으로 확장 되어 움직이겠는가?! 그러므로 여왕이 되어보지 않은 장수도 졸부도 그 여왕을 읽지는 못한다.
덕만이 미실을 읽을 수 있었던 것은 미실보다 그 크기가 큰 그릇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인간의 역사는 오늘도 기록되고 있을 것이고!
 선덕여왕이 권좌에 있는 신라국 뿐만 아니라 내가 업주로 있는 농장에서도 인간의 역사는 이루어지고 있다.    
 
렇다고 모든 사람이 승격되어 두뇌를 발전시킬 수 있는 졸병의 신분도 아니며, 여왕이 되어보기는 더욱 어렵다. 대부분의 사람은 그냥 살다가 죽게 된다.
 
나도 그렇게 죽게 된다. 
드라마는 끝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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