렉시오 디비나에 따른 복음 묵상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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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 하여라. 너도 기뻐하고 즐거워할 터이지만 많은 이가 그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다. 그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 (루카 1, 13 – 15) 이 요한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성경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는 사람이다. ‘보라, 네 앞에 나의 사자를 보낸다.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놓으리라.’” (7, 27)
광야에 있는 요한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습니다(3, 2). 때는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그리고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입니다.(3, 1 – 2) 여기서 루카는 로마 황제부터 이스라엘 종교 지도자에 이르기까지 언급하고 있네요. 앞에서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2, 1 – 2) 아우구스투스 황제의 호적 등록 명령과 연관시켰듯이, 요한의 공생애 활동을 알리면서 복음사가는 세계사적 사건이나 연대기적 상황을 함께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당시 종교적 상황과 더불어 사회 정치적 상황에서 요한의 활동이 지니는 의미를 나타내고자 한 것이지요.
요한은 커서 유다 광야에서 살았다고 하니(1, 80), 쿰란의 에세네파 가운데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그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았다는 것입니다. 마르코(1, 4)와 마태오(3, 1)는 요한이 광야에 나타나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고만 전하고 있어 그가 어떻게 자신의 공생활을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보가 없는데, 여기서는 그의 활동이 하느님한테서 말씀이 내린 결과로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요한의 선포활동 소명도 구약성경에 나오는 예언자들이 소명을 받는 것처럼 그려졌습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자신이 하느님한테서 부르심 받아 주님이 명령하는 것을 말하는 사람이 되었음을 다음과 같이 알려줍니다. “주님의 말씀이 나에게 내렸다. ‘모태에서 너를 빚기 전에 나는 너를 알았다. 태중에서 나오기 전에 내가 너를 성별하였다. 민족들의 예언자로 내가 너를 세웠다.’” (예레 1, 4 – 5) 요한의 소명은 일찍부터 그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예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아기야, 너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예언자라 불리고 주님을 앞서 가 그분의 길을 준비하리니 죄를 용서받아 구원됨을 주님의 백성에게 깨우쳐 주려는 것이다.” (루카 1, 76 – 77) 이처럼 구약의 예언자 계열에 속하는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그 말씀에 봉사하게 됩니다.
복음사가들은 요한의 존재와 역할을 이사야 예언자의 말씀에서 찾아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언자들의 입을 통해 앞으로 오실 메시아를 예고해 주셨고, 그에 앞서 준비하는 자에 대해 알려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오늘 루카는 이사야의 예언이 요한한테서 그대로 실현되었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루카의 독자성이 엿보이는데, 다른 복음사가들과 달리 그만이 이사야 40장 3 – 5절 전체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광야를 가로질러 가는 행렬을 보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을 바빌론에서 이끌어 내고 고국으로 인도하면서 앞장서서 행진하셨습니다. 본디 유배지에서 귀환하던 사람들에게 선포된 이 메시지가 이제 요한과 예수님께 적용되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는 요한이고, 이제 오시는 분은 메시아이신 주님이십니다.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 골짜기는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낮아지고,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루카의 이사야서 인용에는 구약성경 본문과 몇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먼저 ‘우리 하느님의 길’ 이 ‘주님의 길’ 로 바뀌었습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동일시하는 그리스도교적 신앙의 표현이겠지요. 또한 이사야서의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영광을 보리라.” 에서 ‘영광’ 이 ‘구원’ 으로 바뀌었습니다. 이는 시메온이 아기 예수님을 보고 “제 눈이 당신의 구원을 본 것입니다.” (2, 30)라고 한 말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구약성경 본문이 조금 달라진 것은 하느님과 같으신 분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심으로써 모든 사람이 구원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반영된 결과입니다.
오실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것은 하느님께 돌아섬, 곧 죄의 용서를 받기 위한 회개의 세례로 이루어집니다. 히브리어에서 본디 ‘돌아섬( )’ 을 뜻하는 ‘회개’ 는 결국 인간이 하느님께서 주신 본래의 모습으로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로 돌아서는 것을 가리킵니다. 자신의 본래 모습을 잊고 죄에 사로잡혀 지내다가 자기 자리로 돌아갈 때 죄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파이거나 높아지거나 굽어지거나 뒤틀린 곳이 있으면 메워지고 낮아지고 곧아지고 평탄하게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요한은 주님의 오심을 알리며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이끌려 이스라엘 백성뿐 아니라 온 인류를 구원하러 오시는 예수님을 선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의 선포는 예수님이 선포하실 ‘기쁜 소식’ 에 앞서 예수님을 예고하는 ‘기쁜 소식’ 이기도 합니다.
오늘 우리는 무엇을 준비하고 있습니까 ? 당신이 오실 길을 마련하고 있나요 ? 파이거나 높아지거나 굽어지거나 뒤틀린 곳은 없는지요 ?
강선남(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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