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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지속가능한 성장'은 형용모순에 가깝다> - 김명인
작성자송영자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8 조회수341 추천수2 반대(0) 신고
지속 가능한 재앙은 없다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석유 고갈 같은 위기를 넘을 수 있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윤과 성장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논리는 재앙을 앞당기는 범죄적 논리다.
 
[116호] 2009년 12월 03일 (목) 10:25:22 김명인 (인하대 교수·계간 <황해문화> 주간)
 
고대 마야력에는 2012년 12월21일 이후의 날짜가 없다고 하며 주식시장 예측 프로그램인 웹봇도 2012년 이후에 대한 예측은 내놓고 있지 않다고 한다. 수메르인들의 기록에 남아 있는, 6000년마다 지구에 근접하는 니비루라는 별이 ‘행성 X’라는 이름으로 다시 지구에 근접하는 것도 2012년이라는 설이 있다. 그때 태양계 행성이 직렬로 놓이고 미증유의 엄청난 태양풍이 밀려온다는 이야기도 있다. 게다가 마침 <2012>라는 ‘초절정 재난 블록버스터’ 영화가 개봉되어 많은 사람에게 충격을 안기고 있다. 그럴듯하지만 믿을 수는 없는 신종말론이다. 이런 종류의 종말론은 사람들의 각성을 불러일으키는 대신 종말론적 허무주의와 무력감, 혹은 역설적으로 무감각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점에서 결코 건강하지 않다.

   
 
그러나 섣부른 종말론과는 다른 설득력 있는 예견조차도 단지 그것이 정확히 예측되거나 입증될 수 없다는 이유만으로 무시될 수는 없다. 이를테면 지구 온난화와 그로 인한 충분히 예측 가능한 장래의 재앙을 말하는 경우가 그렇다. 온난화로 인한 지구 온도 상승과 그에 따른 자연재앙들이 비록 한순간에 지구를 끝장내는 수준은 아니더라도 지속적으로, 또 점증적으로 지구 생태계를 위협한다는 것은 이제 주지의 사실이다. 열대성 저기압의 빈번한 발생, 남북극 얼음의 용해에 따른 해수면 상승과 저지 침수, 대양의 염도가 낮아지면서 해류 순환에 변화가 오고 그로 인한 급속 냉각, 심해와 동토대의 메탄가스 용출과 그에 따른 이산화탄소량 급증 혹은 대화재, 오존층의 파괴와 태양풍의 위협 등은 현재 현실화하고 있거나 조만간 현실화할 것이 틀림없는 예측 가능한 재앙이다.

여기에 또 하나 유력한 미래 예측이라고 할 ‘피크오일’이 있다. 일부 과학자가 진단하듯 현재 세계 석유 생산량이 고점을 지나는 중이고 조만간 석유 부족이 심각해진다면 그로 인한 재앙은 현재의 인류문명에 더욱 직접적인 충격으로 다가올 것이다. 우리가 누리는 이 휘황한 근대문명은 곧 석유문명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에너지 부족으로 인해 작게는 생활의 대혼란에서부터 비행기·선박·자동차 등 교통 체계 및 이에 기초한 식량 수급 등 일국적·지구적 근대 시스템 전체의 위기, 의약품 등 석유를 원료로 한 모든 근대적 생필품의 결핍은 물론이고 그로 인한 사회갈등, 국가 간 갈등과 전쟁의 발생 등 전방위적 대재앙이 예고되는 것이다.

이런 묵시록적이지만 설득력 있는, 그리고 무엇보다 인간 자신의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바꿀 수 있는 인공 재앙에 대한 예견에 대해서 과연 우리는 얼마나 심각하게 인식하고 있으며 또 얼마나 적절하게 대비하는 것일까. 유럽 일부 국가와 주로 선진국 시민사회 부문에서는 어쨌든 이러한 위기가 몰고 올 묵시록적 파국을 막거나 최소한 연장이라도 하기 위한 심각한 연구와 실천이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지구상의 절대다수 국가와 시민사회에서는 여전히 그 대비는 고사하고 기본적인 인식조차도 공유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지속 가능한 성장’은 형용모순에 가깝다


우리나라의 경우 그 표피적 인식은 그나마 널리 알려져 있지만 실천 영역에서는 아직 걸음마도 못 뗀 수준이다. 현 정부가 내세우는 이른바 ‘녹색성장론’에서 잘 알 수 있듯이 절대적 성장론이라는 기존 패러다임에다가 살짝 녹색 페인트를 칠한 정도를 넘지 못하는 것이다. 모든 성장에는 에너지가 필요하고 물류가 필요하고 고도화된 자본 집적과 집중이 필요하다. 지금 지구 생태계가 처한 위기는 성장 패러다임을 거의 전면적으로 포기하지 않으면, 즉 자본주의적 근대 운동 원리의 존립 자체를 문제 삼지 않으면 좀처럼 극복하기 힘든 전면적 위기라고 판단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성장 신화에 목을 매고 있으며 심지어 생태주의적 어젠다조차도 이윤 추구를 위한 호재로 이용하고 있다. 테크놀로지의 힘으로 이 위기를 넘을 수 있고, 또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이윤과 성장동력을 발견할 수 있다는 논리는 단순히 낙관적인 것이 아니라 실은 재앙을 앞당기는 범죄적인 논리에 가깝다. 지속 가능한 재앙은 없다. 따라서 ‘지속 가능한 성장’ 역시 이젠 형용모순에 가깝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장 신화는 말할 것도 없고 우리가 지금 향유하는 근대적 생활 세계의 모든 혜택의 절반 이상을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는 각오일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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