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11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09 조회수412 추천수2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대림 제2주간 수요일]

 

<고생하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28-30


그때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4복음서에서 마태오 복음서에만 유일하게 기록된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에게 오너라." 하신 말씀은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고자 하는 이유가 담겨있는 말씀입니다. 목적지도 정하지 않고 무작정 길을 떠난 사람은 없습니다. 또 목적도 없이 목적지를 가는 사람도 없습니다. 아마 이런 사람들이 있다면 할 일도 없어서 시간을 때우려는 사람들이거나 갈 곳도 없어서 방황하는 사람들 일 것입니다.

 

세상만사가 이렇듯 종교생활도 목적이 확실하여야하며 그렇지 않고 가족이나 친구가 교회에 다니기 때문에, 교회에 가면 많은 사람을 사귈 수 있기 때문에, 또는 교회에 다니며 열심히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내 소원을 들어주실 것으로 믿고 종교생활을 한다면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전혀 관계없는 신앙생활을 하고 있으므로 겉모습만 그리스도 교인이라 할 것입니다.

 

오늘 복음은 짧은 말씀 속에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를 알려주고 계시지만 이런 소중한 말씀이 마태오 복음서에만 기록된 점은 많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발견된 도마복음서에 오늘 복음과 동일한 말씀이 있으므로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이유에 대하여는 많은 신학자들이 앞으로 풀어야 할 숙제이고 오늘 말씀과 동일한 도마복음서의 말씀을 옮겨 봅니다.  

 

(No 90) Jesus said, "Come to me, for my yoke is comfortable and my lordship is gentle, and you will find rest for yourselves." (말씀 90,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에게 오라. 나의 멍에는 편하고 내 마음은 온유하니, 너희는 안식을 얻게 되리라." )

 

우리가 아무리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여도 삶의 무거운 멍에를 벗을 수 없고, 여러 마음고생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하면 그 순간에는 잠시 잊을 수 있겠지만 다시 눈만 뜨면 생존경쟁을 하느라 망신창이가 되어 몸과 마음이 병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또 이런 무거운 짐을 지고 싶어서 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이를 우리 교회가 해결해 줄 수 있을까요? 또 수도자의 삶을 사는 사람은 무거운 짐과 그 어떤 번민도 없을까요? 

 

우리가 사는 세상을 마하트마 간디는 꽃밭이 아니라 온통 가시밭이라 하였고, 찰스 다윈은 생물들은 서로 생존투쟁을 하는 것이라 하였으며, 톨스토이는 폭력으로 탄압하고 착취하는 자가 국가라 하였으며, 노자는 天地는 不仁하다고 하였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이처럼 험한 곳인데 그 속에서 살면서  고통스럽고 번민하지 않으면 이상한 일입니다. 이런 우리의 고통을, 무거운 짐을, 멍에를 해소시켜주는 것이 종교의 역활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현실 세계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으므로 그 어떤 종교도 우리를 현실의 고통에서 우리의 뜻대로 구원해 줄 방법이 없습니다. 그러나 딱 한 가지 방법이 있으며, 그 방법도 우리가 생각하는 구원과는 전혀 다른 구원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물거품처럼 사라질 形을 섬기는 삶에서, 즉 우상을 섬기는 삶에서 영원불변하신 하느님을 섬기는 삶으로 변화되어야 가능하고, 하지만 이를 실천에 옮기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으며 인류 역사상 이런 삶을 사신 분은 예수님과 석가입니다.

 

깨달음을 실천하는 길만이 구원을 받을 수 있음에도 깨달음은 관심도 없고 오직 구원에만 연연하고 있으므로 구원 받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깨달음을 체득하여 실천에 옮기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예수님은 하느님과 한 분이 되셨고 석가는 성불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님의 가르침마저도 제대로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으므로 가르침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급선무가 아닐 수 없습니다. 저희들과 다른 삶을 사신 예수님의 말씀 중에는 우리들의 좁은 생각으로 이해하려고 하여도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부지기수이며 오늘 말씀도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 중의 하나입니다.

 

흔히 우리 인간은 영과 육으로 되어 있다고 합니다. 이에 동의한 사람들은 육신만 생각하는 1차원적인 사람들보다는 엄청 진일보한 종교적 삶을 생각하는 사람들 일 것입니다. 그러나 간디는 Body, Mind, Soul로 생각하였으며 다석 류영모 선생님은 몸나와 맘나와 얼나를 생각하고 계셨으므로 두 분은 같은 생각을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 몸은 지금 이 시간에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으며 마음도 조석변이라 하였듯이 수시로 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게속하여 변하기 때문에 이로 인해 고통과 번민이 생겨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이 주신 영성인 얼 만큼은 결코 변할 수 없으므로 영원한 생명입니다. 다석 선생님은 제나(몸나와 맘나)를 죽여서 얼나로 솟나(부활)는 것이 영원한 생명이며 이런 삶을 사신 분이 바로 예수님과 석가입니다.

 

몸나가 없으므로 육신의 그 어떤 고통도 없고, 맘나가 없으므로 그 어떤 번민도 없다는 말씀입니다. 컵을 비우면 그 속에 공기가 채워지듯이 제나가 사라지면 얼나가 그 자리를 채울 것이므로 하느님과 하나가 되고, 성불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불가에서는 '成佛하십시요'가 불자들의 인사이지만 만약 우리가 '成天하십시요'하고 인사하면 이단으로, 정신이상자로 취급 받지 않으면 다행입니다.

 

어느 분은 예수님의 말씀과 부처님의 말씀은 바보, 멍청이가 아니면 실천할 수 없다고 하였습니다. 아주 정확하게 지적한 것 같습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익히고 배운 것은 몸나와 맘나를 위한 공부만 하였으며 얼나가 있다는 생각조차도 하지 않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몸나와 맘나를 전부 죽였으므로 우리 기준에서는 바보, 멍청이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마태 11.25)하였습니다.

 

구원 받기 위해서는, 영원한 생명을 살기 위해서는 몸나와 맘나를 죽여야 하지만 우리는 몸나와 맘나를 위해서 빌고 기도하고 있으므로 구원과는 거리가 먼, 예수님의 가르침과는 다른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비록 가르침을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말씀의 의미만큼이라도 제대로 이해해야 예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따르는 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몸나도 없고 맘나도 없으므로 바람은 불고 싶은 대로 부는 것처럼 그 어디에도 메인 곳이 없으므로 멍에는 편하고 무거운 짐도 있을 수 없습니다. 니코데모와 대화에서 "누구든지 위로부터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하셨으며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고 하셨습니다.

 

오늘 복음은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 즉 몸나와 맘나를 죽이면 누구든지 하느님의 나라를 볼 수 있고,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오늘도 내일도 제나를 죽이고 또 죽이는 길만이 영원한 생명인 영원한 안식을 얻는 길이라는 것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대자대비하신 아빠 하느님!
성자 우리 주 예수님은 무거운 짐을 진 자는 모두 나에게 오라 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주님께로 모였지만 무거운 짐을 벗지 못하고
갖은 고통과 숱한 번민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주님의 가르침을 바르게 익혀서 주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게 하여주시옵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우리 주 예수님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