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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한상기님의 둥둥 북소리 312
작성자김명순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10 조회수406 추천수1 반대(0) 신고

오늘의 묵상입니다. [대림 제2주간 목요일]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1,11-15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 나라에서는 가장 작은 이라도 그보다 더 크다.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 폭력을 쓰는 자들이 하늘 나라를 빼앗으려고 한다.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 복음은 세 말씀으로 되어 있습니다. 첫 말씀은 "여자에게서 태어난 이들 가운데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인물은 나오지 않았다."는 말씀이고, 두 번째 말씀은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이며, 세 번째 말씀은 "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는 말씀으로 각 말씀마다 소홀히 생각할 수 없으므로 귀담아 들어야 할 말씀이지만 저 또한 제대로 들을 귀가 있는지 의문입니다.

 

지금까지 태어난 사람 중에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없다고 하였습니다. 그럼에도 하늘 나라에서의 가장 작은 이들보다 못하다고 하였으므로 무슨 말씀인지를 알아들을 귀가 없음을 실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을 문자해석하면 세례자 요한도 하늘 나라에 갈 수 없다는 뜻이므로 이해할 수 없는 말씀이 아닐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의 참 뜻은 민중들이 생각하는 큰 인물들은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선량한 이름 없는 순수한 민중들이 하늘 나라에서 살고 있다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스스로 부족함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보잘 것 없는 지식으로 다 아는 것처럼 기고만장하지만 세례자 요한은 자신의 부족함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그분의 신발을 들고 다닐 자격조차 없다." (마태 3,11)고 하셨습니다. 이런 세례자 요한이 하늘 나라의 가장 작은 이보다 못한 이유를 저는 알 길이 없습니다. 하물며 세례자 요한도 이럴 진데 나머지 큰 인물들에 대한 환상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강조하시고자 하신 말씀으로 묵상할 수밖에 없습니다. 아마 세례자 요한은 하늘 나라에서 예수님 다음으로 큰 사람이 되시어 저희와 우리 교회를 지켜보고 계실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세례자 요한 때부터 지금까지 하늘 나라는 폭행을 당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세례자 요한의 위대한 점은 민중들에게 두 가지 사실을 알려준 점입니다. 하나는 죄의 용서를 위한 세례였으며, 다른 하나는 “회개하여라. 하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0)고 선포하시며 예수님보다 앞서 하늘 나라를 선포하셨습니다. 그때까지는 어느 누구도 생각조차 하지 못하였던 세례와 하느님의 나라를 최초로 알려주셨으므로 "지금까지 태어난 사람 중에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사람이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찬사가 결코 과장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인류 역사가 시작되면서부터 불의한 자들에 의해서 폭행을 당해왔지만 민중들은 하느님의 나라의 존재 자체를 모르고 있었으므로 하느님의 나라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하느님의 나라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줬으므로 세례자 요한 때부터 하늘 나라가 폭행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비로소 민중들이 조금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는 말씀으로 묵상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근한 예는 무수히 많지만 몇 가지만 떠올려 보겠습니다.

 

지금 우리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음에도 인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은 인권이 유린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노엄 촘스키 MIT 명예교수와 하워드 진 보스턴대 교수 등 진보적인 세계 지식인들이 현 정부의 민주주의 후퇴를 비판하는 국제성명을 세계 인권의 날을 맞이하여 오늘 발표한다는 기사를 접했습니다. 그  성명에는 용산 참사, 노동절 집회 탄압, 언론악법 통과, 쌍용자동차 파업 탄압 등 올해 정부가 저지른 반민주적 행위와 인권탄압에 대하여 규탄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우리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탄압받고 있다는 사실조차도 모르는 청맹과니와 다름없는 자들이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또, 세금이 우리 돈인지 모르는 사람은 국가 재정을 불요불급하는데 사용하여도 우리의 돈이 도둑맞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으며, 자신의 노동력의 가치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노동력이 착취당하고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습니다. 불의한 자들에 의해서 우리의 인권이 유린당하고, 우리의 세금이 도둑맞고, 우리의 노동력이 착취당하고 있듯이 불의한 자들에 의해서 하늘 나라가 폭행을 당하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를 깨달아야 한다는 뜻에서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고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오늘 마지막 말씀인 "모든 예언서와 율법은 요한에 이르기까지 예언하였다." 하신 말씀은 지금까지 너희들이 알고 있는 것은 이제 쓸모가 없어졌고 요한이 알려준 것이 새로운 율법이고,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다." 하신 말씀처럼 너희가 요한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요한이 바로 너희를 새 땅과 새 하늘에서 살 수 있도록 구원해 주는 구원의 메시야라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말을 듣지 않으면 그 어떤 메시야가 와도 너희를 구원하지 못한다는 말씀입니다.

 

오늘 말씀의 전체적인 의미는 이러한 세례자 요한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을 민중들에게 알려주는데 있으며, 요한의 임무는 '그가 네 앞에서 너의 길을 닦아 놓으리라.’는 말씀을 증거하는데 있다는 사실을 민중들에게 주지시켜서 태산준령과 같은 세례자 요한의 벽을 극복하여 복음을 전파하려는 복음서 기자의 노력을 엿볼 수 있습니다.

 

선구자는 뒤 사람이 올 길을 앞서 개척하는 사람들입니다. 세례자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미리 닦아 놓았고, 예수님은 저희를 위해 하느님의 나라에서 살 수 있는 길을 열어주셨으며, 예수님또한 당신께서 알려주신 길을 저희들이 더 넓히고 포장해 주기를 바라시며 "나를 믿는 사람은 내가 하는 일을 할 뿐만 아니라, 그보다 더 큰 일도 하게 될 것이다. 내가 아버지께 가기 때문이다." (요한 14, 12)고 말씀하셨습니다. 인류 역사는 선구자에서 선구자로 면면이 이어온 역사이며 이런 역사가 단절되지 않도록 이어나가는 것이 우리 신앙의 한 축인 예언자 전통에 속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늘 나라에 이르는 험난하고 좁은 길에 저희를 위해서 이정표까지 설치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혹시라도 이정표를 놓쳐서 잘못된 길을 가고 있지는 않는지, 지금 걷고 있는 길을 복음 말씀과 견주어보며 확인 또 확인해야 후회 없는 삶을 살 수 있음을 끝으로 오늘 묵상을 마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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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 묵상 중에, 삼팔선을 넘으며 김구선생님이 읊었고, 그 길을 따라가며 문익환 목사님이 다시 읊었던 '野雪'이 생각나서 오늘 마침기도는 '野雪'을 옮기는 것으로 대신하겠습니다.

 

- 野雪-

 

踏雪野中去 (답설야중거) 눈 덮인 들판 길 걸어 갈 때에
不須胡亂行 (불수호란행) 발걸음을 함부로 어지러이 하지마라.
今日我行蹟 (금일아행적) 오늘 내가 걷는 발자취는
遂作後人程 (수작후인정) 뒤 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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