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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생의 답은 오직 예수님 / [복음과 묵상]
작성자장병찬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10 조회수453 추천수2 반대(0) 신고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주 우리 하느님 찬미받으소서. 하늘 높은 곳에는 하느님께 영광.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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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화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정에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


인생의 답은 오직 예수님


사람에게는 세 가지 고민이 있습니다. 첫째, 나는 누구인가 하는 정체성입니다. 둘째, 나는 중요한 존재인가 하는 중요성입니다. 셋째, 나의 삶에서 나의 위치인 영향력입니다.

인생의 최고 축복은 예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구원입니다. 인생 문제의 해답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생명의 주인이신 예수님만이 해답인 것입니다. 영육이 병든 인생의 치료자는 예수님뿐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절대 절망이 절대 소망의 인생으로 바뀌게 됩니다. 인생의 해답이신 예수님만이 우리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인생의 해답이신 예수님만이 죽음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인생 문제, 신앙 문제, 가정 문제가 해결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내가 어디에서 와서 왜 살며 어디로 가는지 확실하게 알게 됩니다.

나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 없는 병든 인생이 예수님 안에서 치료받은 내 존재를 발견하게 됩니다. 버림받은 나의 인생이 예수님 안에서 존귀한 인생임을 발견합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삶의 목적이 분명해집니다. 삶의 목적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삶의 목표가 절대 예수님입니다.

당신의 인생에 문제를 만났습니까? 죽고 사는 문제가 있습니까? 사면초가 인생이 됐습니까? 그러면 세상사람 앞에 무릎 꿇지 말고 하느님 앞에 무릎 꿇으십시오. 기적의 주인공이 됩니다. 절대 위기는 예수님 안에서 축복의 기회며 응답의 기회입니다.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를 만났을 때 위를 바라보면 주님이 도와주십니다. 살고 죽는 문제를 만났을 때 믿음의 눈으로 나를 보십시오. 예수님 안에 있는 나는 이제 하느님의 자녀라는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 해답이 있습니다. 예수님 안에서 완전히 고침 받은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문제를 보던 인생이 문제의 해결자 예수님을 바라보게 됩니다.

나의 정체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는 치료받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나는 정말 중요한 존재인가? 그렇습니다. 나는 아주 중요한 존재입니다. 예수님을 만나면 나의 중요성을 발견하게 됩니다. 나의 삶에서 나의 영향력을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 안에서는 불가능이 없습니다.

기도하면 하느님이 일하십니다. 기도하면 예수님이 성취시켜주십니다. 기도하면 성령님이 오셔서 크고 비밀한 일을 보여주십니다. 우리 인생의 해답은 오직 예수님입니다.

(김바울님 참조)




[12월 11일, 금요일] 생명의 거룩한 말씀 '복음' 
<마태 11,16-19>
[오늘의 묵상 - 신은근 바오로신부님, 마산 호계성당]


[복음]
 그때에 예수님께서 군중에게 말씀하셨다.
“이 세대를 무엇에 비기랴? 장터에 앉아 서로 부르며 이렇게 말하는 아이들과 같다. ‘우리가 피리를 불어 주어도 너희는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을 하여도 너희는 가슴을 치지 않았다.’
사실 요한이 와서 먹지도 않고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은 그 지혜가 이룬 일로 드러났다.”



[오늘의 묵상]
편견은 한쪽으로 치우친 생각입니다. 그러기에 공정하지 못한 경우가 많습니다. 때로는 엄청난 오해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복음 말씀은 바리사이들의 편견을 꾸짖는 내용입니다. 세례자 요한이 단식하며 사람들을 가르치자, ‘마귀 들린 선생’이라며 비난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보통 사람들과 어울리시자,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라는 소문을 냅니다.

오늘날에도 편견은 여전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속도’와 연관된 일입니다. 무엇이든 빠른 것이 좋은 것이고, 느린 것은 ‘안 좋은 것’이라는 편견입니다. 그리하여 단번에 화끈하게 끝나는 것을 찾아 헤매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빨리 교세를 확장해야 하고, ‘미사도 빨리’, ‘회합도 빨리’, 강론도 짧기를 원합니다.

하지만 빠른 것은 그저 ‘빠른 것일 뿐’입니다. 느린 것도 그저 ‘느린 것일 뿐’입니다. 그렇게 해서 삶의 조화가 이루어지는 것이지요. 세상 모든 것이 빠르기만 하다면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빨리 하는 습관보다 ‘즐겁게 하는 습관’을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우리 곁에는 ‘즉흥 병’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즉흥적으로 생각하고 말하고 행동하는 물결입니다. 한 번쯤 멈춰 설 줄 알아야 합니다. 바리사이들도 편견을 깨고 조금만 천천히 다가갔더라면 예수님을 알아봤을 것입니다. 너무 서둘렀기에 가까이 계신 구세주를 외면하고 말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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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연옥 영혼들과 하느님을 모르는 사람들과 하느님을 반대하는 사람들과 다른 신들을 믿는 사람들과 쉬는 교우들을 위해서” 라는 지향을 미사에 참례때 혹은 기도하면서 붙이면 매우 큰 선행과 보속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인의 통공 교리를 생활화 한다면 지상에서 행할 수 있는 선행이 엄청나게 많습니다. (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과 예수님과 성령께 찬미와 흠숭을,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마리아와 성가정의 수호자이신 요셉께 사랑을! ) 

( http://예수.kr   ,  http://마리아.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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