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펌 - (97) 농악놀이
작성자이순의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11 조회수386 추천수1 반대(0) 신고


작성자  
이순의 (leejeano)           번  호  6825              작성일    2004-04-12 오전 1:00:07

 

    (97) 농악놀이                     

                          이순의

               

ㅡ다 함께 축제를ㅡ

 

다 함께 축제를!

부활 축하합니다. 주님의 부활과 함께 생동하는 봄을 마시며 나아갑니다.

축하 축하 축하 합니다. 부활을 축하합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놀이마당이 봄과 함께 개장을 했다는 소식은 들었지만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으므로

쉽게 외출이 허락되지 않았다. 벚꽃이 함박웃음을 머금고 기다릴 텐데 그 고운 웃음을

보아주어야만 다음에 오실 초록이 밉지 않을 것 같아서 집을 나섰다. 호수가의 벚꽃은

몰려든 인파에게 맡은바 연기를 충분히 충실하며 얇은 살결을 뽀시시 일렁이고 있었다.

시간에 맞추어 놀이마당의 노천 관람석에 자리를 잡았다. 작년 가을에 얼굴이 익은

할아버지 할머니들께서 겨울을 잘 보내시고 여전히 흥미진진한 여가를 기다리고 계셨

다. 오늘 공연에는 젊은 학생 관람객들이 빼곡히 들어찬 좌석의 틈바구니를 비집고 앉

아 주류를 이루고 있었다. 아마 1부 공연에 예술학교 여학생들이 출연을 한 탓인지도

모를 일이다.

 

2부 공연은 농악이었다. 임실필봉농악!

나는 농악에 대한 어떤 이론적인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게 아니다. 농악이라는 놀이를 보

며 신이 인간에게 주신 또 다른 축복을 이 부활의 느낌으로 옮기고 싶은 것이다.

사는 것이 하늘이여! Contenflazion in Azione!

농악놀이는 크게 다섯 개의 타악기로 연주하는 악기놀이다. 꽹과리! 징! 장고! 북!

소고! 그리고 날라리를 불어서 서막을 알리는데 전체적인 여흥을 유도하기도 한다.

특별하게 무슨 춤이나 기교가 있는 것도 아닌 아주 사소한 동작들로 이루어진 놀이인

것이다. 다른 공연과 달리 농악놀이를 보는 재미는 연주자들이 남녀노소가 고루 분포

되어 있다는 점이다. 아직 어려보이는 청소년이 있는가 하면 근력이 쇠하지 않을까

걱정되는 할아버지도 계시고, 곱상한 처자가 놀이패를 따라 우째 서울꺼정 왔나 싶은

데, 그 속에 구릿빛 얼굴의 아짐씨들도 끼어있기 때문이다. 농악은 결실을 위한 신명

이다. 그러므로 관객들을 그 놀이에 빨아들이는 흡입력이 뛰어나다.

 

꽹과리는 늙은 시어머니의 잔소리 같다.

끊임없이 꽥꽥거리면서 놀이패를 좌지우지 흔들 뿐만 아니라 안방마님의 불벼락 같은

 소리와 자상한 어머니의 꾸지람 같은 높낮이로 흩기도 하고 모으기도 한다. 귀청을

찢어버릴 것 같은 쇠 소리와 섬세하면서도 장단의 넘고 오름이 정확한 쟁반 같은 소리

는 멀리서도 들어야 하는 막중한 책임이 있다. 그런 꽹과리 소리를 따르지 않으면 농악

의 패거리가 될 수 없다. 다소 심하다 싶을 만큼 늙은 여인의 시끄러운 잔소리 같은

꽹과리에게도 더 높은 어른이 있다. 상쇄가 꽹과리패의 모두를 지시한다. 꽹과리 패들

은 치던 꽹과리의 장난을 전환해서 재빠르게 상쇄의 소리를 따라 일사분란하게 움직

여주어야 다른 장단들을 유도할 수 있는 것이다. 그만큼 상쇄의 역할은 농악의 대장이

며 꽹과리는 참모들인 것이다.

 

그 다음 따르는 것이 징이다.

징은 중년의 중후한 남성의 호령소리다. 웅장하되 높지 않고, 포효하되 경망스럽지 않

으며, 울림의 색깔이 샘물과 같아서 가까이서 멈추지 않고 멀리멀리 아주 멀리까지 흘

러가는 소리다. 징~~잉~~이~~~~ 쟁~~앵~~애~~~~ 장~~왕~~와~~~~, 세상을

 경험하고 천하를 다스려야 할 막중한 힘을 진 남성의 근엄함은 결코 짧아서도 단순해

서도 안 되는 신중한 품격을 갖춘 소리여야 하는 것이다. 다른 소리들이 아무리 쟁쟁

거려도 징의 드문 울림은 아주 중요한 결단을 지시하는 대감마님의 소리다. 큰기침 한

번이면 안방마님의 눈치까지 조절할 수 있는 근엄함의 상징이다. 생김새 또한 중후한

무게를 담을 그릇의 형태이며 치는 채 또한 남성의 강한 힘을 닮아 뭉툭한 성깔이 우

러난다.

 

다음으로 다시 여성이 따른다. 허리가 잘록하고 생김새부터가 교태가 빼어난 장구다.

젊은 며느리의 불평 같기도 하고, 소갈머리 없는 딸년의 투정 같기도 하다. 그래서 소

리도 양쪽에서 난다. 변덕쟁이 젊은 아낙을 표현하는 데는 장구만한 악기가 없다. 변덕

스런 소리도 소리려니와 장구꾼의 손동작을 보고 있노라면 왼손은 지조 있이 제 자리

를 지키는 며느리인데 오른손은 소갈머리 없는 딸년의 천방지축을 닮아서 이리 가서

여기 처 보고 저리 가서 저기 처 보고, 진짜로 자발없는 젊은 여인의 호사로다. 그러니

얼마나 이쁜가 말이다. 요짝에서 나는 소리는 요렇게 홀기고, 저짝에서 나는 소리는

저렇게 홀기고, 왔다리 갔다리 허는 소리는 요짝 저짝 정신을 못 차리게 허는 통에 그

잘록한 허리가 요사스럽게 보이지 않는다면 말이나 될 법한 일인가 말이다. 아따 고놈

의 장구 땜시 갈 길을 잊어 부렀네 그려.

 

다시 정신차리고 북!

북은 말이여 사내도 몸짱 사내놈의 소리여! 바로 코앞에서 호리 호리헌 몸매와 변덕이

죽 끓는 소리로 양팔 휘저으며 팔랑팔랑 나비춤 꺼정 추는 장구를 진압 허는 데는 기

운 좋은 사내놈의 북소리가 아니고는 워찌 감당을 허것는가?! 그런데 북을 치는 장정

들을 보면 특별히 신기한 면을 볼 수 있다. 늙은 북 잡이의 팔은 겨드랑이 밑이 벌어지

는 각도가 그리 크지 않고, 감각으로 휘두르는 손목의 움직임이 봄날의 새싹처럼 연하

고 새의 깃털처럼 유연하게 북채를 건드려 주고 있다. 저렇게 보드란 쌀 반죽 같은 손목

에서 저렇게 우렁찬 사내의 소리가 울려 퍼진다는 것은 저절로 노련한 생기를 부른다.

반면 젊은 북 잡이의 팔은 겨드랑이의 각도가 활기차다. 손에는 절대로 놓치지 않겠

다는 총각의 심보가 실려서 북채가 잡혀있다. 그리고 이두박근 삼두박근 육두박근을

총 동원해서 팔뚝에 굵은 근육질을 뽈록하니 세워가며 사정없이 내리처서 힘껏 후려

갈긴다. 마치 성난 북채의 발광 앞에서 수줍게 앉은 처자의 가슴이 남아날 것 같지가

않다. 소리는 천둥과 같고 움직임은 번개와 같으며 한 낮의 태양열 같은 이글거림으

로 광기를 토해내고 있다.

 

마지막으로 소고다.

소고는 조무래기 아이들의 소리다. 소리가 있으나 치고 싶은 사람이 그 소리를 내고

싶어야 나는 소리다. 영락없는 천방지축 아그들이다. 쫄랑쫄랑 따라다니기는 허나 질

서가 있고, 질서가 있으나 무례한! 그러나 아이들도 모이면 한 장단 한다고 소고에는

고깔을 쓴 이도 있지만 상모꾼도 소고를 들었다. 원래 아그들은 무서운지 모르고 제

하고 싶으면 물불을 안 가리고 한다. 그래서 재주꾼은 모두 소고에 들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합죽이 할아범도 한 자리 사정해서 끼어든 자리가 소고다. 힘에 부치셔서 줄

을 잊었다가 또 허연 잇몸을 웃어 보이며 주름진 얼굴을 제 자리에 쑤셔 넣으신다. 할

아범 다음에 있는 소고 꾼은 할아범을 따르다가는 농악놀이를 망칠 판이다. 제 멋

대로이신 할아범을 거스르고 앞사람 뒤를 잘도 따라서 제 자리를 지킨다. 그래도 그

할아범을 제외시키지 않고 서울까지 왔으므로 그 농악이 멋있는 것이다. 농악이란

원래 마을의 축원을 비는 놀이이므로 남녀노소 누구나, 반푼이 칠뜩이도, 미친년 팔

순이도, 함께 재미있어야 농악이다. 오늘의 임실농악과 달리 간혹 다른 패거리 농악의

경우에는 소고에 조무래기 아이들도 끼워서 올 때가 있다. 그야말로 아이들은 가랑이

넓은 어른들을 따라서 열심히 돌다가, 손 저으며 뜀박질하다가, 어쩌다 생각이 나면 한

번씩 두드리는 것이 소고다. 그야말로 소고는 천진한 아이들의 장난소리다.

 

이렇듯이 서로 조화를 이루고 신명을 실어 힘을 다해 한바탕 곡절을 겪으며 그 흥겨움

에 숨이 차오를 때쯤이면 상쇄는 큰 마당가로 놀이패를 정렬하고 개인 장기자랑에 멍석

자리를 내어 놓는다. 그때서야 다 같이 숨을 돌린다. 오늘은 잔뜩 헛바람이든 홍치마의

노랑저고리를 입은 새댁이 한껏 뽐내기를 하였는디 어디서 골랐는지 참말로 이쁜 새댁

을 잘도 골라 온 것이었다. 놀이패에 홀려서 잠시 시집살이를 잊어버린 새댁의 춤사위

에는 패거리에 숨어든 총잡이 포수란 놈도 침을 젤젤 흐르고, 기다란 곰방대를 두루마

기 뒷덜미에 쑤셔 넣은 양반네도 은근 슬쩍 헛기침을 하며 나서보것는디!

그런다고 가락에 취해 목탁소리를 잊어버린 노승이 가만히 있을소냐? 점잖으신 눈알

이 사팔뜨기가 되어 힐끗힐끗! 어찌까. 잉! 그 사이에서 기생 오래비놈하고 무당 오래

비놈이 천허디 천허게 지랄하고 자빠졌다. 썩어문드러질 놈의 새끼들 같으니라구!

허리가 꼬부라질대로 꼬부라져서 궁둥이에 바가지 두개가 초랭이 방정을 떨고 기어댕

기는 것 같은 할멈이 가만히 있을 턱이 없것다. 나무껍데기 같이 거칠은 할매의 손이

로다가 봄철의 죽순 같이 보드란 새색시 손모가지를 팍 끄집어서 밀어내 부렀는디,

참말로 뉘집 새악시인지는 모르지만 어쩔끄나.잉! 저녁에 씨엄니한테 직살나게 혼구

녕이 날판인디 어쩔끄나.잉! 그때서야 제 정신이 든 새색시가 패거리를 의식해 봤자

해는 이미 기울고 저녁찬 때는 넘어 울상이 되어봤자 뭔 소용이 있당가요? 잉! 어쩌사

끄나? 잉?

 

좋다가 말은 새댁의 자리를 채우는 것은 역시 재주군 차지다. 일찍이 재주가 목적인

꾼들은 이때를 기다리는 것이었것다. 소고부대의 아그들이 한 재주를 부리려 하고!

제 소리를 피워보지 못한 소고들도 이때는 소고만의 소리가 가볍지만 제 몫을 다 하고

있다는 생동감을 전해 준다. 아이들을 무시하지마라는 절대 한 마당의 그럴싸한 잔치

다. 상모 꾼이 몰려오고 다음으로 농악의 최고 절정인 열두 발 상모돌리기다. 기다린

관객들의 술렁임은 절정을 이룬다. 직선인데 둥글고, 곧은데 휘어지고, 부드러운데 절

도 있으며, 종이인데 살아 숨쉬는, 그래서 열두 발 한지는 상모 꾼의 눈치를 보고, 상

모 꾼은 줄의 비위를 보는! 그래야만, 서로 그래야만, 재주풀이를 할 수 있는 최고 농악

의 기교를 자랑할 수 있다. 열두 발 상모돌리기는 보는 사람 각자의 희망이며 가슴이

다. 그 동그라미 안에 모두의 심정을 담아 허공을 돌고 돌고 또 돌고! 창공을 가르고

가르고 또 가르고! 그래서 박수소리도 크다. 휘파람 소리도 크다. 함성소리도 크다. 오

늘처럼 바람이 센 날에는 바람보다 더 빠르고 세게 고갯짓을 해야만 관객의 희망을 담

아 줄 그릇의 원을 마련할 수 있다. 그래서 바람 부는 날의 상모 꾼은 더 힘이 들다.

박수소리는 더 커진다.

 

이렇게 오늘은 농악을 보며 장단을 맞추고, 흥겨워하다가 <축 부활>이었다.

걸음을 품삯 삼아서 갔더니 꽃들은 만발하고 놀이는 이렇게 신명을 다해 흥겨울 수 있

음에 축복이다. 사람이 산다는 것은 힘든 노력의 연속성 안에서 역어 가지만 그 힘든

노력의 근심들은 언제나 축복인 것이다. 남녀노소의 임실 사람들이 모여서 연습을

하고, 얼마나 많은 고단함이 그들을 지치게 했을 것인가?! 그러나 그 지침의 극복은

<축 부활>이다. 각자 각자를 극복하고 재미난 한판의 놀이를 완성했다는 것은 예술

의 질긴 명운이며 승화된 정신이다! 이는 곧<축 부활>이다.

주님의 부활을 모두 모두에게 축하드리며 이런 모습의 잔치도 <축 부활>이라고 느끼

는 내 방식의 신앙을 전하고 싶다.

사는 것이 하늘이여! Contenflazion in Azione!

축하합니다. 주님의 부활을!!!!

 

참! 부활성야에는 미사에 참례했는데 아직도 다리가 불편하신 주임 신부님과 좀 핼쑥

해 지신 보좌신부님, 그리고 수녀님들과 본당의 모든 가족들께도 부활 축하를 전합

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