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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얼굴에 빛이 나는 사람들
작성자김용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13 조회수592 추천수4 반대(0) 신고
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
그리하여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였다. 이는 이사야 예언자가 선포한 말씀의 책에 기록된 그대로이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
(루카 3:1-6)
 
주름살이 가득한 얼굴로 슬픔에 잠겨 있던 한 여인이 가슴을 치며 통탄하듯 말했다.
“나에게는 왜 이토록 고통스런 일만 가득하단 말인가?
차라리 인간으로 창조되지 않았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러자 옆에서 듣고 있던 한 여인이 조용히 말했다.
당신은 아직 완전하게 창조된 것이 아니랍니다.
지금도 주님께서 당신을 만들어 가시고 있는 중입니다.” 
 
<인생은 미완성>이란 노래도 있지만
니체는 인생을 이렇게 이야기했다.
“인생의 목적은 끊임없는 진전이다.
앞에는 언덕이 있고 냇물이 있고 진흙도 있다.
걷기 좋은 평탄한 길만 있는 것은 아니다.
먼 곳으로 항해하는 배가 풍파를 만나지 않고 조용히 갈 수는 없다.
풍파는 언제나 전진하는 자의 벗이다.
차라리 고난 속에서 인생의 기쁨이 있다.
풍파 없는 항해란 얼마나 단조로운가!
고난이 심할수록 내 가슴은 뛴다.”
우리 인생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지금 만들어지고 있는 중이다.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뉴먼(John Henry Newman, 1801-1890) 추기경은 성공회가 1830년대 내부 갈등과 국가 간섭으로 내우외환에 봉착하자 젊은 신학자들과 함께 쇄신 및 개혁운동을 전개했다. 훗날 그는 <친구들을 떠나면서>라는 제목의 고별강론에서 “가톨릭교회가 유일하고 참된 교회임을 깨달았다”고 고백한 후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뉴먼 추기경의 찬양과 기도문 가운데 하나로, 마더 데레사가 설립한 <사랑의 선교회> 수녀님들이 매일 드리는 기도가 있다.
 
“사랑하올 예수님, 저희가 가는 곳마다 당신의 향기를 퍼뜨릴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저희 영혼을 주님의 성령과 생명으로 넘치게 하시고
저희의 온 몸을 소유하셔서 저희의 삶이 당신의 광채가 되게 하소서.
저희를 통해 빛나시고 저희와 함께 머무셔서,
저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이 저희의 영혼 안에서 당신을 보게 하소서.
, 주님! 그들이 더 이상 저희를 보지 않고 당신만을 우러러보게 하소서.
저희와 함께 머무시면 저희가 당신처럼 빛날 것이고
다른 사람들도 빛나게 될 것이옵니다.
, 주님! 모든 빛은 저희로부터가 아니라 당신에게서 나옵니다.
당신의 빛은 저희를 통해 다른 사람들을 비출 것이옵니다. 아멘.
 
추기경은 “그림자나 상징으로부터 진리로”라는 것을 개인 목표로 삼았다.
옛날부터 그리스도교 작가들은 이 표현을 즐겨 사용했지만 다른 작가들은 성경 속에 예수님보다 먼저 왔던 예언자들 대신에 예수님을 바꾸어 놓기를 좋아했다.
어두운 밤과 어스름한 빛이 오래 동안 있은 후 예수님을 통해서 빛이 왔다.
 “우리 하느님의 크신 자비로 높은 곳에서 별이 우리를 찾아오시어 어둠과 죽음의 그늘에 앉아 있는 이들을 비추시고 우리 발을 평화의 길로 이끌어 주실 것이다.”(루카 1:78-79)
그래서 뉴먼 추기경은 위와 같이 기도했던 것이다.
 
또 힌두교 경전인 리그베다(Rig-Veda)에서도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다.
“어린 소녀처럼 새벽이 빛이 비춰 살아있는 모든 피조물을 굼틀거리게 한다.
인간이 사용하도록 신성한 불이 지펴졌다. 새벽이 빛을 만들어 어둠을 몰아냈다.”
우리의 삶은 현실이다.
토마스 머튼이 말했다. “영성 생활은 먼저 일상적인 삶이 되어야 합니다.
영성 생활은 알고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삶 자체를 진실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일상 생활을 축성하시기 위해 항상 다른 사람들과 같은 일상생활을 하셨습니다. 영성 생활을 원하면 먼저 일상 생활을 제대로 살도록 해야 합니다.
 
가톨릭은 이런 ‘보편적인 삶을 위한 진리’를 말한다.
하늘나라가 아니라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본 받고 사는 지혜를 말한다.
기복 신앙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기회가 없게 된다.
구원은 자신이 성취하는 것이지 남이 구원해줄 수는 없다.
주님께서는 구원을 받는 길을 가르쳐주셨다.
그러나 오늘날의 교회에서는 마치 중세 때 죄의 용서에 따른 보속 행위의 일부로서대사부(大赦符)’를 발행한 것 것처럼 구원 장사(?)를 하는 것 같다.
참된 가톨릭 신자라면 하느님의 빛을 받아 이웃에게 빛을 비춰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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