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좌절의 악순환의 늪에서> - 서영남
작성자김종연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13 조회수1,096 추천수3 반대(0) 신고
 
좌절의 악순환의 늪에서
[서영남 칼럼]
 
2009년 12월 07일 (월) 00:11:49 서영남 syepeter@gmail.com
 

   
▲사진/김용길

어젯밤에는 비가 내리더니 오늘 아침은 올 겨울 들어서 제일 추운 날이라고 합니다. 화도고개에는 찬바람이 쌩쌩 붑니다.

밤새 지하도에서 밤을 새운 우리 손님들은 얼마나 추웠을까 걱정이 됩니다. 민들레국수집에 도착하니 골롬바 자매님이 손님들께 대접할 국을 가져다 놓고 가셨다고 합니다. 골롬바자매님은 작은 식당을 운영하십니다. 목요일과 금요일은 쉬고 토요일부터 시작하는 민들레국수집이 토요일 아침에 국을 준비하는 것이 어렵다는 것을 아시고 계양구에 있는 당신의 식당에서 국을 두 가지나 준비해서 차로 실어다 주십니다. 고기 듬뿍 넣은 육개장과 돼지등뼈 듬뿍 넣고 끓인 우거짓국입니다. 손님들이 두세 그릇씩 드시기 때문에 조금 맛없게 끓이시라고 해도 점점 더 맛있게 끓여서 오십니다.

서둘러 쌀을 씻어 가스 밥솥에 안쳤습니다. 늦어도 아홉시 사십 분에는 밥에 뜸이 잘 들 것 같습니다. 보온밥솥에 조금 남아 있는 식은 밥은 큰 대접에 옮겨 담아놓았습니다.

아홉 시가 조금 지났을 뿐인데 손님들이 기웃거립니다. 들어오시게 했습니다. 커피나 녹차를 드시면서 밥이 뜸 들 때를 기다리시도록 했습니다. 추워서 밤새 떨었다고 합니다. 손님들이 식당 안에 앉아있으니 다른 손님들도 계속 들어옵니다.

손님은 보온밥솥만 쳐다봅니다

손님 두 분이 들어오십니다. 문을 열자마자 손님은 보온밥솥만 쳐다봅니다. 접시를 들고 밥솥을 연 다음에 주걱으로 밥을 푸려고 하는데 밥이 없습니다. 그제야 이상하다는 듯 얼굴을 들고 식당 안을 둘러봅니다.

아직 열 시가 되려면 삼십 분이나 남았고, 밥이 뜸이 들려면 15분은 남았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배가 너무 고프다고 합니다. 그러면 뜨거운 국에 식은 밥이라도 드시겠다면 지금 드셔도 좋다고 했더니 먼저 식당 안에 들어와서 기다리던 여섯 분의 손님들도 아침밥을 드시겠다고 일어나셨습니다. 식은 밥을 드시는 손님들이 안쓰러워 계란 프라이를 두 개씩 해서 드렸습니다.

양곡성당 청년 레지오 단원 세 명이 자원봉사를 하러 왔습니다. 마음씨 예쁘신 자매님도 오셨습니다. 덕택에 계란 프라이를 계속 할 수 있었습니다. 손님들이 평소보다 배는 더 오십니다. 오전 내내 밥과 국을 퍼 나르느라 동동거렸습니다. 손님들도 식사를 다 하시고도 좀 더 식당 안에 있고 싶어 합니다.

오전 열 시에 식사를 하시고 열 시 삼십 분쯤 고맙다고 인사하고 가셨던 손님이 열한 시가 되었는데 또 식사하러 왔습니다. 깜짝 놀랐습니다. 조금 전에 식사하고 가셨는데 왜 오셨는지 물어보았습니다. 밥이 더 먹고 싶다고 합니다. 또 식사를 해도 괜찮은지 물어봅니다. 또 식사를 해도 괜찮다고 했더니 머리를 긁적이면서 밥을 먹었는데 또 배가 고프니 참 이상하다고 합니다.

바람이 매우 찹니다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점심을 먹은 후에야 겨우 시간을 내었습니다.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방 하나를 얻어야 합니다. 새로 민들레의 집 식구가 될 손님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바람이 매우 찹니다. 눈발도 날립니다. 고드름도 보입니다.

할 수만 있다면 보증금이 없는 월세 방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부동산 아주머니께 지금 가진 돈이 한 푼도 없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보증금이 없이 방을 얻을 수 있으면 좋겠지만 오십만 원이나 백만 원 정도의 보증금을 한 달 안으로 드릴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한 달 방세는 십만 원 정도면 좋겠다고 했습니다. 요즘은 그런 방이 없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보증금 백만 원에 월 십오만 원 정도라면 한 번 같이 찾아보자고 합니다. 그렇게라도 하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삼백에 이십만 원에 나온 좋은 집이 있는데 주인에게 전화를 걸어보겠다고 했습니다. 겨우 집 주인과 타협해서 백만 원에 월 십오만 원으로 하기로 했습니다. 집을 구경했습니다. 반지하 빌라입니다. 방 한 칸에 주방과 화장실이 있습니다. 참 좋습니다. 계약금을 마련해서 곧 오겠다고 하고선 민들레국수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급히 오십만 원을 만들어서 부동산사무소로 갔습니다. 그런데 집 주인이 마음이 바뀌어졌다고 합니다. 보증금으로 이백만 원을 내고 월세도 선불로 달라고 합니다. 할 수 없이 포기하고 다른 집을 보러 갔습니다.

이번 집은 보증금 이백에 월세 십만 원에 나온 것인데 백만 원에 십오만 원으로 하기로 하고 방을 보러 갔습니다. 방도 깨끗하고 좋은데 살고 있는 분이 12월말에야 방을 비워줄 수 있다고 합니다. 할 수 없이 방 얻는 것을 포기했습니다.

다음 집은 빌라 1층인데 보증금 삼백만 원에 월 이십만 원에 나온 집인데 집 주인 할머니가 마음이 참 좋은 분이라고 합니다. 방을 깨끗하게 쓸 수 있는 분이라면 민들레국수집을 보고 백만 원에 월세 십오만 원으로 계약하겠다고 합니다. 준비해간 오십만 원을 드렸습니다. 그리고 월요일에 와서 계약하고 이사 오겠다고 했습니다.

 ‘불행 끝, 행복 시작’의 작은 발판이라도

새 민들레 집 식구가 될 영우씨(가명)에게 기쁜 소식을 전했습니다. 방이 준비되었으니까 월요일에 이삿짐을 챙겨서 오시면 된다고 했습니다. 믿겨지지 않는 표정으로 고맙다고 합니다.

영우씨는 사십 대 초반입니다. 좌절의 악순환에 어쩔 줄 몰라 했습니다. 음식재료 납품하는 조그만 가게를 운영하다가 교통사고를 내었습니다. 몸도 크게 다쳤습니다. 배상금을 내고 정리하자 아무 것도 남지 않았습니다. 아내와 아이들과도 어쩔 수 없이 헤어져야 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서 어쩔 수 없이 이혼도 했습니다.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막노동도 했습니다. 그런데 다친 팔이 막노동을 견뎌내지 못했습니다. 고시원에서도 나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컨테이너에서 생활하는 친구들 틈에 끼어서 지내보았지만 매일 술판을 벌리는 바람에 견뎌내질 못하고 수원역에서 노숙을 했습니다. 그러다가 민들레국수집에 밥 먹으러 가는 손님들과 함께 민들레국수집에 왔을 때 처음 만났습니다.

영우씨는 노숙을 하지만 술을 절제할 줄 압니다. 자기 관리를 아주 잘하는 편입니다. 항상 깔끔하게 지냅니다. 민들레 희망지원센터에서도 참 잘 지내시는 분이었습니다. 어떻게든지 살아보려고 직장도 열심히 찾아보지만 집이 없으니 취직이 될 듯 하다 안 됩니다. 주민등록이 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주거만 안정시키면 기초생활수급자도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영우씨의 좌절의 악순환이 조그만 방 한 칸으로 ‘불행 끝, 행복 시작’의 작은 발판이라도 된다면 참 좋겠습니다. 그런데 월요일까지 보증금과 선불로 내야하는 월세 십오만 원과 부동산 사례금은 어떻게 마련할까 은근히 걱정이 됩니다.

<가톨릭뉴스 지금여기 http://www.nahnews.net>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