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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Fr.조명연 마태오]
작성자이미경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4 조회수1,466 추천수15 반대(0) 신고
빠다킹 신부와 새벽을 열며
 
 
 

2009년 12월 24일 대림 제4주간 목요일
 
 
 Because of the tender mercy of our God,
With which the Sunrise from on high will visit us.
TO SHINE UPON THOSE WHO SIT IN DARKNESS
AND THE SHADOW OF DEATH,
To guide our feet into the way of peace.
(Lk.1.78-79)
 
 
제1독서 사무엘 하권 7,1-5.8ㄷ-12.14ㄱ.16
복음 루카 1,67-79
 
 
저는 2009년을 얼마 안 남겨둔 요즘, 올 한 해 동안 제가 썼던 글들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새벽 묵상 글, 각종 피정 강의록, 원고청탁을 받아서 썼던 글 등등 정말로 많은 글을 썼더군요. 그것을 프린트해 보니 자그마치 1,000페이지 가량의 분량이 나옵니다. ‘헉’ 소리가 나옵니다. 저의 이 조그마한 머리에서 1년 동안 1,000페이지 가량의 글을 썼다는 것 자체가 신비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냥 새벽마다 묵상 글을 쓰고 원고 청탁이나 강의 부탁을 받으면 거부하지 않고서 썼더니만, 그것이 한 장 한 장 쌓여서 이렇게 많은 분량이 된 것입니다. 이럴 줄은 몰랐습니다. 그러나 한 장 한 장이 쌓여서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이 이렇게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렇듯 맨 처음의 시작점에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다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목적지에 도달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우리들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간직할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주님께서 부족한 나와 늘 함께 하시기에 그 희망을 우리는 절대로 놓을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주님의 일에 얼마나 동참하는가 입니다. 즉, 주님께서는 당신께서 직접 모든 것을 다 하실 수도 있지만, 우리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노력을 통해 더 큰 일을 완성하시기 때문입니다.

내 손에 펜이 한 자루 그냥 있으면 아무 것도 변화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 펜으로 글을 쓰고 그림을 그리면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나의 입으로 침묵을 지키고 있다면 아무런 변화도 없겠지요. 하지만 그 입으로 나의 이웃에게 위로와 격려를 한다면 세상에 기쁨과 희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주님의 활동은 나를 통해서 분명하게 이루어집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주님께서 알아서 다 해주시기만을 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해주시지 않는다고 원망과 불평으로 일관할 때도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한 내 모습에 주님께서는 어떻게 응답하실까요?

오늘 복음에서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성령으로 가득 차 ‘즈카르야의 노래’를 부르십니다. 하느님의 일을 의심한 죄로 말을 하지 못하게 되었던 즈카르야. 그러나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 동참하자마자(명명식에서 하느님의 뜻대로 ‘요한’이라고 지음), 그는 혀가 풀려서 이렇게 찬미의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우리 역시 하느님의 일을 의심하고, 원망과 불평을 내비쳐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는 즈카르야처럼 하느님의 뜻에 적극적으로 동참해야 합니다. 그래야 나를 통해서 하느님의 일이 완성되고, 하느님의 새로운 창조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이제 하루 남았습니다. 오늘 밤이면 아기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십니다. 사랑으로 오시는 예수님을 맞이한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우리의 결심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그러한 결심과 실천으로 오늘 하루를 잘 보내시길 바랍니다.




헛된 사랑이었다고 말하지 말라. 사랑은 결코 낭비되는 것이 아니다.(롱펠로우)



 

흉몽과 길몽의 차이(‘좋은 생각’ 중에서)

조선을 건국한 태조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기 전 일이다. 하루는 잠을 자다가 꿈을 꾸었는데, 불난 집에서 숫양 두 마리가 싸우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이성계가 양의 뿔을 잡으려고 하자 뿔이 부러져 버렸다. 이번에는 양의 꼬리를 움켜잡았다. 그러나 꼬리마저 쑥 빠지면서 양은 저 멀리 달아났다.

꿈에서 깬 이성계는 ‘잡고 싶었는데 놓쳤으니 분명 안 좋은 꿈이야.’라는 생각에 마음이 편치 않았다. 결국 날이 밝자마자 무학대사를 찾아가 꿈 이야기를 들려줬다. 그러자 무학대사가 무릎을 탁 치면서 말했다.

“그거 참 길몽이군!”

이성계가 어리둥절해하자 무학대사는 빙긋이 웃으며 말을 이었다.

“장군, 양(羊)에서 뿔과 꼬리가 빠졌으니 임금 왕(王)이 아니오? 장군이 왕의 재목이라는 뜻이니, 앞으로 더욱 자신을 갈고 닦으며 노력해야 합니다.”

그제야 마음이 놓인 이성계는 임금이 된 자신의 모습을 상상하며, 미소를 가득 머금은 채 돌아갔다.

이처럼 꿈 하나도 어떻게 보고 생각하느냐에 따라 흉몽도, 길몽도 될 수 있는 법. 어느 쪽을 선택하느냐는 우리 마음에 달렸다. 마음에 따라 행동이 달라지고 인생이 달라짐은 물론이다.
 

 
 White Christm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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