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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관계와 질서
작성자김현아 쪽지 캡슐 작성일2009-12-27 조회수774 추천수14 반대(0) 신고
 

 

◆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대축일 - 관계와 질서

 

 

어떤 유치원에서 한 선생님이 자갈과 모래와 물을 서로 다른 그릇에 담아 두고 또 그것들을 넣을 항아리를 학생들 앞에 두었습니다. 그리고는 아이들에게 그것들을 항아리에 하나도 남김없이 다 담아보라고 하였습니다. 어린 학생들은 모래와 물과 자갈을 항아리에 쏟아 부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 자갈과 모래와 물이 아직 남았는데 항아리는 가득 차 버렸습니다.

아이들은 항아리가 너무 작아서 그것들이 들어가지 않는다고 선생님께 말했습니다. 선생님은 틀림없이 항아리에 다 들어갈 수 있다고 가르쳐주었지만 아이들은 결코 그것들을 항아리에 다 넣을 수 없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선생님이 그것을 어떻게 한 항아리에 다 집어넣는지 보여주었습니다. 즉, 먼저 자갈을 항아리에 다 쏟아 부었습니다. 학생들이 보기에는 이미 항아리가 자갈로 다 차버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다음엔 모래를 조금씩 쏟아 부었는데 모래는 자갈 사이로 스며들어 신기하게도 항아리에 다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더 이상 물이 들어갈 공간은 없어 보였습니다. 그러나 선생님이 물을 조금씩 뿌리자 물은 모래 사이 공간으로 스며들어가서 결국은 세 가지를 하나도 남김없이 항아리에 다 넣게 되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이들에게 ‘질서’의 중요성에 대해 가르쳐주고 싶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복잡한 기계라도 그 조립하는 것에는 순서가 있습니다. 단 하나라도 순서에 어긋나게 조립하면 전체가 작동을 하지 않거나 머지않아 고장 나고 맙니다.

 

그런데 세상에 인간관계만큼 복잡한 것이 있을까요? 아무리 머리 좋은 과학자라할지라도 가족과의 관계를 잘 이루지 못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이룬 것처럼 보이는 사람일지라도 부부관계나 자녀와의 관계 하나도 성공하지 못하는 수많은 예를 우리 주위에서도 많이 보게 됩니다. 이렇게 인간관계도 보이지 않는 수많은 섬세한 질서 안에서 형성이 됩니다.

그렇다면 가정 안에서는 이 질서가 얼마나 중요할까요? 이 질서를 무시하게 되면 가정은 순식간에 무너지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가정의 질서를 무시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십니다. 예수님은 부모에게 말도 안 하고 예루살렘에 혼자 남아서 부모가 삼 일 동안이나 찾아 헤매게 만듭니다.

그 와중에도 성모님은 항상 요셉 성인을 당신 앞에 두시며 말씀하십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그렇다면 정말 예수님께서 가정의 질서를 무시하셨던 것일까요?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오늘 예수님께서 하신 행동은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아서가 아니고 ‘미래를 위해서’ 부모보다 높으신 분이 하느님 아버지시라는 사실을 가르치시기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만약 오늘 일이 아니었다면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뜻을 이루기 위해 당신을 떠나셔야 했을 때 더 큰 고통을 느끼셨을 테지만, 시메온의 예언과 오늘의 일로 성모님 또한 아들이 세상을 위해 목숨을 바치러 가실 때 영웅적인 아버지께 대한 순종으로 아들을 잡지 않으실 준비가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가정의 질서는 아주 간단합니다. 남편은 하느님께 순종하고, 아내는 남편에게, 또 자녀는 부모에게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 질서가 깨어지면 보이지 않게 가정도 깨어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왜 아내가 남편에게 순종해야 하느냐고 따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의 창조를 한 번 봅시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든 것에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고, 하늘과 땅을 나누고, 땅과 바다를 나누고, 낮과 밤을 나누고 또 사람을 창조하실 때도 남, 여를 동시에 창조하시지 않고 남자에게서 여자가 나게 하셨습니다. 질서가 없어지면 서로 싸워 ‘혼동’된 상태가 벌어지지만 질서는 뒤죽박죽 된 ‘혼동’을 넘어서서 ‘하나’를 이루게 만들어줍니다.

하느님 안에서도 질서가 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께 순종하고 성령은 아버지와 아들에게 순종하십니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성가정을 부를 때는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이라 말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은 하느님이기 때문에 가장 높고, 마리아는 주님의 어머니가 되시기 때문에 두 번째로 높으시고, 요셉성인은 비록 가장 훌륭한 성인이기는 하지만 이 두 분보다는 낮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는 요셉성인이 가장이셨고, 성모님은 아내였고, 예수님은 아들이셨기 때문에 질서 상으로는 요셉성인이 가장 높고, 성모님이 그 다음, 예수님이 마지막이 되셨습니다.

하느님도 천사를 성모님이 아니라 요셉에게 보내어 이집트에 피난 갈 때나 돌아올 때 요셉을 통해 가족을 이끌도록 하셨고 성모님도 요셉의 권위에 군말 없이 순종하셨습니다. 물론 예수님도 오늘 복음에 나와 있는 대로 부모님께 순종하시며 사셨습니다. 이렇게 질서와 순종은 성가정의 가장 중요한 기둥이었습니다.

 

순종한다고 상대보다 낮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다만 사랑의 본질인 것입니다. 사랑은 순종하는 사람과 한 몸을 이룹니다.

손가락들이 서로 자기 자랑을 하고 있었습니다. 엄지손가락부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난 여기서 가장 힘이 세!”

“난 여기서 가장 쓸모가 많아서 하는 일도 가장 많아. 난 가장 필요한 손가락이야.”

“난 여기서 제일 키가 커!”

“내가 없으면 어디다 결혼 반지를 끼울 수 있겠어.”

그러나 새끼 손가락은 내세울 만한 것이 없었습니다.

“니들... 니들... 나 없으면 병신이여!”

 

하느님 아버지께 순종하는 아들이 없으면 하느님은 더 이상 하느님이 아니게 됩니다. 아버지가 아들이 있어서 아버지가 되는 것처럼 남자도 여자가 있어서 남자가 되고 남편도 아내가 있어서 남편이 됩니다. 상대가 있어서 온전한 자신이 되는 것입니다.

따라서 순종은 높고 낮음을 넘어서서 한 몸이 되는 원리입니다.

 

한 가지 더 오늘 복음이 우리 현대 가정에 던져 주는 메시지는 바로 부모의 의무입니다.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즉, 예수의 부모들은 하느님의 법을 철저히 지키는 이들이었음을 볼 수 있습니다. 첫 아들을 성전에 봉헌하고 정결례를 하고 오늘은 자녀의 성인식도 곁들여 하는 날이었습니다. 자녀를 봉헌한다는 뜻은 바로 자녀는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선물이지 부모의 것이 아님을 고백하는 신앙행위입니다.

요셉과 마리아는, 새로운 전례를 세우실 그리스도께서 당신들 아들이셨지만, 그들은 결코 이전에 해 오던 전례를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오기 위해서는 몇 주일이 소비되기도 하고 따라서 비용도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하느님께 예배드리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자녀의 교육을 위해서도 전례에 참여하는 것만큼 중요한 의무는 없습니다. 부모들이 게을러서 자녀들도 성당에 나오지 않게 되고 세례나 첫 영성체를 받지 않아 자녀의 영혼까지 구원받지 못하게 하는 것만큼 자신들과 자녀에게 해를 끼치는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밥을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것처럼 신앙 없이는 가정이 제대로 돌아 갈 수 없습니다. 교회의 기도와 전례는 개인과 가정의 영혼을 튼튼하게 하기 위해 음식을 마련해놓고 기다리고 있지만 육체만 즐기려는 마음으로 신앙의 의무를 게을리 하면 안 좋은 결과가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부모는 육체뿐만 아니라 더 중요한 영혼을 배부르게 하는 신앙생활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삼고 시간을 할애해야 할 것입니다.

 

수백 년간의 박해를 견뎌내어 가톨릭 신앙을 지킨 아일랜드가 최근 몇 년 잘 살게 되면서 미사 참례 율이 급감하는 것을 보고는 박해보다도 잘 살게 되는 것이 신앙에 더욱 위협을 준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3년 동안 공생활을 하셨지만 가정생활은 30년을 하셨다면 그 가정의 중요성이 어떤 것인지 미뤄 짐작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가정이란 이와 같이 아버지의 신앙과 어머니의 남편에게 대한 순종, 또 자녀의 부모에 대한 순종으로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을 닮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것이지만, 그 무엇보다도 먼저 사랑이 실현되는 배움터입니다.

 

 

  

 

요셉 신부님 미니홈피: http://minihp.cyworld.com/30josep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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